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8

2000.04.06

“연봉 2400만원에 세금만 451만원”

참을 수 없는 세금의 무거움…‘유리지갑’ 샐러리맨은 “세금의 포로”

  • 입력2006-04-25 13:1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연봉 2400만원에 세금만 451만원”
    중소기업에 다니는 입사 8년차 김대리(37). 전업주부인 아내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다. 일산의 20평대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며 1500cc급 승용차를 7년째 타고 다닌다. 김대리의 연봉은 2400만원.

    총선 출마자 납세실적 보니 분노가…

    며칠 전 아침 조간신문을 펼쳐본 그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개혁법에 따라 공개된 총선 출마자들의 납세 실적 기사 때문이었다. 전체 출마자의 27%가 아예 소득세를 낸 적이 없고, 전직이 변호사인 출마자가 냈다는 지난해 소득세가 연봉 4000만원짜리 월급쟁이와 똑같으며, 연간 세비가 6000만~7000만원인 국회의원들이 각종 편법을 통해 ‘절세’를 해 자신보다 적은 세금을 내고 있었다니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시쳇말로 ‘유리지갑’의 소유자인 김대리는 자신이 내는 세금이 1년에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졌다. 우선 월급쟁이 가장이 내는 직접세로는 근로소득세 주민세 등이 있다. 김대리만 해도 가족으로 인한 공제를 알뜰하게 받는 편. 총 수입에서 근로소득공제 기본공제 특별공제(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공제) 등을 모두 제하고 난 근로소득세는 49만2000원. 다시 이 소득세의 10%를 내는 소득할주민세로 4만9200원을 더하면 54만1200원. 여기까지만 계산하면 김대리가 내는 세금은 연봉의 2.3%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가 내는 세금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그와 가족이 먹고 마시고 입고 움직이는 데 들어가는, 즉 소비에 따라붙는 간접세는 전혀 포함되지 않은 액수이기 때문.



    우선 자동차. 그는 연간 자동차세로 27만원을 낸다. 자동차세에는 다시 교육세와 면허세가 따라붙는다. 자동차세의 30%인 교육세 8만1000원, 면허세 2만2500원을 더하면 자동차 때문에 내는 세금은 모두 37만3500원이다. 이미 차를 살 때 막대한 특별소비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취득세 등록세를 냈던 그로서는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차만 있다고 능사가 아니다. 직업상 차를 몰고 다녀야 하는 그는 매주 40ℓ 정도 휘발유를 넣는다. 그런데 휘발유에 따라붙는 세금이 만만치 않다. 우선 교통세로 1ℓ에 651원이므로 연간(52주로 계산) 135만4080원이 된다(651×40×52). 여기에 교통세의 15%만큼 교육세(연간 20만3112원)가 붙고 부가가치세 10%가 또 추가된다. 부가가치세는 연간 23만8254원. 결국 교통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를 모두 합하면 김대리가 부담하는 휘발유 관련 세금만 179만5446원에 이른다.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우는 김대리는 애국자를 자처한다. 담배 한 갑에는 담배소비세 460원과 담배소비세의 40%에 해당하는 교육세 184원을 더해 644원의 세금이 붙는다. 여기에 부가세 10%가 덧붙여진다. 이를 1년치로 환산하면 27만원이 된다.

    일과가 끝난 뒤에는 가끔 동료들과 대포 한 잔을 나눈다. 오늘 술자리의 주제는 총선출마자들이 냈다는 세금 액수다. 여기에 재벌들의 상속세와 증여세 얘기가 곁들여지자 빈 술병은 늘어만 간다.

    그와 함께 김대리의 ‘애국’은 계속된다. 그가 한 주에 마셔 없애는 술은 소주 2병, 맥주 5병 정도. 술 한 병에는 주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따라붙는다. 올해부터 소주의 주세는 오르고 맥주의 주세는 내려 소주(참이슬 기준) 한 병에 378원, 맥주(오비라거 기준) 한 병에 604원의 세금이 따라붙는다. ‘겁없이’ 국산 위스키라도 한 병 마시면 1만1608원을 세금으로 내게 된다. 그가 마시는 소주와 맥주에 붙은 세금을 연간 단위로 계산하면 소주 104병 3만9000원, 맥주 260병 15만7040원에 이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재테크를 하려 해도 모두 세금이다. 김대리도 지난해부터 ‘남들이 다 하는’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비자금 1000만원을 증권사에 넣고 시간날 때마다 사고 판다. 주식 매매시에는 증권거래세와 농특세(거래소)를 내야 한다. 또 급여통장을 겸한 은행 예금에는 이자가 붙기 무섭게 이자소득세와 소득할주민세 24.2%가 따라붙는다.

    ‘이 정도면 끝났겠지’ 싶었던 김대리는 아차하고 깨닫게 된다. 모든 용역과 물품을 구입할 때마다 약 10% 가량 되는 부가세를 내고 있다는 점을 잠시 잊은 것. 딸들이 산 장난감에도, 아내의 장바구니에도 세금은 얹혀 있다. 가족끼리 외식을 해도 부가세를 치른다. 그가 지출하는 거의 모든 비용에 10% 가량 되는 부가세가 따라다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 해서 김대리는 자신이 연간 내는 세금을 계산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비의 내용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를 통해 추정해볼 수는 있다. 재정경제부가 공표한 국민 1인당 2000년 예산(안)상 조세부담률은 18.8%(국세 15.3%, 지방세 3.5%). 이를 기준으로 계산해보자면 김대리는 대략 1년에 451만2000원을 세금으로 바치는 셈이다. 즉 그가 한해 동안 열심히 일해 벌어들인 돈의 18.8%를 세금으로 내고 있고, 이 세금이 국세청을 통해 정부로 들어가 방위비 교육비 사회개발비 공무원인건비 등으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샐러리맨들이 세금에 대해 보이는 첫 반응은 상대적 박탈감. 특히 자영업자나 고소득 전문직과 비교하면 꼭 집어내지는 못해도 막연한 피해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조세연구원이 조사한 직업별 과표현실화율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의 과표현실화율 평균은 50%가 조금 넘는 정도. 일반 자영업자들이 낸 세금이 실제 수입의 50%를 기준으로 했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월급쟁이만 봉’이란 말이 나옴 직도 하다.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윤종훈 조세개혁팀장은 “월급쟁이들이 상대적으로 과중한 세금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는 아직 우리 사회에 조세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이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세금 때문에 열받으니 오늘도 한 잔?

    지난해 재경부는 향후 세제개혁 방향을 ‘조세정의’의 실현이라 밝힌 바 있지만, 올 초 재경부와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조세수입에서 직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9%로 97년 50.5%와 98년 55.8%에 비해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오히려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또 2000년 조세수입안을 보면 직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8.8%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윤종훈팀장은 “전산시스템의 본격도입과 카드사용확대 등의 영향이 나타나는 2, 3년 후면 세수 파악이 좀더 쉬워질 것으로 보이나 어찌됐건 징세편의주의와 복잡한 조세체계는 납세자 위주로 수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시 김대리로 돌아가자. 열을 받다보니 술자리가 길어졌던 김대리는 시계바늘이 12시를 넘기자 내일 아침 출근이 걱정된다. 음주 단속 때문에 차를 가지고 갈 수도 없어 오늘은 좌석버스 신세를 져야 한다. 덕분에 기름값 절약되고 ‘찰거머리 같은’ 세금도 덜 물게 됐다. 술 먹느라 낸 세금을 버스 타는 바람에 조금은 벌충한 셈이다. ‘세금의 포로’ 김대리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시민단체 “내 세금 어떻게 쓰이나” 감시 나섰다

    전국예산감시네트워크 발족 … “예산낭비 고발합시다”


    “내 세금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하자.”

    뼈빠지게 일해 번 돈을 세금으로 바친 납세자들은 그 돈이 제대로 쓰이길 바란다. 이를 감시하는 것은 김대리 같은 납세자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시민단체들이 조세개혁운동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 3월3일 ‘납세자의 날’(옛 조세의 날)을 맞아 ‘함께 하는 시민행동’과 문화연대 등 30개 시민단체가 전국예산감시네트워크를 띄웠고, 경실련도 같은 날 30여개 지부로 구성된 전국예산감시네트워크를 발족시켰다. 참여연대는 3월9일 납세자운동본부를 주축으로 ‘납세자 중심의 조세제도 만들기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예산감시운동은 경실련 예산감시위원회가 원조격. 국세청은 올해부터 매년 3월3일 ‘조세의 날’을 ‘납세자의 날’로 바꿔 부르기로 했는데, 이는 경실련 예산감시위원회가 지난해 제안했던 방안이기도 하다.

    경실련 정책실 이영란간사는 “지난 98년부터 예산감시위원회를 중심으로 벌여온 예산감시 활동을 올해부터는 지역 위주 네트워크 사업에 중점을 두어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경실련 예산감시네트워크는 제보전화(전국 1588-8298)를 마련하고 전국단위의 예산낭비 사례에 대한 고발을 기다리고 있다.

    과거 경실련 예산감시위원회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이 지난해 따로 만든 ‘함께 하는 시민행동’도 예산감시운동(1588-0098)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창수 제보처리팀장은 “지난해 10여 군데 지자체의 예산서를 분석, 원주 강릉 청주 군산 등 여섯 군데에서 100억원 정도의 예산삭감 효과를 보았다”고 소개한다. 이들이 감시활동을 통해 삭감시킨 예산에는 경기도 모 지자체의 경우처럼 미스 경기대회 출전자에게 보상금조로 200만원을 주는 등의 코믹한 예산항목도 들어 있다.

    경실련이나 시민행동과 달리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는 조세개혁운동 쪽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3월8일 자동차면허세에 대해 ‘이중과세와 조세법률주의 위배’를 이유로 감사원에 심사청구를 제기하고 전화세 자동차세 등 납세자 스스로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내고 있다고 판단되는 문제 세목을 골라 개폐운동을 시작했다.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하승수집행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세목은 30개에 이르러 선진국의 20여개에 비해 지나치게 많고 복잡하다”고 지적한다. 필요할 때마다 세금을 걷기 위해 세법을 만들고 목적세를 남발해 누더기식 땜질식 세법이 양산됐고, 세법 규정은 고등교육을 받은 납세자조차 읽고 이해하기 힘들 정도라는 이야기다. 그는 “납세자 중심의 조세체계를 만들자는 것이 납세자 운동의 요지”라고 설명한다.

    참여연대는 이와 함께 조세제도에 연대성과 민주성의 원리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가령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자본 이득세 도입이나 부유층의 탈세를 막기 위한 소득제 책정에서의 포괄주의 방식 도입 주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