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9

2000.06.22

그 약은 없어요, 비슷한 약 드실래요?

약국, 의사 처방 2천5백가지 구비 사실상 불가능…주사 맞기는 더욱 어려워

  • 입력2006-01-19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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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약은 없어요, 비슷한 약 드실래요?
    “병원 갔다가 다시 약국에 가야 하니 불편하다고요? 그러나 불편하더라도 꼭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의약분업은 무분별한 의약품 오-남용으로부터 우리 건강을 지켜주는 안전벨트입니다.”

    정부의 ‘의약분업 홍보광고’ 중 하나다. 오는 7월1일 의약분업 시행을 앞둔 요즘, ‘분위기 띄우기 차원’에서 이런 광고들이 매스컴에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페니실린 내성률 미국의 7배, 의료보험 중 약제비 비중 영국의 2배…’ 보건복지부는 ‘약을 밥먹듯 하는’ 실태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의약분업 홈페이지’까지 따로 만들었다. 보건복지부 의약분업추진본부는 “이런 노력 덕분에 국민도 이제 의약분업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러나 ‘당위성’이나 ‘공감대’만으로 의약분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는 없다. 시행일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준비가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약분업은 ‘첫인상’을 구길 것”이라고 우려한다.

    중외제약산하 중외정보기술 장원영사장은 6월8일 ‘의약분업 시행 직후 예상되는 7가지 혼란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그의 예측은 제약업체 약국 병원의 ‘현장상황’을 사실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함께 엮었다.



    7월1일 의사가 써준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찾은 사람들은 약사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될 것이 확실하다. 처방전에 쓰인 약이 약국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약국에서 의사처방이 있어야 팔 수 있는 상품(전문의약품)은 대략 2500가지. 그러나 6월10일 현재 전국 약국들은 평균 100여 가지밖에 비치하지 않고 있다. ‘의사들이 주로 처방하는 약의 리스트’가 6월 중순에서야 배포됐기 때문. 보건복지부는 “6월말까지 약 구비를 끝마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우선 일부 초대형 약국들을 제외한 대다수 약국은 2500가지를 모두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포기하고 있는 실정. 약사회 관계자는 “한 약국당 최소 1000가지는 사둬야 하는데 제약회사에 약 주문이 일시에 밀려들고 있는 등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경비(약국당 최소 1800만원 예상)도 만만치 않다. 시행 초기, 약국에 의사가 처방한 약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환자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약은 믿을 수 있나요?

    약국에 처방약이 없으면 환자는 다른 약국에 가거나 도매상에서 배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니면 ‘약효가 동등하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의해 인정된 약을 대신 조제받는 방법이 있다. 문제는 이 경우 ‘정말 약효가 동등하냐’는 점. 보건복지부는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사회 조성문이사는 “대부분의 약들이 의약분업 일정에 쫓겨 형식적인 실험만 한 채 약효 동등성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드시 의사가 처방한 ‘상품’을 복용해야 한다”며 상반된 경고를 하고 있다. “현재 인정된 약효 동등성은 인체를 대상으로 한 부작용이나 약효실험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허점이 많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전문가들은 의외로 많다.

    또다른 문제가 있다. 약국으로서는 의사의 처방을 받는 전문의약품을 다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도 약사들의 ‘실전교육기회’는 거의 없었다. 한 약사는 “전문의약품 중엔 신약도 많아 생소하기도 하고, 실제로 약효가 어떤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서 약사회는 “가급적 대체약품조제보다는 의사의 처방에 충실히 따르라”고 주문하고 있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갔는데 약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약국을 찾든 대체약품으로 조제받든 소비자로선 ‘기분 나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병원 가서 주사 안맞고 오면 치료받은 것 같지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병원치료=주사 한방’공식은 앞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의약분업이 되면 환자들은 의사의 진료를 받은 뒤 병원 밖 약국에서 주사약을 사와 다시 병원에 들어가 주사를 맞아야 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더욱이 대다수 약국은 주사약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기 때문에 상품을 종류대로 구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사약은 대체약품을 쓰기가 위험하다. 약사회 원희목 총무위원장은 “주사 맞기는 의약분업의 ‘뇌관’이다. 의사들이 지금처럼 주사치료를 즐겨 할 경우 의약분업에 대한 의료소비자들의 불만은 여기서부터 폭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의료서비스는 제자리걸음

    의약분업 후 의사들은 처방전 두 장을 환자에게 준다. 하나는 약국조제용, 하나는 환자보관용이다. 모두 의사들이 자필로 약 이름을 기입해야 한다. 의약분업 이후 종이와 펜이 유일한 의료서비스 도구로 되돌아오는 셈이다.

    병원과 약국이 인터넷으로 처방전을 주고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반드시 종이 처방전은 있어야 한다. 의사에겐 두 번 일이 된다. 보건복지부도 병원과 약국간 인터넷 활용을 그다지 권장하지 않는다.

    인터넷 벤처기업에 의한 의료서비스사업도 의약분업의 벽 앞에선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의약분업으로 의료계는 ‘인터넷 서비스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낙후돼 있는 분야’라는 지적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6월10일 현재 약사측은 의약분업에 찬성이지만 의사측은 집단 폐업결의까지 하며 강한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 역시 의약분업에 결국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보건복지부의 전망이다.

    지금은 의사와 약사들이 대립하고 있지만 의약분업이 실제로 시행되면 담합하는 병원과 약국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담합 방식은 병원이 환자들에게 특정 약국을 ‘소개’해 주면 그 약국이 병원에 약 판매 수입의 일정부분을 리베이트로 주는 형식. 약국으로선 병원들과 ‘거래선’을 연결해 놓으면 모든 전문의약품을 구비할 필요도 없고 고정적인 수입을 갖게 되기 때문에 유리하다. 의약분업 시행 후 병원과 약국간의 담합행위에 대해 정부는 기초단체 직원들을 동원해 집중 단속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서울 S구청 모 공무원(45)은 “의사와 약사만 아는 내부거래가 될텐데 그걸 어떻게 잡아내느냐”고 말했다.

    ●‘카피’의 몰락

    약 소비량을 줄이자는 의약분업은 제약회사엔 나쁜 뉴스다. 그러나 최근 증시에 상장된 국내 제약회사들의 주가는 오름세였다. 왜 그럴까. 의약분업 후 약효 동일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제품은 시장에서 추방된다. 사승언 정신과 전문의(개업의)는 “병원이나 약국은 ‘브랜드 이미지’가 우수한 약품을 중심으로 거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외국 유명 제약회사나 국내 대형 제약회사 수십 여 개 업체가 개발한 약품들, 소위 ‘오리지널 드러그’가 약 시장을 석권한다는 것.

    반면 이런 약품을 복사한 이른바 ‘카피 약품’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불량 약품의 유통을 차단한다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3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연간매출 100억원대 규모의 국내 제약회사들은 생존기반이 위태로워지게 된다.

    ●은밀한 약품유통 커넥션

    소규모 제약회사 중 일부는 매출의 30% 정도를 세금계산서 없이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약회사-약도매상-약국을 대상으로 한 이런 거래를 일명 ‘나까마’라고 부르는데 이 부분엔 공권력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정부는 2001년 의약품유통종합정보시스템을 가동, 약품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지만 당장 불법유통 되는 약품들이 의약분업의 ‘훼방꾼’이 될 소지가 있다. 의약분업 이후 만성질환자들은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자주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불법유통 약품들은 이런 수고를 덜어줄 수 있다. 장부에 안 잡히는 약품의 경우 의사의 처방 없이 팔려도 적발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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