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9

2000.06.22

대통령 7년 임기 “줄여라 줄여”

국민 대다수 '2년 단축'희망, 시라크도 찬성…중임·단임 여부는 계속 논란

  • 입력2006-01-19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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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7년 임기 “줄여라 줄여”
    올 여름 프랑스 정치권은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축소하는 헌법개정안을 놓고 가장 분주한 여름을 맞을 것 같다. 프랑스 정가가 이 문제로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지난 5월초부터. 그러나 임기 축소 논의는 한달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시라크 대통령이 6월5일 대통령 임기 단축에 찬성한다는 입장과 함께 구체적 일정표를 제시하면서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이 일정은 6월13일부터 하원내 논의 및 표결, 6월말부터 상원내 논의 및 표결을 거쳐 10월8일 국민투표로 이어지고 있다.

    1995년부터 시작된 자크 시라크 대통령 임기 중 유일하게 한번의 선거도 치르지 않아, 정치적 평화의 해로 기록된 올해를, 가장 혼잡스런 정치적 해로 만든 것은 지난 5월9일 지스카르 데스탱이 내놓은 대통령 임기 축소를 위한 헌번 개정안 제안이었다. 그는 시라크의 임기 7년 중 5년이 지난 올해가 대통령의 임기 축소를 논의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고 주장하며 대통령의 7년 중임제 임기를 5년 단임제로 개정하자고 제안했다.

    상·하원 표결 거쳐 10월 국민투표

    이 제안을 내놓은 가장 큰 이유는 이원집정부 체제의 프랑스에서 흔히 나타나는 좌우동거 체제의 모순점, 즉 상이한 이념을 가진 정당이 대통령과 의회를 나눠 가짐으로써 효율적인 정치를 할 수 없게 하는 문제점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프랑스 하원의 임기는 5년인데 대통령의 임기를 똑같이 5년으로 줄여 같은 해 선거를 치름으로써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의회까지 차지하도록 해 결과적으로는 ‘힘있는 대통령’을 만들자는 것이다. 때마침 2002년은 기존 7년 임기의 대통령과 5년 임기의 하원이 동시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 해이다.

    프랑스 대통령의 임기가 7년으로 정해진 것은 1873년으로 보불전쟁으로 막을 내린 제2제정의 뒤를 이었던 제3공화정의 막마옹 대통령 때부터다. 당시 의회 다수를 차지했던 왕당파는 의회에서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하도록 규정된 대통령직에 군인출신의 왕당파 막마옹을 선출하면서 불완전하던 공화정 체제를 무력화시키고 왕정 복고를 획책하면서 대통령 임기를 다소 긴 7년으로 정한 것이다. 7년의 대통령 임기는 2차세계대전 이후 제4공화정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고 1958년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샤를 드골 헌법의 제5공화정에서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7년 중임제가 구미 다른 나라들의 정치권력에 비해 지나치게 길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고 1973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5년제 개헌을 준비하기도 했다. 퐁피두 대통령의 개헌안은 당시 하원과 상원에서 야당이던 사회당의 반대와 일부 우파 의원들의 반대로 5분의 3의 찬성을 얻지 못해 국민투표에 부치지도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최근 들어 27년만에 본격적으로 다시 정치권에 등장한 5년제 개헌논의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먼저 의회 다수인 사회당과 야당인 우파 정당들 모두 전체적으로 개헌안에 찬성하고 있다. 게다가 6월초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1%가 5년제 개헌안에 찬성하고 있다.

    사회당 소속 총리인 리오넬 조스팽은 이미 지난 5월초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안이 공개적으로 제안되자마자 개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환영의 뜻을 표명했었다. 조스팽은 1995년 대선에서 당시 시라크와 맞붙었을 때 5년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운바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1997년 사회당 하원선거 승리 이후 시라크와 좌우동거 정부를 구성하게 된 뒤로는 어정쩡한 상황 때문에 5년제 개헌안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조스팽의 한 참모는 자신들의 가려운 곳을 우파인 지스카르 데스탱이 긁어주었다며 우파 내에 ‘러브 바이러스’가 퍼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시라크 대통령은 조스팽 총리와는 대조적으로 그동안 5년제 임기축소 논의에 부정적이었고, 작년 프랑스 혁명기념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도 개헌안을 강력히 부정해왔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 결과 국민 대다수가 개헌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마지 못해 5년 임기 개헌 논의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대신 2년이나 남아 있는 자신의 임기가 ‘레임덕’ 현상에 빠지지 않도록, 그리고 개헌안이 5년 단임제로 결정될 경우 재출마 예정인 2002년 대선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이런저런 계산을 하느라 한달 동안이나 개헌 문제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대통령이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미루는 도중 시라크 소속 정당인 공화국연합(RPR)의 주요 지도자들은 5년제 개헌이라는 대세는 뒤집을 수 없으며 대통령이 논의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고 결국 시라크는 5년 임기 개헌을 수용하면서 국민투표 일정을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논의됐던 것보다 두달이나 앞당겨 제시했다.

    한편 극좌에서 극우까지 정치적 이념에 따라 나뉜 10여개 정당들은 헌법 개정안에 대해 매우 다양한 입장들을 보이고 있다. 또한 정당의 공식 입장과는 별개로 주요 정치 지도자들은 소속당과는 다른 입장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 6월 의회 논의 과정에서는 각 정당들간의 물밑 대화와 정치적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

    개헌안에 대한 각 정당들의 입장은 기존 정치권에서 크게 구분되던 좌파와 우파의 기준이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좌파 진영인 사회당(PS)은 1997년 좌우동거가 시작되기 전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상하원, 지방자치체 등 모든 선출직의 임기를 5년으로 할 것을 주장해 왔다. 공산당(PCF)은 전통적으로 대통령 5년제에 반대해 왔는데 현재의 논의도 좌우동거 체제를 무산시키고 대통령 독재를 실시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해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당의 이러한 공식적 입장과는 달리 로베르 휴 당수는 최근 하원 임기를 5년에서 4년으로 줄인다면 대통령 5년제 개헌에 개인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국민여론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대통령 독재를 가능하게 만들 소지를 없애자는 주장이다.

    녹색당은 5년제 임기 축소를 찬성하면서 동시에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현재 국회의원이 동시에 맡을 수 있는 장관직이나 지방자치체의 장 등 다른 임명직이나 선출직 겸임 금지까지 개헌안에 포함되기를 바라고 있다. 시민운동당(MDC)은 이원집정체제를 완전한 대통령 중심제로 바꿀 경우에 한해 대통령 5년 임기제를 찬성한다고 밝혔다.

    우파진영을 살펴보면 공화국 연합(RPR)은 5년 임기 축소는 찬성하지만 중임제는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당의 상원 원내총무를 비롯해 비중 있는 당 지도부 일부는 7년 중임제가 유지돼야 한다는 개인적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반면 지스카르 데스탱 소속의 프랑스 민주동맹(UDF)은 5년 단임제를 적극 찬성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당(DL)은 단임제나 중임제에 대한 의사표시 없이 5년제를 찬성하고 있으며 프랑스 연합(RPF)은 5년제를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 차이들 중에서 5년 중임제냐 단임제냐, 대통령중심제냐 이원집정제냐, 하원의 임기를 4년으로 할 것인가 5년으로 할 것인가 등이 의회 논의에서 각 정당들의 치열한 토론의 대상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정당에 관계없이 의원들 다수가 5년 중임제를 지지하고 있으며, 사회적 환경이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대통령 7년 임기는 다분히 비민주적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올해 안에 127년을 유지해 온 7년 임기의 대통령은 사라지고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는 5년 임기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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