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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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국제미아’ 김용화 쇠창살 풀린다

정부 귀순자 인정 안해 일본 밀항 했다 체포…최근 가석방 결정 ‘자유의 몸’으로

  • 입력2006-04-19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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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년 국제미아’ 김용화 쇠창살 풀린다
    ‘탈북자 김용화씨를 아십니까’

    지난 88년 북한을 탈출한 뒤 한국으로 귀순했으나 위조한 중국 거민증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정부가 귀순자로 인정하지 않자 98년 일본으로 밀항했던 귀순자 김용화씨(47). 김씨가 일본으로 밀항한지 2년만에 최근까지 수감되어 있던 나가사키현 오무라 이민자수용소측으로부터 가석방 결정을 받아내 그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본 법무성 산하의 오무라 이민자수용소는 지난 3월6일 그의 일본내 변호인단이 낸 김용화씨의 가석방 청구를 받아들여 그를 풀어주기로 했다고 현지 관계자가 전해왔다. 이번 가석방 조치에는 재일교포 최정강목사를 비롯한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보증인으로 참여했다.

    김씨의 가석방 결정은 4월14일로 예정된 공판을 코앞에 두고 이뤄진 것이 어서 일본 법원이 김씨의 거취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씨의 변호인인 히토시 미쓰이 변호사는 ”김씨의 가석방 결정은 비록 법원이 내린 것은 아니지만 다음달로 예정된 김씨의 공판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가석방에 따른 보석금 50만엔을 납부하면 바로 수용소에서 벗어나 나가사키현의 일정한 주거지로 이동하게 된다.

    중국 송환 땐 강제 북송 불보듯

    현재 법원의 결정에 의해 김씨가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중국 추방 △국내 재송환 △중국추방 판결 후 항소를 통한 재판 장기화 등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러나 현지 관계자들은 김씨가 국내로 재송환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 대사관 등을 통해 현재까지 확인된 일본 정부의 김씨 관련 공식 입장은 ‘한국 정부가 김씨를 받아들이겠다고 할 경우에만 재송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말을 뒤집으면 한국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김씨를 한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 정부 역시 그를 중국인으로 인정해 중국으로 돌려보내거나 김씨가 이에 불복할 경우 항소를 하는 두 가지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각국의 외국인 수용소에는 김씨처럼 국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10-20년 동안 수용소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장기 수형생활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만약 김씨가 중국으로 추방당할 경우 북한으로의 강제 송환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지난 1월 외교부장관 인책 사태로까지 비화됐던 러시아내 탈북자 7명의 중국 경유 북한 재송환 사건에서 보듯 최근 중국이나 러시아 정부의 탈북자에 대한 처리 방침이 ‘북한 재송환‘ 쪽으로 잡혀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인민군 장교 출신인 그는 95년부터 3년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동해안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국방부 관계자들과 함께 현지를 찾아 침투 예상로 등에 대해 상세하게 조언했으며 97년 11월 대통령 선거 당시 오익제씨 편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편지가 가짜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등 ‘ 정치적‘ 활동도 해왔다는 것이다.

    4월14일 김용화씨에 대한 결심 공판을 앞두고 국내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그의 북한 재송환을 막기 위해 주한 일본대사 앞으로 탄원서를 보내기 위해 서명운동에 돌입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미 국내에는 YMCA, 인권실천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등의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올해초 ‘탈북자 김용화씨와 함께하는 모임‘(http://cafe.daum.net/refugee/)이 결성되어 김씨의 북한 재송환을 저지하기 위한 탄원 활동을 벌여 왔다. 이 모임은 김씨의 공판 과정을 후원하고 있는 일본의 인권단체 관계자들과 긴밀한 연락을 위하면서 김씨의 석방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 왔다.

    김씨는 지난 3월19일자로 이 모임에 보내온 편지와 대국민 호소문에서 ”현재 최고 혈압이 200mmhg을 오르내리고 있다”고 적는 등 건강에 중대한 이상이 발생했음을 호소하고 있다. 일단 일본 법원이 김씨에 대해 가석방 결정을 내린 데는 이러한 건강상의 이유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석방이 된 뒤에도 그의 생계대책은 막막할 뿐이다. 미쓰이 변호사는 ”일본 법원의 결정에 의해 김용화씨의 주거가 나가사키현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북한측의 테러위협 때문에 그의 거처 역시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으며 생계 자금 마련도 어려운 형편이다”고 덧붙였다.

    또 최근 그를 만나고 돌아온 국내의 한 관계자도 ”김씨는 북한으로부터 탈출한 뒤 천신만고 끝에 찾아온 고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한때 자살 기도까지 했지만 현재는 종교에 의지해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상태”라고 말했다.

    김씨가 지난 98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일본 밀항‘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은 국내 재판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다는 자포자기적인 심정에서였다. 지난 96년 법무부를 상대로 낸 강제퇴거명령 무효확인 소송이 2년 넘도록 장기화되면서 대한민국 국적 취득이 어려워 보이자 김씨는 변호인과도 상의없이 이 소송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채 일본행 밀항선을 탔었다. 김씨는 그 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현재까지 나가사키에 있는 오무라 외국인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

    김씨는 북한을 탈출하기 전 함흥철 도국 단천 기관차대 승무지도원으로 근무한 데다 인민군 장교(중위) 출신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다른 탈북자들에 비하면 북한에서의 신분을 보증할 만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김씨가 법무부 외국인보호소에서 석방될 때에는 김씨의 고향인 함경남도 단천 출신의 김일주의원(자민련.당시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이 신원보증을 서기도 했다. 또한 김씨가 귀순 직후 외국인 보호소에 수용되었을 때도 한국내 귀순자들이 그의 석방을 탄원하는 연대서명운동을 벌이며 ‘귀순자 최초의 집단행동‘에 들어갈 정도로 김씨의 국적 인정 문제는 당시 초미의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가 중국에 체류할 당시 신변안전을 위해 위조된 중국거민증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북한 이탈 주민‘이 아닌 ‘중국인‘으로 규정해 버렸다. 국내 재판과정에서 그가 제출한 인민군 복무시절의 사진이나 각종 기록들도 결국 그가 북한에 거주했던 ‘헌법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

    국내 재판을 통해서도 해결하지 못한 김씨의 국적 문제에 대해 4월14일 공판에서 일본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는 탈북자들의 지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 현지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생활이 길어지면서 거민증을 위조해 중국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김씨의 거취 자체가 우리 정부의 탈북자 정책의 일관성을 재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는 말이다. 김씨에 대한 일본 법원의 결정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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