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6

2000.10.26

평화체제 구축 쉽지 않다

민족적 역량 키우기 일차적 과제…‘강대국 외교’ 훨씬 복잡해질 듯

  • 입력2005-06-29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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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체제 구축 쉽지 않다
    노벨평화상은 지금까지 주로 사람들의 인권, 복지를 높이거나 화해, 화합을 이끈 공로자들에게 주어졌다. 모두 넓은 의미에서의 ‘평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새천년의 첫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그만큼 수상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평화상을 받은 이유는 50년간의 대립과 반목을 뚫고 남북한의 화해를 이끌어냈기 때문이고, 여기에 그동안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온 공로가 덧붙여졌다. 그의 평화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음은 말할 나위 없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국이 국제 평화 증진에서 나누어 져야 할 책임도 커졌다.

    한반도는 작게는 동북아, 크게는 세계의 평화체제 구축에서 하나의 시험대 구실을 했다.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냉전이 끝난 지금까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이념 대결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남북한이 오랫동안의 대치 상태를 접고 정상회담에 이어 화해와 협력의 공동 선언을 발표했으며, 뒤이어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리고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냉전 종식이 한반도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크고 작은 발걸음들이 착실히 디뎌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이 곧 한반도나 동북아 전역의 평화 체제 구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간의 화해 진전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것이며, 동북아 평화체제의 구축 또한 만만한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미국의 세계 패권은 확고해진 것 같지만, 권력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미국의 권력 독점에 도전하는 세력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저명한 정치학자 헌팅턴은 이를 ‘문명간의 대립’으로 규정했다. 그는 중국 또는 유교 문명과 아랍 문명을 미국이 주도하는 기독교 문명에 대한 가장 큰 도전세력으로 보고, 이들이 연합할 때 서구 문명이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문명간의 차이와 충돌 가능성을 과장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념 대결이 사라졌다고 해서 세계 평화의 구축이 쉽사리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경고로 받아들일 만하다.

    실제로 세계 정치에서 이념간의 거대 대립은 사라졌지만 민족, 종교간의 작은 대립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러한 미시적인 대립에 더하여 거대 대립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세계 패권 경쟁이 그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대한 가장 큰 경쟁자로 중국을 꼽는다. 중국의 국력이 지금같이 성장한다면 불과 20년 뒤에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패권 경쟁 후보로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물론 미-중간의 경쟁이 이전의 미-소 냉전만큼 경직되고 위험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이들의 본격 경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과거 우리의 종주국이었고, 바로 이웃 나라다.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국경을 나란히 하게 된다. 중국의 힘이 커지면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할지 모른다. 러시아와 일본의 이해 관계 또한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강대국 외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해지고 동북아의 평화체제 구축 또한 훨씬 다양한 문제들을 안게 될 것이다. 마치 구한말의 강대국 각축장 같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을 피하고 우리의 자주성을 유지하면서 평화 체제 구축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 이를 위해 남북한 화해, 평화 체제의 확립, 궁극적으로는 통일 국가의 완성이 필요하다.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이런 평화-통일 체제의 구축을 독려하는 심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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