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3

2000.12.14

막 내린 문예진흥기금, 문화예술 어찌할꼬

2002년부터 준조세성 모금 폐지 방침… “문화예술 활동 위축” 문화계 반발

  • 입력2005-06-07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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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내린 문예진흥기금, 문화예술 어찌할꼬
    영화관이나 공연장, 고궁에 가서 티켓을 사면 ‘문예진흥기금 포함’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의식은 못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관람하고 문화재를 보기 위해선 일정액의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후년이면 이 돈을 안 내게 될지도 모른다. 정부가 문예진흥기금 조성이 준조세에 해당한다며 2002년 1월부터 모금을 폐지할 것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기타기금’인 진흥기금을 ‘공공기금’으로 전환해 기획예산처가 기금 사용 승인권을 갖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이 소식을 접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정부 정책의 무원칙성과 졸속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IMF 사태 이후 문화예술계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무시한 처사”라고 항의하며 모금 조기 폐지 및 공공기금 전환계획의 백지화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사실 정부는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문예진흥기금 4500억원 조성을 목표로 2004년 말까지 진흥기금 모금시기를 입법화한 바 있다. 그러다 올해 들어 전경련 등 재계의 준조세 폐지 요청을 받아들여 조기 폐지하는 쪽으로 다시 방침을 바꾼 것.

    연간 지원금액 200억 감소 전망

    막 내린 문예진흥기금, 문화예술 어찌할꼬
    현재 매년 문화예술계에 지원되는 문예진흥기금은 약 500억원 규모. 이 돈으로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고 연극제를 열고 국악 등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활동을 해왔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모금이 폐지되는 2002년부터 지원 규모는 40% 감소된 300억원 선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문예진흥원 문화총괄팀장 양경하씨는 “모금을 폐지하면 그 피해는 바로 문화예술인들에게 갈 수밖에 없다. 더 이상의 모금 없이 현재 조성된 기금의 이자수입만으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개인에 대한 지원은 거의 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대체 재원이 없는 상태에서 모금이 폐지된다면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이나 문화산업 진흥이 다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고 말한다.

    정부의 이번 방침은 결과적으로 문화예술 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준조세 성격을 갖는 국민 부담이 사라지게 된다는 원칙에는 누구나 찬성한다. 징수에 따른 불편은 물론이고, 언제까지나 국민 성금 성격의 모금에 기대어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것도 불합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기금의 출연, 기업과 재단의 활발한 기금 참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요즘 대학로에는 10명 미만의 관객을 놓고 공연하는 극장이 많다. IMF 사태와 함께 줄어들었던 연극 관객은 그 후에도 전혀 늘어나지 않아 공연이 취소되는 극장도 생겨난다. 극장이 빈사 상태에 놓이면서 연극인들의 생활고도 심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은, 소액이나마 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73년 설립된 문예진흥기금은 우리 문화의 보존과 발전에 꼭 필요하지만 자생력이 부족한 각 부문에 대한 지원사업을 벌여왔다. 창작 및 공연예술 지원, 국제문화 교류, 전통문화 보존사업, 영상문화사업 등 수익성이 없는 순수 문예활동을 지원해준 거의 유일한 재원이었던 이 기금의 대부분은 정부 지원이나 기업의 기부금보다는 극장표나 고궁의 입장권 등 모금(영화관 입장료에 6.5%, 기타 공연장은 3000원 미만에 2%, 3000원 이상은 6% 부과)으로 충당해왔다.

    정부가 기금 모금의 조기 폐지와 공공기금화 방침을 들고나온 데는 기금의 운영을 둘러싼 오랜 잡음과 의혹도 한몫 했다. 사실 문예진흥기금이 비정상적인 형태로 운영돼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화부는 자기 사업인 문화의 집 조성비, 이달의 문화인물 사업비 등을 대부분 문예진흥기금으로 충당했고, 공무원과 청소년지도자 연수비까지 가져다 썼다. 문화부가 손을 내밀면 아무 때나 돈을 내주는 개인금고인 셈. 진흥사업비 명목으로 문화부나 산하 단체들이 가져다 쓰는 돈은 심의도 제대로 받지 않고 해마다 고정적으로 나가고 있으며, 문화부는 정부 예산이 확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삭감된 항목을 진흥기금 사업에 멋대로 집어넣기도 했다.

    이에 반해 문화예술인들이 기금을 받아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 액수도 몇백만원 수준이 고작이고, 한번 기금을 받은 사람에게는 신청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혜택은 없고 부담만 되는 진흥기금은 아예 폐지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이라는 본디 목적과 달리 거액의 예산이 심의도 거치지 않은 채 문화부와 그 산하단체로 마구 전용되고 있다는 비판은 마침내 ‘문예진흥기금을 공공기금화하자’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기금사용 승인권을 기획예산처가 가짐으로써 투명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겠다는 것.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상지대 경제학과 임상오 교수는 “문화예술은 그 특성상 시장논리에 따르면 생존할 수 없다. 객관성 유지를 위해 공공기금화한다는 명분은 자칫 순수 문화예술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자율성을 해치고 간섭과 통제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획예산처가 문예진흥기금을 공공자금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문화예술지원의 감축을 내비쳤듯이, 문화예술은 경제논리만으로 보았을 때 ‘단가’가 빠지지 않는 사업분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방침은 문화예술의 사회 인프라적 기능을 따져보지 않은 단순 경제논리의 시각이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현재 문예진흥기금의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개혁을 해야 하는 것이지, 폐지하고 통제하려 드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짚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예진흥기금을 전문적이면서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포함한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시민문화감리제도를 법제화하고 운영토록 하는 일이 시급하다. 문예진흥기금은 문화예술 부문의 유일한 공공재원인 만큼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통해 우리 문화예술계의 자립기반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문화평론가 이동연씨)

    내년 1월쯤 기획예산처와 문화부, 문화예술단체와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공청회가 열릴 예정이다. 걸핏하면 문화예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문예진흥기금이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문화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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