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9

2001.04.12

“미국이 ‘잽’ 던져봤자…”만만디 중국

부시 행정부 사사건건 ‘트집’에도 느긋… 탐색전 끝나면 ‘우호관계 복귀’ 낙관

  • 입력2005-02-23 15:5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국이 ‘잽’ 던져봤자…”만만디 중국
    지난달 첸치천(錢其琛) 중국 부총리가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올 때 세계 대부분의 언론들은 그의 미국 방문이 실패작이라고 평가했다. 첸 부총리가 부시행정부 출범 후 최고위급 중국관리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지만, 중국과 미국간 뚜렷한 입장 차이만 확인했을 뿐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재고 요청에 대해 조시 W. 부시 미 대통령은 “중국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면서 단호하게 거절했으며, 중국의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유치 협조요청에도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중국의 인권문제도 불거져 나왔다. 미국 내 인권단체들은 중국이 지난 2월 중순 중국계 미국인 학자 가오잔(高瞻)씨 일가를 스파이 혐의로 불법 체포했다며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했다.

    또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가 3주 만에 풀려난 가오잔씨의 남편과 아들이 중국 당국에 의해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비난하면서 특히 가오잔씨의 어린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로 미국 시민을 체포할 경우 3일 안으로 미국 영사관에 통보하게 돼 있는 미중 영사협정도 중국이 고의로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한 조율문제도 흔쾌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미국은 중국의 농산물 보조금 문제와 서비스업 추가 개방 등을 요구하며 중국의 WTO 가입에 여전히 제동을 걸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양국 현안이 하나도 속시원하게 해결된 게 없다 보니 첸 부총리의 방미가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측의 평가는 다르다. 관영 신화통신은 첸 부총리의 미국 방문이 아주 성공리에 끝났다고 자평했다.중국 외교부도 같은 반응이었다.중국이 첸 부총리의 미국 방문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내의 대중국정책 기류를 읽는다는 당초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첸 부총리는 미국 방문 중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물론 럼스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대통령 안보보좌관 등 대외정책 담당 인사들을 두루 만나 양국 현안에 관해 충분히 의견을 교환했다.

    또 정계와 재계, 언론계 인사들과도 만나 폭넓게 의견을 청취했으며, 나아가 중국이 전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첸 부총리는 중국 외교의 실질적인 사령탑으로서 노련한 외교관답게 중국의 메시지를 미국 전역에 전했던 것이다.

    대만 무기판매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할 경우 중국은 대만에 무력행사를 할 수도 있다”면서 중국의 대만침공 가능성을 경고하는 동시에 미국의 책임을 부각시켰으며, 부시행정부가 추진중인 NMD에 대해서는 “중국도 과거에 이를 추진했던 적이 있으나 효과가 없었다”며 재치 있는 비유로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첸 부총리는 “중국은 2000년 전에 NMD(National Missile Defense)와 비슷한 NWD(National Wall Defense·국가만리장성방어)를 추진했었다. 이를 위해 많은 돈을 쏟아붓고 적잖은 사람이 다쳤지만, 흉노 등 외적의 침입을 막지는 못했다”며 미국의 NMD 중단을 우회적으로 권고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측 요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전하고 싶은 말 다 전했으니 대성공이라는 것이다.

    이번 첸치천 부총리의 방미 과정에서 약간의 마찰음이 들리긴 했으나 중국은 향후 중미관계에 대해 비교적 낙관하는 분위기다. 부시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이 중국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고 있지만 이는 대중정책 수립을 위한 탐색작업의 일환이라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중국이 향후 중미관계를 낙관하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중미관계의 악화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도 이를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72년 닉슨 대통령의 방중 이래 중국은 미국의 무시할 수 없는 경제파트너로 성장해왔다. 그동안 제너널모터스나 모토롤러 등 미국의 주요기업들이 중국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했으며 지난해 양국간 통상규모는 1100억달러나 된다. 미국이 이같은 현실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 중국은 부시 공화당 행정부가 이전의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보수층의 확고한 지지를 얻기 위해 대외강경노선을 수립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에 투자했거나 중국과 거래하고 있는 수많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을 위해 자연스럽게 로비스트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거래에서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으면서도 중국과 무역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것도 이 때문.

    또 하나는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전 부시 대통령 등 미국 내 중국 인맥이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부시 대통령 당선 후 주미대사를 역임한 3명의 전직대사를 비밀리에 보내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을 만나보도록 했다. 이어 부시 전 대통령과 가까운 양제츠(楊潔 ) 외교부 부부장을 신임주미대사로 파견했다. 양제츠는 부시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인 70년대 후반 부시를 수행해 티베트를 돌았는가 하면 1989년 톈안문 사건 때는 비밀특사로 미국에 파견되기도 했다.

    “미국이 ‘잽’ 던져봤자…”만만디 중국
    마지막으로는 중국 대외정책의 유연함이다. 중국은 ‘다른 것은 제쳐놓고 같은 것을 찾자’는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저우언라이(周恩來) 이래 외교 모토로 삼아왔다. 이는 ‘적이 다가오면 피하고, 서면 교란하고, 지치면 공격하며, 물러나면 추격한다’(敵進我退, 敵駐我攪, 敵避我打, 敵退我追)는 마오쩌둥(毛澤東)의 ‘16자 전법’과 함께 중국 외교의 철칙이 돼있다.

    이 때문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게 중국 외교의 특성으로 알려져 있다. 부시행정부 출범 후 중국은 이미 미국의 강경노선과 맞서지 않기 위해 유연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주룽지 총리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NMD를 추진할 경우 중국과 협상하게 될 것”이라며 협상의 여운을 남긴 것도 변화의 하나다.

    중국은 또 미국이 추진중인 TMD에 대해서는 대만만 참여시키지 않으면 괜찮다는 입장이며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에서도 이지스함을 제외한 다른 무기들에 대해서는 그리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은 이달 중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대만 군수회담에 대비, 첸 부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이지스함의 대만판매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역설했으며, 대만에 대해서도 여러채널을 통해 충분히 경고했기 때문에 별다른 이변이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제네바 인권위원회에 중국의 인권문제 비난 결의안을 상정하는 데 대해서도 ‘견제구’ 정도로 간주할 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과거 정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정부치고 출범 초기 중국에 대해 강하게 나오지 않은 정부가 없었던 것처럼 부시 행정부도 초기엔 대외정책 수립을 위해 중국에 강경하지만 곧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같은 중국의 입장은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지난달 워싱턴 포스트와 가진 회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장주석은 이 회견에서 “중국과 미국은 주요한 나라다. 양국의 우호관계는 양국의 국익에는 물론 아시아, 나아가 전세계의 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과의 힘겨루기가 과연 미국에 이득이 될 것인지 잘 알아서 판단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