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8

2000.04.06

말동무로 왔다 에이스 된 기론

  • 입력2006-04-28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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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동무로 왔다 에이스 된 기론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롯데를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킨 일등 공신은 외국인 선수 펠릭스 호세와 에밀리아노 기론이었다.

    페넌트레이스는 물론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4번 타자 호세와 특급 소방수 기론의 활약이 없었다면 롯데의 한국시리즈 진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호세는 경력 자체가 원체 거물이었다. 9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로 선발됐던 호세는 98년 11월 미국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스버그에서 열린 99외국인선수선발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롯데에 뽑혔다.

    그러나 기론은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마이너리그의 싱글A 단계에서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한 기론은 투구 스피드도 시원찮았고 특징있는 변화구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비쩍 말라 보이는 체격 때문에 외관상으로도 호감을 주지 못해 드래프트 기간 내내 롯데를 포함한 8개 구단 코칭스태프의 눈길을 전혀 끌지 못했다. 기론은 결국 선택되지 못했다.

    99시즌이 시작되자 롯데가 뽑은 투수 마이클 길포일은 기량이 함량미달인 것으로 드러났다. 길포일을 방출한 롯데는 다른 투수를 물색했지만 마땅한 후보가 없어 포기단계에 이르렀다. 그러자 혼자 남게 된 호세가 문제였다. 도미니카 출신으로 미국에서 프로생활을 한 호세가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 땅에서 혼자 있을 경우 제대로 한국문화에 적응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된 것이다.



    롯데는 98년에도 외국인선수로 덕 브래디 1명을 달랑 뽑았다가 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용병 농사를 망친 경험이 있었다.

    결국 롯데 구단은 호세가 좀더 맘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고향 친구인 기론을 불러들였다.

    호세의 ‘말동무’로 기론을 데려오기로 마음먹은 이철화 롯데단장은 대신 협상과정에서 기론의 연봉을 다른 용병의 절반 수준인 4만달러로 후려쳤다. 가난한 집안의 15형제 중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난 기론은 아쉬운 입맛을 다시긴 했으나 계약은 성사됐다.

    그러나 기론이 막상 경기에 투입되자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불펜에선 별 볼일 없는 것 같았던 기론은 마운드에서 절묘한 체인지업과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제구력으로 국내 타자들의 방망이를 헛돌게 만들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문동환과 주형광 등 팀내 간판투수들을 모두 제치고 에이스노릇을 톡톡히 했다. 지난 가을 눈부신 활약 덕분에 올해 연봉은 8만달러로 두 배가 올랐고 성적에 따라 2만5000달러의 보너스까지 받기로 계약했다. 보직도 지난해 중간계투요원에서 선발투수로 격상됐다. 말동무에서 일약 선발투수로 변신한 기론을 보면 “신인과 외국인선수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스카우트의 말이 빈 말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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