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8

2000.04.06

어설픈 민족주의가 反韓감정 부추긴다

‘한국인은 봉’ ‘왜 강제송환하나’등 감정 섞인 보도로 중국 자극 “되레 역효과”

  • 입력2006-04-25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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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설픈 민족주의가 反韓감정 부추긴다
    지난 2월 발생한 귀순자 조명철씨와 중국 유학생 송모씨 납치 사건은 중국 방문을 계획하는 많은 사람들을 불안케 했다. 불안감이 확산된 데는 주요 언론들의 ‘감정 섞인 보도’가 한몫을 했다. 조씨 사건이 터졌을 때 대부분의 언론이 북한의 관여 의혹을 제기했던 것. 그러나 북한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지자 이번에는 ‘한국인이 중국에서 봉이 되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내놓았다. 그러다보니 일반에게 중국은 위험한 나라로 인식되고 중국 방문을 꺼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이 중국 공안(경찰에 해당)의 탈북자 강제 송환이다. 이때도 주요 언론들은 ‘한국이 중국에 투자한 것이 얼마인데 그럴 수 있느냐’는 기조 위에 중국이 탈북자의 인권을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는 민족주의 색채를 띤 것들이다. 민족주의 자체는 탓할 게 아니지만 자칫 잘못하면 객관성을 잃고 만사를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왜 한국인은 중국에서 봉이 되는가’ ‘중국의 탈북자 송환을 막는 방법은 무엇인가’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민족주의보다 훨씬 더 크고 높은 시야를 갖춰야 한다.

    99년 6월 충남에 살며 중국 칭다오(靑島)를 무대로 사업하던 김모씨는 중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김씨는 기혼임에도 칭다오에 한족(漢族) 출신의 술집 여종업원을 현지처로 두고 있었다. 전화는 한족 여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다는 내용이었다. 김씨가 칭다오의 병원으로 달려가자 그 여자의 오빠라는 자들이 나타나 김씨를 결박했다. 이들은 김씨를 감금한 뒤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한국에서 돈을 부치게 하라”고 협박했다.

    위기를 느낀 김씨는 충남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입금 계좌와 전화번호를 불러주며 “돈을 부쳐달라”고 부탁하고 눈치껏 자신이 납치됐음을 알려주었다. 칭다오 한국총영사관에는 베이징의 한국대사관처럼 한국 경찰 주재관이 파견돼 있다. 깜짝 놀란 친구가 경찰에 신고하자, 주재관을 거쳐 칭다오 공안국에 이 사실이 통보되었다. 칭다오 공안국은 어렵지 않게 납치범을 검거하고 김씨를 구출했는데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그때까지 한-중 경찰은 김씨가 현지처를 둔 사실을 몰랐었다. 임신 중이던 현지처는 “김씨가 자기를 버릴 것 같아 출산비와 아이 양육비를 받아낼 생각으로 거짓으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연락해 김씨를 납치했다”고 실토했다. 그러자 칭다오 공안국은 “최초 원인 제공자는 김씨이므로 한족 여인과 납치범들을 기소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주재관으로서는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한국인 사업가의 빗나간 애정 행각으로 인해 창피만 당할 뿐이었다.



    99년 1월에는 조선족을 한국으로 밀항시키던 자들 사이에서 납치극이 발생했다. 조선족 밀항에는 중국 조직과 한국 조직이 공조한다. 중국 조직이 밀항 희망자를 어선에 태워 공해상으로 나오면, 미리 연락받은 한국 어선이 밀항 희망자들을 옮겨 태우고 한국에 들어와 상륙시키는 것이다. 밀항은 원칙적으로 ‘현금 박치기’다. 그러나 최근에는 밀항 알선 조직이 늘어나는 바람에 밀항 희망자 중에는 일부 금액만 내고 밀항한 뒤 한국에서 돈을 벌어 잔금을 갚는 경우가 있다. 99년 1월 벌어진 사건은 잔금을 내지 않은 채 부산지역으로 상륙한 조선족 밀항자들이 한국 경찰에 검거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로써 중국 조직은 잔금을 받지 못하게 됐는데 이때 한국 조직의 지모씨가 사업 논의차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러자 중국 밀항조직이 지씨를 붙잡아 “당신이 제대로 하지 않아서 조선족이 한국 경찰에 검거되었다. 당신이 잔금을 내놓아라”고 협박했다. 겁을 먹은 지씨는 한국에 전화를 걸어 송금을 요청했는데, 이때도 눈치껏 자신이 납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 사건은 앞서 말한 김씨 경우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통보받은 중국 랴오닝성 공안청이 수사에 나섬으로써 해결되었다. 이때도 랴오닝성 공안청은 “납치 사건의 한 원인은 한국이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러한 경우가 반복되자 중국 공안은 한국인이 피해자가 된 중국인 범죄사건 수사에 큰 열의를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중국 공안은 뒤에서 “한국인들이 거들먹거리다 당한 것”이라며 고소해 한다고 한다. 김씨나 지씨 사건은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 원한이 얽혀 발생한 경우다. 그런데 최근에는 은원(恩怨) 관계가 없는데도 한국인을 노리는 중국인(조선족)이 늘고 있다. 유학생 송모씨와 조명철씨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다. 두 사건은 장낙일이라는 환전상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었다.

    한국은 외환관리법이 있어 일정 액수 이상의 외화 송금을 차단하고 있다. 중국은 보다 엄격해서 은행을 통한 외환거래시에는 상당한 수수료가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한-중간 거래에는 사설 환전상이 성업을 이루게 되었다. 환전상은 한국과 중국의 은행에 모두 계좌를 설치한 사람으로, 그는 이 계좌번호를 보따리 장수를 포함한 모든 업자들에게 공개한다. 중국으로 돈을 부칠 사람은 먼저 환전상이 한국에 개설한 은행 계좌로 입금하고 그 사실을 전화로 중국 쪽 상대에게 알려준다. 중국 쪽 상대가 환전상(주로 중국에 체류한다)을 찾아가 “돈을 찾으러 왔다”고 하면 환전상은 통장정리를 하는 한국의 심부름꾼에게 전화를 걸어 입금 사실을 확인한 후 그 자리에서 수수료를 떼고 돈을 내주는 것이다. 조씨와 송모씨 납치 사건 때 납치범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장낙일씨 계좌로 입금을 요구했기 때문에, 한때 장씨는 납치 주범인 것으로 잘못 알려졌던 것이다.

    중국을 무대로 한 한국인 납치는 이러한 ‘인프라’ 위에서 이뤄진다. 이와 완전히 다른 구조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탈북자의 강제 송환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밀입국자는 범법자로 취급된다. 현재 북한은 중국과 ‘불법 입국자 상호 인도 협정’을 맺고 있다. 따라서 한국 언론이 중국 정부에 “탈북자를 보호해 달라”고 요구하면 할수록 이는 중국에 탈북자가 존재하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보도가 많아질수록 중국 정부는 탈북자를 검거해 북한으로 보내는 일에 진력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민족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에 ‘한국인은 중국에서 봉이 되고 있다’ ‘왜 중국은 탈북자를 강제 송환하는가’란 문제를 거론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중국 내의 반한 감정은 고조되고 탈북자의 강제송환이 늘어나게 된다. 한국 언론은 ‘실속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초래하는 민족주의적 보도 태도를 언제까지 거듭할 것인가. 인터폴의 한 관계자는 “한국 언론이 진정으로 국익을 생각한다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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