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9

..

병든 사랑 ‘광기의 몸짓’

  • 입력2006-01-25 11:5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병든 사랑 ‘광기의 몸짓’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창문 너머로 세상을 관조하는 길과, 창 밖의 비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인생의 추한 실체와 직면하는 길. 그 두 가지 중에서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30대 연극인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조광화가 선택해온 길은 언제나 후자다. 근친상간과 근친살해로 가부장주의를 모욕하고 배신으로 점철된 세상을 해부하면서 조광화는 겁도 없이 세상에 대한 날선 독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이런 독기는 그 단어를 토하자마자 가볍게 한숨쉬고 싶은 감미로운 ‘사랑’에도 이어져 달콤한 키스를 ‘미친 키스’로 변질시킨다.

    1998년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된 뒤, 최근에 재공연되고 있는 ‘미친 키스’는 일방적인 사랑에 대한 연극이다. 연극은 흥신소 직원이면서 시나리오 작가인 장정을 중심으로 자신의 존재만을 강요하는 병든 사랑에 대해 채워지지 않는 접촉의 열병으로 몸살을 앓는 삼류들의 인생을 그려낸다.

    매춘으로 번 돈으로 옷과 상품에 집착하는 장정의 누이, 사라진 열정을 되찾기 위해 끝없이 바람을 피우는 교수부부, 장정의 집착을 거부하고 덧없는 사랑에 몸을 맡기는 애인 등 무대 위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부유한다. 정박할 중심을 잃은 채 계속해서 대상을 바꾸는 삼류 인생들. 그러나 합일은 멀리 있고 상처와 거리감이 존재를 지배할 뿐이다. 채워지지 않는 열정과 욕망의 말로는 언제나 서글프고 잔혹한 법. 조광화는 세상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방법으로 충족되지 않는 합일의 욕망을 달래고 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인간에 대한 어떤 합일점도 존재하지 않는 ‘미친 키스’의 무대는 병든 자들의 공간인 병원처럼 온통 백색이다. 빛과 색을 흡수하지 않기에 일반적으로 무대에선 금기시되는 백색을 끌어들이며, 조광화는 스며들지 못하고 자신만을 토해내는 병든 인간들의 이미지를 연출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 병든 공간을 점령한 인물들은 듣는 대신 말하려 들고, 사랑의 속삭임 대신 고함을 토해내고, 격렬하게 끌어안다 밀쳐내고 구타한다.

    그러나 이런 가학적인 사랑의 이미지, 또 포화 상태의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미친 키스’는 조광화의 기존 작품에 비해 많이 순화되어 있다. 사랑이라는 주제 탓일까, 시각적으로 연출된 관능적인 사랑의 이미지와 서정적인 아코디언 음률, 시공간의 다발적인 교차를 이끌어내는 연출의 유연한 리듬감은 독기에 주눅들려는 관객을 매혹하고 끌어당긴다.

    덕분에 무대에서 보이는 사랑의 독기는 관객의 심장을 파고드는 맹독성이 아니라, 거리감 속에서 관조하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6월18일 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문의 573-0038.

    연극계 주도하는 30대 연출가들

    ‘활화산 열정’ 침체된 연극판 깨운다


    90년대 후반 이래로 연극계의 지형도가 변모하고 있다. 동인제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증가하는 제작비, IMF(국제통화기금) 이후의 재정 압박 상황, 또 각 대학에서 생겨난 연극영화학과가 현장예술가들을 영입하면서 연극계에 생겨난 동공을 30대 연극인들이 채워나가고 있다.

    비록 대규모의 제작은 아니지만, 이들 30대 연극인은 변방에서 소규모의 작업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미친키스’의 연출가 조광화 외에 ‘혜화동일번지소극장’ 2기 동인인 김광보 박근형 이성열 손정우 최용훈, 또 극단 ‘오늘’ ‘한강’ ‘마녀’의 김상열 위성신 이수인의 활동을 들 수 있는데 이들 3인은 ‘남자 셋이 모이면 대학로가 흔들린다’는 표어를 내걸고 연중 ‘대학로 흔들기’ 축제를 열고 있다(문의 02-763-8538). 어려운 여건에 굴하지 않고 소극장문화를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이들 젊은 연출가의 외침이 우리 연극계를 깨우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