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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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또 오를 보험요율… “내 돈 어디로?”

30, 40년 후엔 완전 바닥…386세대 가장 큰 피해자 될 가능성

  • 입력2005-09-21 1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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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고 또 오를 보험요율… “내 돈 어디로?”
    올해로 직장생활 8년째인 회사원 김모씨(35)는 매달 국민연금으로 13만5000원씩을 낸다. 김씨의 연봉은 4000만원 선. 국민연금 보험요율 9% 중 고용주가 부담하는 4.5%를 제외하고 김씨가 직접 내는 금액을 계산하면 표준소득월액의 4.5%인 13만5000원씩을 내는 것이다. 올해 62세인 김씨의 아버지가 60세부터 연금을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김씨 역시 60세가 되는 오는 2025년부터 연금 혜택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2013년부터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늦춰지기 시작해 5년 단위로 한 살씩 늦춰지도록 해놓았기 때문에 실제 김씨가 연금을 받게 되는 것은 63세가 되는 2028년부터다. 아직 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때쯤 되면 김씨가 받는 연금액도 현재처럼 생애평균소득의 60% 정도보다는 훨씬 적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 현행 9%(가입자 4.5%+고용주 4.5%)인 보험요율이 언제 한꺼번에 뛰어오를지 모른다는 것이다. 현행법상으로도 2009년 이후에는 보험요율을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는 데다 많은 전문가들이 보험료율을 현재의 2배 이상 수준인 15∼20%로 올리는 방안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올해 62세에 연봉 8000만원대를 받는 김씨의 아버지는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된 88년부터 표준소득월액의 4.5%가 아니라 3분의 1 수준인 1.5%만을 연금으로 납부해왔다. 93년부터는 2%를 지출했고 99년 4월 들어서야 아들과 똑같은 4.5%를 연금으로 내게 됐다. 그러나 아버지 김씨는 이미 88년 이후 자기가 벌어들인 평균소득의 절반 이상을 꼬박꼬박 연금으로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연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는 ‘남는 장사’ 아들은 ‘밑진 장사’

    아들 김씨는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국민연금에 볼이 퉁퉁 부어 있지만 아버지 김씨에게 국민연금은 하나도 억울할 것이 없는 ‘남는 장사’인 것이다. 수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아들 세대와 아버지 세대의 엄청난 갈등을 예고하는 전주곡인 셈이다. 이 모든 것이 앞으로 50년 안에 기금이 모두 바닥날 것으로 보이는 국민연금의 재정적자 때문이다. 강남대 김진수 교수(사회경제학)는 “현행 국민연금처럼 적게 내고 많이 버는 고소득 금융상품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근본 설계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데에는 가입자나 관련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스스로도 동의하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경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국민연금을 현재대로 운영하면 국민연금은 2039년에 바닥날 것이라는 준엄한 경고를 던졌다(19쪽 상자기사 참조). 이 수치는 보건사회연구원 등 국내 연구기관이 예측한 ‘2049년 고갈’ 시나리오보다 10년이나 앞선 것이다. 세계은행(IBRD) 역시 얼마 전 우리나라 연금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과 기업연금으로 이원화해 운영하고 법정 퇴직금을 폐지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게다가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연금 수혜자가 늘어날수록 기금이 소진돼가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눈앞에 보이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방지하기 위해서 국민연금의 현행 보험요율을 높여야 한다는 데는 현재 이론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98년 말 개정한 국민연금법 제4조에는 ‘재정재계산제도’라는 것이 있다. 5년에 한 번씩 국민연금의 재정상태를 점검해 수익 지출 규모를 짜는 데 반영한다는 것이다. 개정된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오는 2003년부터 5년마다 한 번씩 재정재계산 작업을 하게 된다. 그러나 보험요율 인상에 따르는 연금 가입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국민연금법은 부칙에서 2009년까지는 보험요율을 손대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금융보험학)는 “재정재계산 제도는 국민연금의 재정 상태를 추계해 본다는 의미일 뿐 (재정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 절차를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언제쯤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날지를 예측하는, 제대로 된 재정 추계 자료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얼마 전 이러한 재정 추계작업을 시작했고 이 자료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보건복지부측은 “도시지역 가입자 확대 등 정책 변화가 잦다 보니 부분적으로 예측한 자료는 있어도 이를 종합적으로 예측한 자료가 아직 없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각급 연구기관에서 추계한 국민연금 재정 전망을 보면 대체로 2040∼2050년 사이에 기금이 모두 바닥날 것이라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최병호 박사의 추계에 따르면 현행 보험요율 등 기존 제도가 계속 유지된다면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2034년에 재정수지 적자로 돌아서고, 2049년이면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론 기금의 고갈 자체는 크게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많은 선진국이 기금을 만들어놓고 연금을 지급하는 적립방식을 버리고 그때그때 세금 형태로 분담금을 부과해 수혜자들에게 지급하는 ‘부과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현재의 노인들을 자식 세대가 책임지고 자신의 노후는 미래 세대가 책임진다는 세대간 대타협을 전제로 한다. 돈을 두 배 이상 내서라도 연금 재정을 충실하게 해야 하는지, 아니면 국가의 노후 보장 역할을 줄이고 기업이나 개인의 몫을 늘려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적 합의조차 없는 우리 실정에서는 시기상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대간 형평성을 맞추는 방향으로 연금제도의 개편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 다음은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의 지적. “미래 세대의 과중한 노인 부양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기초연금은 계층간 소득재분배 기능을 수행해야 하고 소득비례 연금은 부담이 후세대에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강남대 김진수 교수도 “애초부터 잘못 설계된 국민연금 체계는 기금이 고갈될 때쯤 되면 세대간의 엄청난 갈등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아직 정부가 연금제도 개편에 본격적으로 팔을 겉어붙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보건복지부 신의균 연금재정과장은 “최근에 변경 시행된 정책이 완전히 정착되기도 전에 또다시 연금 체계에 손을 대면 정책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정부가 연금 체계에 손을 대지 않는 데는 ‘정치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차피 연금을 올리거나 수급 연령을 늦추는 등 표를 깎아먹을 수밖에 없는 비인기정책을 누가 국민들에게 설득하려고 나서겠느냐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윤병식 박사는 “앞으로 연금의 수혜 계층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국민연금 제도에 손을 대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 늦기 전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연금제도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나중에 이를 개혁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연금제도의 개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국민연금 세대와 이전 세대 간의 반목과 갈등이라는 시한폭탄이 놓여 있다.

    국민연금 세대는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된 1988년 무렵에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세대, 그러니까 학번으로 따지자면 대략 80년대 초반 학번들, 386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영문도 모른 채 국민연금을 꼬박꼬박 부담해왔지만 정작 이들이 직업생활에서 은퇴하고 연금의 혜택을 누릴 만한 시점인 2030, 2040년이 되면 연금은 바닥날 운명에 처하고 만다. 기껏해야 40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하는 아이러니치고는 너무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이들 세대의 노후에는 이미 불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분배와 형평성에서만큼은 다른 어느 세대보다도 가장 큰 관심을 기울여온 386세대들이 편중과 불평등 앞에 내던져진 ‘자기 몫’을 두고 정작 어떤 태도를 보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항간에는 이제 ‘세대안보’라는 말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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