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8

2000.04.06

이지메…왕따…교수도 예외 없다

재임용 탈락 등 의식 ‘찍힌 교수’ 에 거리감…“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있나요?”

  • 입력2006-04-25 12: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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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메…왕따…교수도 예외 없다
    지난해 가을 우리 문화계의 ‘면도날’이 되겠다며 태어난 ‘디자인문화비평’이란 무크지가 있다. ‘디자인…’은 주례 비평만이 난무하는 시각이미지 분야에서 도발적인 문제 제기와 실명 비판으로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최근 제2호를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교수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얼마 전 이 책의 편집위원회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다는 한 예술대 대학교수는 “책의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사양했다” 고 말했다. 이유는 “선배 교수들한테 나까지 찍힐까봐”였다. 그는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선배 교수와 학장 등에게 보고될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무사히 교수생활을 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말은 ‘디자인문화비평’의 편집인이 서울대 미대 재임용 탈락으로 법정 소송 중인 김민수교수라는 의미였다. 선배 교수 및 대학과 맞서싸우고 있는 사람 편을 들었다가는 기득권을 가진 원로 교수들 눈 밖에 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재단비리 맞서 싸우다 따돌림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교수 집단 내부의 ‘사기꾼’ 고발에 나섰다가 자칭 타칭 ‘왕따’가 된 고려대 현택수교수(사회학과)는 지난 가을 펴낸 사회학 개론서의 서문을 직접 써야 했던 씁쓸한 경험이 있다.

    “글을 쓰기로 약속했던 사람들이 ‘말 못할 사정이 있다’며 갑자기 취소해 버렸습니다. 어떤 이는 노골적으로 아무개 교수가 당신 책에는 쓰지 말라고 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 사이에서나 있을 것 같은 이지메와 ‘왕따’가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있다는 대학 사회에도 난무한다. 교수 사회에서의 이지메는 영구적 주홍글씨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아이들 세계의 그것보다 훨씬 더 치사하고 치명적이기도 하다.

    몸담고 있던 학교에서 어느날 갑자기 ‘왕따’를 당하게 되는 이유 중 가장 흔한 경우는 학교 재단 비리에 맞서싸웠기 때문이다. ‘교수신분보장을 위한 협의회’(http://kasp.crosstel. org)간사 이호형 전계명대교수는 “76년 교수 재임용제가 도입된 이후 임용제에서 탈락한 교수들 대다수가 직-간접으로 이같은 재단 비리와 관련돼 있다”고 주장한다.

    선배 원로 교수들의 권위에 맞서다 ‘조직의 쓴 맛’을 보는 경우도 많다. 서울대 원로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거론해 파문을 빚은 서울대 김민수교수가 대표적 사례다. 모 지방 국립대 재임용에서 탈락한 강상덕교수 역시 “처음엔 선배 교수가 술대접 안한다고 시비를 걸더니 미운 털이 박혔는지 대학교수 하려면 2억~3억씩 드는 걸 아느냐는 등 폭언과 폭행을 일삼다가 심사위원회에 로비,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고 말한다. 강교수는 “지역 텃세가 심한데다 같은 과 동료 교수들이 모두 그의 고교, 대학 선후배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고 말했다. 당시 그를 도운 것은 모두 타과 교수들이었다고 한다.

    효성카톨릭대의 손덕수교수(사회복지학과)는 남성 중심의 보수적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설파하다 ‘왕따’를 당한 경우.

    “처음엔 분했는데 대학에서 작성한 해임사유서를 100번쯤 읽으니까 나 스스로 무능한 교수란 생각이 들어 어디에다가 말도 못했지요.”

    여성운동에 인생의 반을 바친 손교수의 해직에 여성-사회단체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결국 대학은 그녀를 복직시켰다. 손교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걸레와 빗자루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게 됐다” 고 말한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왕따당하는 교수들의 공통점은 너무 똑똑하다는 것”이라며 “능력이 없는 교수들은 자기가 살아남는 길은 인간성 좋다는 말을 듣는 것 외에 없다는 것을 아니까 별 문제가 없다” 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전임강사급의 교수들 사이에서는 어느 교수에게 어느 정도의 선물을 바쳐야 하는지가 ‘정보’로 돌아다닌다.

    “특히 실기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대학원 들어갈 때 아버님이 뭐하시는지 물어보는 게 관례입니다. 한국에서 박사하려면 호텔 예약하러 다니느라 바쁘다는 말도 있고요.”

    H대 김모 교수의 말이다. 선배 교수들에게 다들 그럴 듯한 선물을 하는데도 ‘연구만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왕따’가 돼 있더라는 것이다. 지방 K대 재임용에서 탈락한 윤모교수는 “이사장이 자꾸 아버지 이야길 하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른 여교수들은 시아버지까지 선물 들고 찾아다녔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다. 서울의 한 미대 교수도 “어느날 선배 교수가 전임강사와 조교수들 앞에서 아무개가 한산모시를 선물했는데 너희들도 본받으라고 말해 어안이 벙벙했다”고 말했다. 또 박사 논문 통과를 앞둔 한 교수는 “논문 지도 교수가 내 핸드백이 예쁘다, 옷이 좋다고 하면 적어두었다가 선물한다”고 말한다. 이런 풍토에서는 실력있는 교수라도 돈 없고 배경 없으면 천덕꾸러기가 되게 마련이다.

    학문적 성과가 지나치게 뛰어나도 동료들의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교수들의 지적이다. 진위가 의심스런 국내 박사 교수들 사이에서 혼자 외국 박사학위를 갖고 있거나 외국 학회지에 자주 글을 싣는 것도 게으른 교수들이 보기엔 눈엣가시다. 교수들은 “선배 교수들에게 찍히면 어떤 프로젝트나 행사, 연구 지원금도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심사위원들이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왕따’ 교수를 만드는 제도적 원인은 역시 교수 재임용제다. 일부 대학에선 이미 시행중인 업적 평가나 계약제도 교수의 덕목에서 학문보다 ‘인화’(人和)가 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대학의 권력에 찍힌 교수와 가깝다는 소문만으로도 재임용 심사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몸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도 조직사회인 만큼 ‘인화’가 중요한 덕목이긴 하다. 그러나 이호영교수는 “사립학교법 자체가 재임용을 임의적으로 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선의의 ‘왕따’ 교수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김민수교수와 전임강사 K씨의 재판 결과가 법 개정으로 이어지도록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96년 서울대 교수 논문표절 논란 때 ‘소수’ 의견을 냈던 양승규 전서울대 법대교수는 “소위 인간관계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동료 교수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될까’라는 회의가 들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사회적 양심’이란 말을 부담스러워하는 그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오늘날 교수들의 딱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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