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9

2000.06.22

샌디에이고의 오렌지 꽃향기

  • 입력2006-01-25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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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디에이고의 오렌지 꽃향기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에 이사를 오게 된 이유는 첫째, 넓은 뒷마당에 반해서였고 둘째, 초-중-고교와 대학교가 집 근처에 있어서 딸아이가 자라는 동안 유년시절의 추억을 듬뿍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고국에서 어린 시절 18년 동안 학교 인근 동네의 한집에서 살았던 나는, 지금도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에 젖어들 때가 많다. 친정 부모님이 부지런히 가꾸시던 정원, 찔레꽃 담으로 둘러싸인 우리 집, 어린 시절의 봄 이야기는 여러 장의 그림이 되어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미래의 꿈나무들이 학교를 오가는 우리 동네 길을 바라보는 것이 마냥 즐겁다. 주말이면 운동장으로 달려가 테니스도 신나게 치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며, 저녁에는 공부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물론 영어 강의가 아직도 나에게는 어렵지만 다양하게 내 자신을 발전시키며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우리 동네는 우체국, 은행, 대형 상점 등이 가까이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무엇보다도 소박한 이웃들이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며 따뜻한 마음이 오가는 동네다. 큰 집, 새 집을 찾아서, 또 명예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자주 이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더욱 마음에 든다. 한결같이 20, 30년을 같은 집에서 자녀들을 키우며 집과 정원을 가꾸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주말이면 낡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부지런한 가장들의 잔디 깎는 소리와 톱질하는 소리가 새벽잠을 깨우기도 한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뒷마당과 앞뜰에 피어 있는 꽃들이 화려한 잔치를 열어 가슴을 설레게 하고 지나가는 이웃들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빨간색의 아마릴리스, 무궁화 철쭉 칸나 장미 제라늄 게발선인장 올린더 보겐빌리아…. 5년 전 자연을 배우고 서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연약한 팔을 걷어붙였던 것에 대한 결실인 셈이다.

    가파른 뒷담 언덕에서 영양실조로 죽어가던 수십 년 묵은 오렌지나무 주변의 구덩이를 동그랗게 파서 마른 흙들을 퍼내고 부엽토를 넣어주며 몇 해 동안 정성을 기울였다. 마침내 금년 봄에는 새하얀 오렌지 꽃들이 조랑조랑 맺혀서 고맙다고 인사말을 하듯 나의 콧등에 다가와 은은한 향기로 나를 취하게 만든다. 올 겨울엔 달콤하고 노란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리겠지….



    결혼 후 13년 동안 고국에서 살 때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이사 다니며 좁은 사택에서 간단하게 살림을 꾸리고 가는 곳마다 짧은 기간의 삶을 만들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참 행복하고 감사하다. 이제야 차분하게 즐거운 우리 집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며 내 인생의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오는 주말에는 꽃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초청해 저녁식사를 대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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