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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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도호 납치범 내주고 오명 벗는다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낙관적 전망…망명에 지친 납치범들도 일본 귀국 원해

  • 입력2005-10-05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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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도호 납치범 내주고 오명 벗는다
    북한의 대미 수교 및 개방의 최대 걸림돌이던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건이 의외로 쉽게 풀릴 전망이다. 이와 같은 낙관적인 전망은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방세계에 던진 일련의 발언과 그에 대한 한-미 당국자들의 화답을 면밀히 분석한 데서 유추할 수 있다. 특히 한-미측의 화답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전례 없이 긍정적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미국과의 수교는 언제쯤 될까요?”

    “내 말 떨어지면 내일이라도 미국과 수교합니다. 미국이 테러국가 고깔을 우리에게 덮어씌우고 있는데 이것만 벗겨주면 그냥 수교합니다.”

    8월12일 김정일 위원장이 남한 언론사 사장단을 평양 목란관으로 초청해 주재한 오찬에서 나눈 대화의 일부다. 물론 김위원장은 이 외에도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앞두고 북한을 방문(8월5∼12일)한 호기심 많은 ‘왕년의 대기자’들에게 많은 뉴스거리를 제공했다. 그로서는 남한 언론사 대표단을 상대로 일종의 ‘집단 기자회견’을 한 셈인데 주목할 사실은 그가 북-미 수교의 조건을 딱 부러지게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는 언론사 대표단이 방한 시기를 두 번이나 물었으나, “언론사 사장들이 톱 뉴스만 빼가려고 그러는구먼…”이라는 농담을 하면서 시기를 끝내 특정하지 않았다.

    김정일-언론사 대표단의 대화록이 공개되자 당사자(미국)의 화답은 의외로 빨랐다.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기간 ‘은둔에서 해방’된 김위원장의 서방세계를 향한 거침없는 발언이 전세계에 생중계되었을 때만 해도 미국은 신중하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미 국무부의 필립 리커 대변인은 8월14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할 경우 즉각 수교할 용의가 있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에 관한 보도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북한측과 테러 문제에 관해 추가로 양자회담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그들(북한)이 필요한 조처들을 취해 우리가 그들을 명단(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북한(김정일)이 던진 ‘공’을 미국이 되넘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추가로 양자회담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했다. 리커 대변인이 언급한 ‘필요한 조처들’은 그 한 주 전에 평양에서 열린 북-미 테러협상에서 마이클 쉬언 미 국무부 테러 담당 대사가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밝힌 선결조건 중의 하나다.

    그런데 미국측은 그때 이미 북한측과 테러 문제에 관해 ‘생산적 회담’을 갖고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는 데 필요한 조처들을 설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미국은 그중에서도 지난 70년 일본항공(JAL) 여객기를 납치한 적군파 게릴라들에 대한 피신처 제공을 중단하는 것이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는 데 필요한 조치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김정일의 8월12일 발언은 북-미 테러협상 결과, 즉 미국측이 제시한 구체적인 선결조건을 보고받은 뒤에 나온 것이다.

    8월18일 김대중 대통령의 CNN 방송 회견 내용도 관심을 끈다. 김대통령은 이 회견에서 미-북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북-미 관계 진전과 관련한 몇 가지 생각이 있지만 이 문제는 미-북이 풀어야 할 문제로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북-미 관계의 진전을 위해서는 양국이 미사일 문제, 테러지원국 문제 등을 풀어야 한다고 본다. 이 문제가 풀리면 김정일 위원장도 얘기하다시피 내일이라도 국교가 정상화되고 관계가 개선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양국이) 협상하고 있으며 (미국이) 테러국가 지정을 풀어줄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 두 문제가 해결된다면 북-미 관계는 순조롭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김대중-김정일-미 국무부 3자의 발언을 종합하면 북-미 관계 개선의 속도는 곧이어 개최될 추가 북-미 테러협상에서 북한이 일본항공 요도(Yodo)호 납치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낙관적인 관측을 갖게 하는 것은 이 문제에 관해 북한이 과거와는 달리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30년 간의 망명생활에 지친 요도호 납치범들 또한 귀향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쿄발 후쿠오카행 B727 요도호가 일본 적군파 9명에게 공중납치돼 김포국제공항에 불시착한 것은 지난 1970년 3월31일. 당시 경찰서 습격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려 있던 적군파의 다미야 다카마로 등 납치범들은 “혁명을 위한 국제 근거지를 마련하겠다”며 쿠바행을 결행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자 일단 김포공항에 기착해 승객 129명을 인질로 북한행을 요구했다. 그 뒤로도 적군파의 항공기 공중납치는 계속됐지만 당시만 해도 일본 항공 사상 처음 있는 항공기 납치사건이었다(한국도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 항공기 불법납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 일명 ‘동경조약’에 가입했다).

    당시 범인들은 탑승객 전원을 석방하는 대신 야마무라 신지로 운수성 정무차관을 인질로 잡고 북한으로 넘어갔다. 9명 가운데 당시 16세였던 시마다 야스히로는 88년 일본에 잠입해 지하활동을 벌이다 유일하게 체포돼 징역 5년의 형기를 마치고 석방되었다. 또 96년에는 위조달러를 사용하다 태국에서 구속된 다나카 요시미(田中義三·50)가 지난 6월 태국 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고 일본으로 송환돼 현재 요도호 사건의 전모와 세계 각지의 적군파 요원 활동 등에 대해 조사받고 있다.

    다나카가 일본으로 송환되기 전에 태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그를 면회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주범인 다미야는 95년 12월 심장마비를 일으켜 북한에서 사망했으며 그보다 앞서 요시다 긴타로(85년)와 와케로 다케시(88년)도 망명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었다. 따라서 북한에는 현재 다나카의 부인과 딸 셋을 포함해 고니시 다카히로(小西隆裕·55) 등 4명과 일본인 처, 그리고 20여명의 가족 등 32명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98년 3월 당시 평양에서 요도호 납치범 생존자 4명 가운데 3명을 면담하고 온 일본 자민당 대표단은 “납치범들이 납치사건과 관련해 무죄보장을 받은 상태에서 일본에 돌아갈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근황을 전한 바 있다. 또 요도호 납치사건 30주년인 지난 3월에 시작된 북-미 테러협상에서 보인 북한측의 공식 반응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망명자인 그들을 보호하는 것은 국제법상으로도 인정돼 있다”는 담화를 북한인권협회 대변인 명의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관련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도 실제로는 요도호 납치범들이 부담스러워 납치범들이 동의할 경우 제3국으로의 이주도 염두에 두면서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납치범들 또한 변화하는 북한의 처지와 자신들이 그 변화의 걸림돌이 되는 정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30년간의 망명생활에 지친 요도호 납치범들이 귀향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의 소식통은 “납치범들의 꿈은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이 태어나면 일본 국적을 취득하게 했다. 다나카 요시미의 딸 셋도 모두 일본 국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적군파는 60, 70년대 일본 대학 연합체인 젠가쿠렌(全學聯) 내에서도 가장 과격했던 학생 단체로, 주로 간사이(關西) 지방에 있는 대학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적군파는 군사 조직처럼 내부를 꾸리고, 엽총을 수집하는가 하면 수제 폭탄도 제조했다. 그러나 적군파는 요도호 납치사건 이후 거점을 중동과 유럽으로 옮겨 시리아 레바논 등지에서 이슬람 과격파들과 연대해 지하활동을 벌였으나 중동의 평화 붐을 타고 체포되거나 추방당하는 등 급속히 세력이 약화되어 지금은 명맥이 거의 끊어졌다.

    70년 요도호를 납치한 적군파는 무장봉기를 통해 세계 혁명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혁명의 근거지’로 북한을 택했다. 그런데 87년 KAL기 폭파사건을 계기로 88년부터 13년째 미국의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올라 있는 북한은 지금 테러지원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4인의 테러리스트와 그 가족들을 ‘혁명의 근거지’에서 내쳐야 할 역사의 아이러니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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