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3

2000.12.14

삼성의 숨은 보배 ‘강구라와 왕손이’

  • 입력2005-06-07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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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의 숨은 보배 ‘강구라와 왕손이’
    프로농구 수원 삼성에 강병수(32)라는 선수가 있다. 경기에 나서는 경우보다 벤치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은 대표적인 후보선수다. 나이도 최고참급으로 시즌 개막 전 1년 계약을 했다. 송도고-고려대-산업은행-나래를 거치며 한때는 NBA급 점프와 리바운드로 한몫을 하기도 했지만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의 별명은 강구라. 워낙 입담이 좋고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해 붙은 별명이다. 술은 한 잔도 못하면서 술취한 사람보다 더 잘 논다. 후배들에게는 아주 인기가 높지만 아직 미혼일 정도로 숫기가 없기도 하다.

    얼마 전 강구라 때문에 특이한 경험을 했다. 그의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에게 우승컵을 바치고 싶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개인적인 일이라 기사를 쓸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좋은 취지라는 차원에서 본인과 통화한 뒤 기사를 썼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기사가 나가던 날 폐암으로 투병하던 강구라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좀처럼 언론에 이름 석자 나오지 않는 아들의 기사가 이생에서 본 마지막 신문기사라고들 했다. 항상 명랑하던 강구라가 많이 울었다는 얘기를 듣고 기분이 묘했다.

    삼성에는 강병수와 88학번 동기인 이창수(31)가 있다. 주전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지만 팀의 주장이고 강구라보다는 출전 횟수가 조금 많은 편이다. 1m96의 큰 키에 한 손으로 농구공을 잡을 정도로 손이 커 별명이 ‘왕손이’다. 경희대와 실업팀 삼성 시절 국가대표까지 지낸 국내 정상급 센터지만 용병센터가 판을 치는 프로코트인 만큼 활동폭이 줄었다.

    개인적으로 삼성 농구팀에서 ‘미스터 삼성’은 왕손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삼성구단과 인연이 많기 때문이다.



    왕손이는 간염에 걸려 선수생활을 접을 뻔 했다. 무려 2년 동안을 코트에 나서지 못했다. 몸이 좋아져 한번 공을 잡았다가 다시 재발, 주위에서는 사실상 선수생명이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삼성은 이창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팀에 전혀 공헌이 없지만 월급을 주는 것은 물론 좋은 약이 있다면 중국에까지 보내면서 치료를 지원했다(당시 삼성은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98년 드디어 완쾌됐고 지난 시즌 ‘올해의 식스맨’에 선정될 정도로 수준급의 활약을 하고 있다. 구단의 헌신적인 지원과 선수의 성공적인 재기에서 인간냄새 물씬 풍기는 미담이 나온 것이다.

    11월30일 저녁 부산사직체육관. 삼성이 우승후보답게 일방적으로 기아를 몰아붙인 끝에 대승을 거뒀다. 11승째(1패)를 올리며 승률이 무려 9할이 넘는 선두 질주를 계속했다.

    경기 후 이창수를 만나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강병수였다.

    “우리팀이 이겼죠? 꼭 우승한다니까. 혹시라도 나 때문에 분위기 가라앉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내일이 발인인데 (아버지)기사 잘 써줘서 고마워요.”

    삼성이 강한 것은 문경은 주희정 이규섭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강구라나 왕손이 같은 ‘좋은 후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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