주간동아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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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호 떠난 우주 ‘新국제정거장’ 시대

미·러 등 16개국 공동건설 … 98년 첫 모듈 발사 이후 현재 4개 모듈 도킹 상태

  • 입력2005-02-24 1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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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르호 떠난 우주 ‘新국제정거장’ 시대
    3월23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러시아의 미르호가 아쉬움과 초조함 속에 최후를 맞았다. 미르호는 당초 의도대로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불탔고, 남은 잔해는 남태평양에 무사히 뿌려졌다. 무려 15년 동안 우주공간에 떠있던 미르호는 본격적 의미에서의 우주정거장으로서 인간이 우주공간에 장기 체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 미르호에서는 12개국 104명의 우주인들 이 1만5000건이 넘는 갖가지 실험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제 미르호의 바통은 새 우주정거장으로 넘겨졌다. 바로 국제우주정거장(ISS)이다.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16개국이 건설에 참여하는 국제우주정거장은 인류역사상 가장 복잡한 과학기술 프로젝트다. 현재 순조롭게 건설되고 있지만, 이 우주정거장이 본격적으로 건설되기까진 우여곡절이 있었다. 아울러 크기가 미르호의 10배나 되기 때문에 완성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과정이 남아 있다.

    국제우주정거장도 미르호처럼 여러 개의 모듈(소형 우주선)을 단계적으로 합체하는 방식으로 건설중이다. 그런데 첫 모듈인 러시아의 자르야(Zarya)는 지난 98년 11월에야 발사됐다. 이는 미국의 주도로 국제우주정거장이 처음 계획된 이후 거의 15년 만이었다. 왜 이렇게 발사가 늦어진 것일까.

    1984년 1월 당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겠다”는 연두교서를 발표했다. 이어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여러 연구센터들이 우주정거장 건설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엄청난 건설비용도 문제였지만, 1986년 1월 미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우주정거장 계획의 발목을 잡았다. 발사 도중 폭발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반면 러시아(옛 소련)는 챌린저호 폭발사건 한달 뒤 보란 듯이 우주정거장 미르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우주정거장 건설에 있어 러시아가 미국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다급해진 미국으로서는 국제우주정거장 계획에 러시아의 기술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급기야 지난 93년 말 러시아를 끌어들였다.



    러시아로서도 아쉬울 게 없었다. 옛 소련이 붕괴되면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던 러시아는 우주정거장을 새로 건설하는 것보다는 국제우주정거장 계획에 참여하는 방법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도 국제사회에 생색낼 수 있었기 때문. 마침내 98년 1월 브라질을 제외한 15개국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미국 워싱턴에 모여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협력관계를 설정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참여를 약속한 이후에도 계획은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다. 첫 모듈인 자르야 발사 이후 미국의 모듈인 유니티(Unity)가 한달 뒤 바로 도킹에 성공했지만, 국제우주정거장은 한동안 두 모듈로 이루어진 채 우주공간을 떠돌았다. 러시아가 미르호와 국제우주정거장 사이에서 ‘널을 뛰었기’ 때문. 러시아는 미르호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썼다. 한때 미르콥(MirCorp)이란 국제민간회사로부터 일부 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하지만 미르호가 치명적인 고장을 일으켰고 유지-보수에 더 많은 자금이 소요되자 결국 러시아는 미르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7월에야 국제우주정거장의 세번째 모듈이자 거주모듈인 러시아의 즈베즈다(Zvezda)가 발사됐다. 즈베즈다의 도킹으로 우주인들이 장기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생겼다. 드디어 지난해 11월부터는 첫 승무원팀이 국제우주정거장에 체류하게 됐다. 이들은 사령관인 미국의 빌 세퍼드를 비롯해 러시아의 세르게이 크리칼레프와 유리 키드젠코 등 3명이었다.

    올해 2월9일에는 네번째 모듈이자 실험모듈인 미국의 데스티니(Destiny)가 성공적으로 도킹했다. 국제우주정거장에는 앞으로 유럽우주기구의 콜럼버스(Columbus), 일본의 기보(Gibo) 등 적어도 3개의 실험 모듈이 더 합류할 예정이다. 이곳에선 의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분야의 첨단 연구가 이뤄지게 될 것이다.

    우주공간은 지구보다 중력이 무척 작고 거의 진공상태이므로 각종 실험에 여러 모로 유리하다. 예를 들어 의학분야에서는 신약 개발에 적합하다. 실제 지난 96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에서는 지상에서는 만들기 힘든 인플루엔자 단백질 결정을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효소에 강한 신약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국제우주정거장 실험 모듈은 이에서 더 나아가 암이나 에이즈 같은 불치병을 치료할 신약 개발에 목표를 두고 있다. 또한 진공상태에서는 유체의 흐름이 없기 때문에 반도체 칩도 지상에서보다 더 강하고 가벼우며 더 기능 좋게 만들 수 있다.

    미르호가 태평양에 ‘수장’되기 며칠 전인 3월17∼20일 두번째 승무원팀이 첫 승무원들과 교대하며 국제우주정거장에 입주했다(두번째 팀에는 미국의 수잔 헬름스라는 여성 우주인이 포함됐다). 이 과정에서 이 우주정거장의 화물보관용 모듈인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Leonardo)도 합체됐다. 이제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두번째 원정팀의 임무가 시작된 것이다.

    오는 4월19일 발사 예정인 우주왕복선 엔데버호는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캐나다의 로봇팔을 실어나르게 된다. 17m 길이의 이 로봇팔은 현재 우주인이 위태롭게 우주유영을 하며 모듈을 수리하는 일을 대신할 전망이다. 예를 들어 안테나가 고장나거나, 밸브가 꼼짝 않거나, 모듈에 구멍이 생겼을 때 우주인 대신 문제를 점검할 수 있다. 나아가 궤도상에 있는 위성들을 붙잡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고장난 위성의 수리도 가능하다.

    무려 950억달러가 투입되는 국제우주정거장에는 앞으로도 여러 모듈과 시설이 계속 들어서 2006년경이 되면 무게 460t, 본체길이 100m가 넘는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때 국제우주정거장은 21세기 우주개발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대형 우주선을 조립해 달이나 행성으로 탐사를 보내는 중간기지가 된다. 또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화성으로 인간이 방문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해줄 것이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9개월이나 걸리는 화성까지의 긴 우주여행에서 인간이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된다.

    한편 국제우주정거장은 미국, 러시아, 일본, 캐나다, 브라질, 그리고 유럽 등 11개국만이 참여하는 사업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가능성은 열려 있다. 지난해 9월 제4차 한-미 과학기술공동위원회 개최 이후 한국의 국제우주정거장 참여가 적극적으로 검토된 바 있다. 지난 2월 초엔 미 항공우주국의 돈 애버리 단장이 이끄는 독립평가단이 방한해 한국이 국제우주정거장의 탑재장비를 개발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즉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비롯해 한국항공우주산업, 대한항공, 두원중공업, 코스페이스 등 국내 우주산업체들이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에 참여할 능력을 지녔다고 공식 평가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참여할 부분은 고에너지 우주입자선 검출장치인 악세스(ACCESS) 탑재체를 지원하는 모듈이다. 악세스 탑재체는 미국에서 만들되 이를 지원하는 구조물, 전력계, 전자계, 자료처리시스템, 방열시스템, 비행 소프트웨어 등은 한국이 만들게 된다. 악세스 지원 모듈 연구의 실무 책임자인 항공우주연구원 위성응용연구그룹 최기혁 박사(41)는 “한국이 국제적인 대형 우주개발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강조했다.

    악세스 모듈은 국제우주정거장이 완성된 후인 2007년에 설치될 예정이다. 현재 이 사업을 위해 과학기술부가 기획예산처에 관련 예산을 요청한 단계. 빠르면 올 여름 정부의 예산 지원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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