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9

2001.04.12

불법 S/W 단속 … 국민은 예비범죄인?

영장없이 ‘토끼 몰이식’ 강행에 난리법석 … 정품 입증 못하면 모두 복제품 취급

  • 입력2005-02-23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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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S/W 단속 … 국민은 예비범죄인?
    단속반 떴다’ ‘지역이 어디냐?’ ‘안양-금정 겜방(게임방)!’ ‘다른 지방 현황도 알려달라’ ‘대구 산격동 유통단지 단속중’ ‘함정단속에 유의하라’….

    군 작전상황실을 방불케 할 만큼 긴박감이 묻어나는 이 글들은 지난 3월5일 이후 전국에 돌풍처럼 휘몰아친 불법복제 소프트웨어(SW) 집중단속의 파장을 단적으로 시사한다. (사)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안티SPC’ 사이트(상자기사 참조)엔 이런 글들이 매일 업데이트 되면서 이번 고강도 단속을 한껏 질타하고 있다. SPC는 국내외 57개 SW업체를 대변하는 이익단체. 회원사로 한국MS(마이크로소프트), 한국어도비, 매크로미디어 등 8개 외국계기업을 비롯해 한글과컴퓨터(한컴), 새롬기술, 안철수연구소 등 국내 유명기업이 망라돼 있다. 이번 단속대상 SW 역시 모두 이들 업체의 제품.

    때문에 검찰의 의뢰로 단속 초기 기술협조를 맡았던 SPC는 전혀 수사권이 없음에도 한때 자체 단속에 나선 것으로 오해를 사 “SPC가 공권력을 사칭했다”고 주장하는 네티즌들의 해킹 및 항의접속 폭주로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혼란을 빚기도 했다. 3월29일 현재 SPC사이트는 여전히 다운된 상태다.

    벤처, 닷컴기업 절반 이상 ‘개점휴업’

    불법 S/W 단속 … 국민은 예비범죄인?
    오는 4월 말까지 계속될 이번 합동단속의 주체는 정보통신부와 검찰, 그리고 행정자치부. 경찰도 별도 단속에 뛰어들었다. 지난 2월19일 “불법 SW 단속을 철저히 하라”는 대통령 특별지시가 내려진 데다 단속을 총괄하는 대검찰청이 전국 21개 지청별로 단속반을 편성해 대기업, 중소벤처, 대학, 학원, 관공서 등에 대한 대대적인 무작위 단속에 나서 그 충격은 전례 없이 크다.



    “지식기반산업 조기정착을 위해 정품SW 사용을 강화하자는 취지엔 공감한다. 하지만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이기’식 단속만 강행하면 수익이 날 때까지 최소 2, 3년 걸리는 신생 벤처는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 3월20일 MS의 SW 독과점 규탄 성명을 낸 대덕밸리 벤처기업모임 ‘21세기벤처패밀리’(회장 이경수·지니텍 대표)의 한 관계자는 “단속 여파로 대덕밸리 내 550여 벤처 중 절반이 개점휴업 상태”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실제 자본금 2억~3억원 미만 벤처의 경우 단속에 따른 정품 구입비가 자본금에 육박할 정도다.

    지금은 다소 소강국면이라고는 하지만, 테헤란밸리에 밀집한 닷컴기업들도 여전히 난리법석을 치르고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를 운영하는 C업체는 70여대의 PC에 정품을 까느라 1억원을 들였다. 이름만 대도 알 만한 한 SI(시스템통합)업체는 무차별 단속을 겁낸 나머지 복제SW는 물론 MP3 파일까지 몽땅 지우느라 날밤을 샜다. 몇몇 업체는 아예 문까지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포토샵, 쿼ㄱ익스프레스 등 고가의 편집디자인 SW를 복제해 사용해온 일부 출판사의 경우 아예 4, 5월 대목을 놓쳤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모 벤처기업 대표(35)는 “불법복제를 관행처럼 여겨온 현실과 정품 사용 원칙론 간의 괴리 해소를 위해 비싼 SW 가격을 인하하거나 유예기간을 주는 조치 없이 이뤄지는 마구잡이 단속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불법복제가 지적재산권을 도용한 범죄행위란 점에서 단속의 당위성을 부정할 순 없다. 그렇다면 단속에 대한 끊임없는 반발은 과연 어디서 연유할까.

    문제는 단속절차에 ‘중대 하자’가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현행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불법복제자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SW 저작권사의 고소가 전제돼야 하는 친고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번 단속은 압수수색영장 없이 간단한 통보 후 즉각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이런 단속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오히려 단속의 본질마저 흐리는 왜곡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

    YMCA 열린정보센터 김종남 간사는 “정부는 불법행위 단속이란 명분 하에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며 “이는 전 국민을 예비범죄인으로 매도하는 어처구니없는 처사”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대검 형사과 관계자는 “굳이 영장 제시를 요구하며 단속을 계속 거부한다면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 검찰 단속을 거부할 ‘강심장’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자의적인 단속기준. 단속반이 ‘SW의 원본 CD와 인증서, 영수증 등을 갖추지 않아 정품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SW는 전부 불법복제품으로 간주한다’는 일방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 그러나 3월15일 성명을 통해 단속기준의 부당함을 지적한 정보통신연대(INP·상임대표 문규현 신부) 측은 “SW 소비자의 권익을 지켜줄 보호장치가 없고 복제품을 가려내기도 쉽지 않은 판에 정품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떠넘기는 건 어불성설”이라 비판한다.

    단속대상 및 범위가 들쭉날쭉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이를 뒷받침하듯, 대검은 당초 단속대상 SW를 53종으로 잡았다가 지역 특성을 감안한다는 이유로 이를 각 단속반 담당검사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 불법복제 단속이 처음 시작된 지난 99년의 정통부-검찰 합동단속 당시의 8종에 비하면 종류가 대폭 늘었지만 여전히 단속대상 SW는 국내 3720개 SW사업자 중 극히 몇몇 업체의 제품에만 국한돼 있다. 단속대상기관 역시 언론엔 1500개 정도로 알려졌지만 대검은 “대상기관을 단속반별로 자체 선정토록 했다”고 밝혀 정확한 대상기관 수나 단속일정은 명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단속 투입 인원에 대해서도 대검은 “정통부 직원과 검찰을 합쳐 150명 선이며 이들이 불법복제 점검 프로그램이 담긴 디스켓으로 PC를 검색한다”고 답변하지만 실제 단속엔 정통부 산하 각급 우체국의 정보통신 담당직원들까지 대거 투입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정통부 지식정보산업과 서성일 사무관은 “우체국 직원들이라 단속의 전문성이 낮다는 일각의 지적은 기우”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통부는 단속과정에서 검찰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상시단속을 위해 정통부 내에 독자적인 단속권한을 갖는 사법경찰관리를 두기 위해 관련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정통부는 이미 법무부에 법개정 요청 공문을 띄웠다고 밝혔다.

    복제 SW 사용자측의 또 다른 비판은 이번 단속이 결과적으로 MS의 이익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단속이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일정(3월6∼10일)에 때맞춰 시작된 것이 미 통상대표부가 지난해 5월 한국을 ‘지적재산권 분야의 우선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한 사실과 무관치 않다는 주장이다. 인터넷PC를 대대적으로 보급할 당시에도 정품SW 사용 계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정부가 뒤늦게, 가뜩이나 경영난에 처한 벤처업계가 입을 타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사전 논의 없이 갑작스레 집중단속에 뛰어든 것 자체가 SW강국인 미국의 눈치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그 근거로 이번 단속의 대상이 된 SW의 리스트를 든다. 정통부와 검찰은 “단속의 취지가 희석될 우려가 있어 리스트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 하지만 정보통신연대나 안티SPC가 조사한 목록을 보면 MS제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물론 국내 SW의 MS 의존율(70∼80%)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어쨌든 “단속이 덜 끝나 실적 집계가 안 됐다”고 답하는 대검과 달리 단속 효과는 속속 나타나고 있다. 최대 수혜자는 단연 MS. 단속대상 SW인 윈도, MS오피스, 엑셀 등 OS프로그램 및 사무용SW가 최고 인기품목이어서 단속 후 상당한 매출신장을 기록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때문에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단속에서 적발된 기관들이 물어야 할 MS정품 구입비가 대거 달러로 빠져나갈 것이라며 MS를 공공연히 ‘M$’로 표기할 정도다.

    한컴 역시 “단속 전보다 매출액이 두 배 가량 늘었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 최대인 용산전자상가의 경우 명암이 엇갈린다. 이곳 선인컴퓨터상우회측은 “SW매장엔 정품 주문이 폭증해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지만 불법복제가 불가능해진 조립PC 매장들은 전월대비 30% 이상 매출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SW 구매패턴도 급속히 바뀌고 있다. ‘심마니’ 등 검색포털이 운영하는 SW자료실에서 필요한 무료 SW(프리웨어)를 다운받거나, 일정 사용료를 내면 정품을 쓸 수 있는 서비스를 찾는 사용자들이 늘고 있다. 또 (사)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국내외 SW공급업체 7개사와 ‘회원사 공동 할인구매협약’ 체결에 나서는 등 기업들의 SW 공동구매 방식도 보편화되는 추세다.

    이런 변화에 대해 SPC는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SPC 송기영 홍보팀장은 “지난해 12월 국내 유명 IT업체인 ‘옥션’과 ‘인터파크’에 대한 검찰 단속에서 이들 두 업체의 SW 불법복제율이 50∼70%에 달했다”며 “이를 정품 비용으로 환산하면 5억원대에 이를 만큼 국내의 복제 문제는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대규모 단속은 올 하반기에 한 차례 더 있을 전망이다. 정통부와 대검은 “단속시기와, 단속대상을 개인용 PC로까지 확대할 것인지 여부를 확정짓진 않았지만 단속은 반드시 실시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전혀 ‘소프트’하지 않은 이런 단속이, SW 불법복제율 50%(OECD 가입국 중 8번째)인 한국이 ‘복제 천국’의 오명을 씻고 국내 SW산업을 명실상부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도약시킬 발판이 될진 의문이다. 이번 단속으로 국내 SW 사용자들이 얻은 건 “MS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도록 국산SW의 기술력을 키우자”는 뼈아픈 자성(自省) 하나뿐이지만 그 대가로 치러야 할 ‘수업료’는 천문학적 수준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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