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9

2000.06.22

“합쳐라”… 당근 없이 채찍만 들었나

지주회사 실효성 논란 가열… 3자매각 등 지연으로 공적자금 회수 늦어질 듯

  • 입력2006-01-13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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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쳐라”… 당근 없이 채찍만 들었나
    “법만 만들어 놓는다고 누가 뛰어들겠습니까. 도무지 메리트가 있어야 금융지주회사를 만들고 말고 할 것 아니겠어요?”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현충일(6월6일) 발언 이후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은행 합병 논의가 급류를 타고 있는 가운데 한 금융 전문가는 이렇게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직접 나서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은행 합병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그동안 물밑에서만 논의되어 왔던 합병 시나리오가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경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나리오대로 합병이 추진될지도 의문이지만 추진된다고 해도 애당초 목표했던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들을 내놓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기업금융 소매금융 카드 증권 등 다양한 영업 분야를 갖는 금융기관들을 지주회사 체제로 묶어 금융 전업 기업가를 육성하겠다는 장기적 밑그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은행간 조직 문화가 서로 달라 은행 합병 때마다 ‘화학적 결합’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방식을 통해 합병에 따르는 문화적 갈등이나 조직 분규를 최소화한다는 배경도 깔려 있다.

    금융 선진국의 경우도 은행 증권사 등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금융지주회사 안에 들어 있다. 미국의 경우 시티코프와 트래블러스 그룹의 합병을 통해 탄생한 시티그룹이 대표적인 대형 금융 지주회사. 시티그룹 안에는 시티뱅크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트래블러스보험 등 다양한 영업 분야의 자회사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에서 구상하고 있는 금융지주회사가 여러 가지 까다로운 규제 조항 때문에 얼마나 유효한 구조조정의 수단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 금융지주회사 특별법을 마련중인 정부는 금융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은 현행 공정거래법과 똑같이 100%로 하되 자회사 출자는 자기자본 범위 내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재경부 관계자들은 공식적으로 아직까지도 ‘정부는 한번도 지주회사의 구성 요건이나 부채 비율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며 연막 전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금융권 주변에서는 정부가 부채 비율 100%를 고수하려 한다는 것이 정설. 특히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무분별한 자회사 확장을 막는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입김이 상당 부분 먹혀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은 100%로 규정되어 있다. 정부에서 내세우고 있는 명분은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을 높여줄 경우 산업자본, 특히 재벌들이 금융기관을 지배하려는 경향이 노골화하리라는 것이다. 특히 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할 경우 지분 매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은행법상 4%로 제한되어 있는 은행에 대한 동일인 소유지분 한도를 풀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주회사는 그 속성상 외부 자본을 조달해 자회사에 투자하는 것을 기본 모델로 한다. 그런 만큼 자기 자본의 몇 배만큼을 투자할 수 있는지가 지주회사의 효용성을 재는 척도로, 이른바 레버리지 효과를 높일수록 지주회사의 장점이 극대화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채비율 문제로 논란을 거듭했던 정부측은 금융 지주회사 설립에 있어서도 이러한 논리를 적용한다는 입장이고 민간 전문가들은 과거처럼 무리한 차입 경영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거된 만큼 지주회사에 대한 부채 비율을 신축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적지 않은 경제전문가들은 또한 세금 측면에서도 지주회사 설립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른바 연결납세제도로 이는 결산 당시 지주회사와 자회사를 연결하는 연결 손익계산서를 만들고 이를 과표로 해서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 지주회사가 포괄하고 있는 자회사들 중에는 흑자를 내는 회사와 적자를 내는 회사가 있을 것이므로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연결해 상계 처리하면 이익이 제로가 돼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생겨날 수 있다.

    금융 구조조정에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은 정부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른 시일 안에 지주회사 지분을 매각해 부실은행에 투입된 공적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다. 그러나 경제 부처 내에서조차 효율적인 구조조정이냐 경제력 집중 완화냐, 세제 인센티브를 줄 것이냐 세수를 지킬 것이냐를 두고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주무부서인 재경부조차 관계 부처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형편.

    한편에서는 금융지주회사가 만들어질 경우 이 회사의 지배구조 자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지주회사의 경영진 역시 지금처럼 정부와 노조의 눈치만 보고 있는 임원들로 채워질 경우 은행 구조조정이 또다시 ‘갈지자걸음을 걷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고려대 박경서교수(경영학)는 “금융지주회사를 구조조정 목적으로만 바라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방향으로 나가다가는 결국 금융 전업 기업가를 육성한다는 취지도 살리지 못한 채 제도만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교수는 “차라리 지주회사에 구조조정 전문가가 들어서서 하루빨리 3자 매각을 추진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물론 정부 주도로 은행을 합병해 대형화하는 것만이 능사냐는 비판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은행 합병의 성공률은 40%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계도 내놓는다. 게다가 과거 서울은행과 신탁은행의 합병이나 최근 국민은행 장기신용은행 합병에서 보듯 타은행 출신 임직원들끼리 반목하는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도 합병 논의가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따라서 섣부른 합병은 오히려 졸속으로 흐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 금융시장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과다한 은행 수(over-banking)를 줄이고 효율적 경쟁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리딩뱅크를 만들어야 한다는데만큼은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 상위 3대 은행의 자산 총액이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세계 평균인 55%에 훨씬 못 미치는 30% 정도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리딩뱅크를 통해 시장을 선도해 나갈 만한 여건이 되어 있느냐는 것. 금융연구원 지동현박사는 “한빛은행이나 국민은행 정도의 규모만으로도 리딩뱅크의 역할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지만 은행장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짝짓기나 인수 합병 같은 하드웨어적 개혁만으로는 금융구조조정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반드시 소프트웨어 개혁이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설령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국회 동의 등 만만치 않은 절차가 남아 있다. 최근에는 국회 상임위 구성 일정이 지연되면서 벌써부터 경제 부처들 사이에서는 이 법안의 6월 임시국회 처리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일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치유되지 못한 금융시장의 상처는 더욱 깊어지고 구조조정을 위한 에너지는 소진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대 최도성교수(경영학)는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구조조정이든, M&A(기업인수합병)방식을 통한 구조조정이든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금융기관들이 자생력을 갖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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