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8

2000.04.06

밤마다 바뀌는 여론조사 … 왜 이래?

부동층 25~40%, 票心 파악 못해 엎치락뒤치락…무작위 표본추출도 오류 불러

  • 입력2006-04-19 13: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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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마다 바뀌는 여론조사 … 왜 이래?
    “도대체 여론조사 결과를 믿을 수가 없다. 앞서 나간다는 보도가 나와도 정말 앞서는 것인지, 또 뒤집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다.”

    4·13총선 예측 여론조사가 경쟁적으로 보도되면서 이런 하소연을 하는 후보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조사마다 결과가 달라 어느 조사를 믿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것. 조사가 나올 때마다 유력 후보들끼리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순위가 뒤바뀌는 곳은 전국 227개 선거구 중 60여곳. 특히 수도권 97곳 가운데 대략 40여곳에 달한다. 절반 가까운 곳이 매번 순위가 바뀌면서 후보자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는 얘기다.

    서울 중구의 민주당 정대철전의원과 한나라당 박성범의원은 시종 오차범위 안에서 시소 게임을 벌이고 있고, 경기 광명의 민주당 조세형의원과 한나라당 손학규전의원도 최근 조사에서 2대 2 무승부를 기록하고 있다. 인천 연수의 경우 민주당 서한샘의원이 한나라당 황우려의원에게 10% 정도 앞서는 조사도 있었지만, 최근 5개 조사를 종합하면 황의원이 3대 2로 앞선다. 부평갑의 민주당 박상규의원과 한나라당 조진형의원의 대결도 역시 3대 2의 승부로 엇갈리는 전적이 나온다. 경기 평택을처럼 민주당 정장선위원장, 한나라당 이자헌전의원, 자민련 허남훈의원 세 사람이 번갈아 수위를 차지하는 결과가 나오는 곳도 있다.

    이런 결과는 후보들의 경쟁력이 서로 엇비슷해서 그만큼 혼전의 박빙 양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부동층에 있다. 적게는 전체 유권자의 25%, 많게는 40% 가까이 나타나는 부동층을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

    여론조사 기관들은 1차 조사에서 무응답층이 50% 이상 나오면 3, 4회 이상 재차 질문을 던져 지지 성향을 파악해 내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오류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또한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로 뽑아 지역별 계층별로 분류해 조사하는 표본추출 방식은 표심을 읽는데 한계가 있어, 무응답층을 늘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난 15대 총선에서 여론조사 예측과 실제 선거 결과가 상당히 달랐던 것도 바로 부동표의 향방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약 보름쯤 남겨놓은 현재 시점에서 부동층의 규모는 대략 25∼40% 선. 민주당은 부동층이 △서울 및 수도권 30% △호남 25% △영남 40% △충청권 35% 내외가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도권이나 호남보다 영남 충청 강원권에서 부동층 비율이 높은 것은 한나라당 공천 파문과 민국당 창당이 여전히 ‘표심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충청권은 자민련 김종필명예총재와 민주당 이인제선대위원장 사이에서 방황하는 표들이 부동층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충청권은 일부 조사의 경우 갈수록 부동층이 늘어나는 경향마저 보인다.

    연령별로 보았을 때는 20대와 30대보다 40대와 50대의 부동층이 더 많은 것도 15대 총선에 이어 계속되는 커다란 특징. 15대 총선에서도 연령이 올라갈수록 부동층이 많아졌는데, 이는 전통적인 안정희구 계층이 개혁성을 강하게 띠는 집권당(신한국당)에 자기 동일화를 하지 못하고 방황했기 때문. 이번 총선 역시 이들 안정희구 계층이 민주당의 유일 견제 세력으로서의 한나라당 야성(野性)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점이 ‘전통 여권표의 방황’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당이 무차별 영입에 따라 고유의 색깔이 흐려지면서 ‘차별화 전략’에 실패한 것과, 자민련과 민국당의 어정쩡한 위치에 따라 전통적인 여와 야의 경계선이 무너진 것도 커다란 요인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의 부동층이 15대보다는 많이 줄어든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15대 당시에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60%의 부동층이 나타나는 등 전국적으로 50%의 부동층이 형성돼 각 당이 선거전략 수립에 커다란 애를 먹었다. 정치권에 대한 염증과 지역구도가 더 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층이 줄어든 사실은 총선시민연대 등의 ‘선거 개혁 운동’이 긍정적으로 작용했고, 사이버 공간의 정치 활동이 활발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 부동층은 어떤 당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까. 일단은 한나라당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은 50대가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20, 30대보다 10% 가까이 부동층이 더 두터운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영남권에서는 부동층이 여전히 민국당으로 쏠릴 가능성이 상존하는 사실과, ‘젊은 유권자 100만표 모으기 운동’ 등의 20, 30대 유권자 표 결집 운동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사실 등은 민주당에 유리하게 볼 수 있는 부분. 이에 따라 민주당은 20, 30대 부동층의 투표율 높이기에, 한나라당은 40대 이상 부동층 붙잡기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수도권 일부 지역의 경우 ‘20대와 호남-충청표는 포기하고 40대 이상의 영남권 부동표에만 집중하라’는 지침도 내려보내는 형국이다.

    현행 선거법상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금지돼 있어 ‘암흑 속의 선거’로 진입한다. 이런 ‘블랙홀’ 상태에서 부동표가 기존 여론조사 발표 1위 후보자와 2위 후보자 중 누구에게 몰릴 것인지는 대단히 궁금한 대목. 이에는 이길 확률이 있는 쪽에 붙고 싶어하는 성향인 ‘밴드 왜건(band wagon) 효과’가 작용한다는 주장과, 지는 편을 동정해 열세 후보자가 우세 후보자와의 차이를 좁혀간다는 ‘언더 도그(under dog) 효과’가 작용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선진국 투표 행위의 경우는 이 두 효과가 서로 상쇄되어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 16대 총선의 부동표는 과연 어느 당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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