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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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타입의 교수

  • 입력2005-09-26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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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타입의 교수
    “이광형 교수가 언제부터 ‘정보보호’를 전공했단 말인가. 좋다는 것만 좇아다니는 것은 아닌가.” 아직 나에게 직접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내가 없을 때는 이렇게 빈정거리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예로부터 교수는 한 가지 전공 분야에서 전문성을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교수도 깊이 있는 강의를 못하거나 좋은 논문을 쓰지 못하면 날갯죽지 빠진 꿩의 신세가 된다. 매년 시행하는 교수평가에서도 주로 논문의 편수를 따진다. 그래서 교수에게 전공 분야에서의 국제 경쟁력은 생명과 같다.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국제 논문을 쓸 수 없고 국제 논문을 쓰지 못하면 실력 없는 교수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좁고 깊게 연구해야 한다. 한 분야에 전력하는 것이 성공하는 교수에 이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나도 비교적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가끔 전공 이외의 글도 쓰고 책을 내기도 했지만 이것은 여가활용의 차원이었을 뿐 본업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했다.

    그런데 나는 금년 초에 이런 전략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도전을 시작했다. 그동안 별로 열심히 하지 않던 ‘정보보호’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보보호란 사이버 세상이 전개되면서 나타난 해킹과 바이러스 관련 기술을 다루는 분야다. 세상의 모든 것이 컴퓨터와 통신에 의해서 움직이자 해킹과 바이러스는 중대한 이슈가 되고 있다.

    미래에는 컴퓨터는 말할 것도 없고 TV 등 각종 가전제품도 인터넷으로 연결된다. 이런 것들이 바이러스에 걸리면 미쳐서 이상한 짓을 한다. 금융과 전자상거래도 정보보호가 제대로 안 되면 무용지물이 된다. 국방체계도 사이버군의 공격을 받으면 무력해진다. 결국 국가의 국방력과 경제력이 정보보호 기술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약 4년 전의 일이다. 이때부터 나의 머릿속에는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이렇게 새로이 대두되는 분야에는 교육부 소속의 일반대학들이 신속하게 대응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과학기술부 소속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기동성 있게 대응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KAIST에는 해킹-바이러스 분야를 담당하는 교수가 없었고 교수를 새로 뽑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서서히 정보보호 중에서도 나의 기존전공과 관련되는 것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연구그룹을 조직해 체계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나서서 조직해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나는 전문성이 부족했고 ‘비전공자가 나선다’고 욕먹는 것도 싫었다. 정보보호와 인접 분야에 있는 교수들에게 권해봤다. 그런데 그들도 누군가 나서면 도울 수는 있지만 자신이 주도적으로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해킹 동아리를 만들어 몰두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국가적인 필요성과 자발적인 학생들을 외면한다는 것은 KAIST 교수로서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년 초가 되자 양심상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곳곳에서는 해킹-바이러스 문제가 터졌다. 이렇게 되자 교수의 품위만을 유지하려는 나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생각됐다. 나의 기존 전공이 손해를 보고 타인으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주위의 관련 교수들에게 참여를 요청했다. 그러자 12명이나 모였다. 연구센터를 만들고 공동연구와 교육을 시작했다. 정부와 산업체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갖가지 격려와 지원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이상적인 교수의 상도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수에는 세 가지 타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번째는 연구하지 않는 교수고, 두번째는 논문만 쓰는 교수다. 그리고 세번째는 논문의 짐(양)으로부터 해방되어 사회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교수다. 나도 이제는 세번째 타입의 교수가 돼야 할 때가 된 모양이다. 교수평가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에 직접 이익이 되는 일에 좀더 충실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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