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8

2000.04.06

‘햇볕정책’에 먹구름 끼나

北, 서해 5도 입출항 제한 발표-러·中과 밀월 주목…전문가들 “포용정책 계속돼야”

  • 입력2006-04-19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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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정책’에 먹구름 끼나
    북한 해군사령부가 서해 5도 수역의 입출항을 제한하는 6개항의 ‘통항질서’를 발표한 것은 3월23일이었다. 북한이 통항질서를 발표하기 전부터 직접 북한대표를 맞상대해본 북한 전문가들은 “총선을 앞두고 반드시 북한이 서해상에서 도발할 것이다”는 예측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외교부와 통일부 쪽에서는 “김대통령이 베를린선언을 발표한 것이 엊그제인데 왜 북한이 도발하겠느냐”며 일축했다. 그러다 북한이 통항질서를 발표하자 몹시 당황해 “북한의 의도는 총선을 앞둔 한국 사회를 혼란시키기 위한 것이다”는 등의 해설을 내놓았다.

    이렇게 쉬운 해설을 왜 관계기관은 북한이 통항질서를 발표하기 전에 예측하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면, 상당수의 대북 전문가들은 이미 북한이 서해안에서 도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었다. 이들은 단지 김대중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햇볕정책)에 반하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침묵했을 뿐이다. DJ정부에서의 대북정책 딜레마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김대통령은 야인시절 군부독재정권으로부터 용공 시비에 시달려 왔다. 김대통령의 옷차림을 유심히 살펴온 사람들은 “김대통령이 붉은색 넥타이를 맨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며 ‘레드 콤플렉스’를 들먹인다. 이러한 DJ가 대통령에 당선돼 햇볕정책을 천명하자 보수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색깔공세를 폈다. 한나라당은 3월24일 펴낸 총선정책자료집에서 김대통령을 ‘북한 대통령’으로 표기했다가 정정한 사건을 벌였는데, 이 역시 김대통령에 대한 보수파의 변치 않는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그런데도 북한이 김대통령을 도와주기는커녕 북풍을 일으켜 오히려 야당을 도와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통일을 목표로 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출발점이 된다.

    우리가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직접 지원하겠다고 제의한 베를린선언부터 다시 분석해보자. 햇볕정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김대통령이 순수한 뜻에서 그같은 선언을 했다고 믿고 있다. 햇볕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김대통령이 정말로 북한을 지원할까봐 색깔론을 들먹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베를린선언을 “우리 처지가 아니라 북한 처지에서 분석해 보자”고 제의한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볼 때 외국이 한 나라의 도로와 철도-전력 같은 사회간접 자본을 대신 건설해준 것은, 그 나라가 사실상 해체 단계에 들어섰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통합됐거나 청나라가 서구 열강에 분할 점령됐을 때 일본과 서구 열강은 대한제국과 중국에 철도와 도로 같은 사회간접 자본을 건설해 주었다.

    북한 전문가들은 “따라서 북한은 베를린선언을, 북한 정권을 해체하고 한국에 통합시키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북한은 이번 총선처럼 김대통령이 불리할 시기를 골라 적절히 김대통령을 고립시키는 정책을 펼친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일성-김정일정권이 ‘항일반제’(抗日反帝)를 기치로 내걸고 집권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북한이 한국전쟁을 남조선해방전쟁으로 명명한 것은, 제국주의의 식민지인 남한을 해방시키려고 싸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북한은 이런 명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전쟁 후 지난 50여년간 제국주의 세력인 미국을 그들의 카운터파트(대화상대)로 인정했고 한국은 제국주의가 세운 ‘괴뢰 정권’이라며 외면해 왔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이 대화하려면 먼저 한국과 북한이 대화해야 한다”는 점을 미국정부에 주지시켜 왔다. 미국은 이에 호응해 남북한간 대화를 우선하라며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 주었다. 이러는 사이에 북한은 90년대 초반 경제 모순과 에너지난-식량난, 그리고 김일성 사망까지 겹치면서 큰 위기에 봉착했다. 진퇴유곡의 이 위기를 북한은 ‘현란한 외교력’으로 일거에 돌파했다. 핵개발을 주제로 미국과 담판하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마련했고, 그 회담의 결과로 원자로 두 기를 지원받아 에너지난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또한 200여만명이 굶어죽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외부 지원을 유도해 식량난을 이겨나가고 있다.

    그러자 ‘닭 쫓던 개’가 된 것은 한국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김영삼정부는 대북 지원을 미끼로 한국이 미국과 함께 북한을 대좌하는 4자회담을 추진해 이를 성사시켰다. 이때 이미 보수파들은 포용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북한은 노동과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해 4자회담을 무력화하고, 다시 미국과 단독 대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98년초 새로 등장한 김대중정부는 북한을 마주 대하기 위해 물적-금적 지원을 미끼로 한 햇볕정책을 내걸었다. 북한 전문가들은 “그때는 보수파 정권이 집권했더라도 결국 햇볕정책을 내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대중정부는 햇볕정책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선전하는 실수를 범했다. 그 바람에 햇볕정책은 여야 합의물이 되지 못하고, 보수파들이 레드 콤플렉스를 가진 김대중정부를 공격하는 소재로 전락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정세 변화는 물적-금전적 지원만 받고 대화는 차단하고 싶은 북한엔 더없는 ‘우군’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지난해 비료를 공급받은 북한이 곧바로 연평사태를 일으켜 김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듦과 동시에 남북대화를 차단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지난 10년간 중국 러시아는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러는 북한이 중-러와 미국이 바로 부딪치는 상황을 막아주는 ‘완충지대’란 사실을 재발견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백남순 북한외상이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지도부와 협상을 벌인데 이어 리펑(李鵬) 중국 전국인민대표자회의 상무위원장의 북한방문이 가시화되고 있다. 2월9일에는 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우호선린협력조약’에 서명했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북한에는 ‘백만원군’이다. 국정원 국장 출신의 정영철씨는 “중-러의 북한 접근은 와해돼 있던 북방 삼각관계가 재건되는 것이라며, 이를 ‘신 북방 삼각’으로 명명했다.

    신북방 삼각이 공고화할수록 한국 주도의 통일은 멀어진다. 북한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포용정책이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영철씨는 “지금부터의 포용정책은 베를린선언처럼 북한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큰’ 주제가 아니라, 남북한이 끝없이 대좌할 수밖에 없는 ‘작지만 끈질긴’ 주제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보수파들은 색깔론으로 포용정책 흔들기를 자제하고, DJ정부 또한 햇볕정책을 야당과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만 신북방 삼각관계를 매개로 재기하려는 북한을 눌러 통일을 위한 대화창구를 개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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