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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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북핵 완성 후, 결국 南 핵무장?

해외 전문가들이 말하는 ‘시나리오의 끝’…브렉시트와 핵보유론이 닮은 이유

  • 황일도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 연구위원 shamora@donga.com

    입력2016-07-12 10: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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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의 시작은 ‘절대우위’와 ‘비교우위’였다. 고등학교 정치·경제 교과서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말은 ‘한 국가가 특정한 재화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얼마나 적은가’로 요약할 수 있다. 자동차 한 대를 국내에서 만드는 데는 1000만 원, 수입할 때는 800만 원 든다면 당연히 수입하는 게 낫다. 이름하여 절대우위다. 그러나 때로는 수입가격이 1200만 원이라도 그게 나을 수 있다. 자동차 생산에 투입될 자원과 노동력을 더 효율이 높은 다른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면 결과적으로 그게 낫다는 게 비교우위의 기본 개념이다.



    어제의 신념, 오늘의 거짓말

    이제 이를 전 세계로 펼쳐보자. 각 나라가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집중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재화를 자유무역으로 나눠 쓴다면 세계경제라는 큰 틀의 효율은 분명 이전보다 높아질 것이다. 이 명제야말로 국경을 넘어 유럽연합(EU) 같은 거대단일시장을 만들고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의 믿음이었다. 신념이 확산된 20세기 후반 이래 지구촌이 가파른 경제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뿌리다.

    문제는 이 같은 결론에 이르기까지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는 사실. 절대우위는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개념이지만, 비교우위는 수식과 계산을 거쳐 한참 궁리를 마친 뒤에야 설득력을 갖는 ‘비직관’의 세계다. 우리가 더 싸게 만들 수 있는데 왜 수입해야 하나, 왜 우리 일자리를 다른 나라에 내줘야 하나. 이 단순하면서도 호소력 강한 외침이 브렉시트(Brexit)의 배경이었고, 신자유주의 결정체였던 EU 위기의 진원지인 셈이다.

    지구촌 유권자들은 비교우위 같은 추상적인 말을 더는 믿지 않는다. 당장은 세금 낭비인 것 같아도, 미국이 전 세계 곳곳에 군사력을 투사해 안정적인 국제질서와 국제법제도를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미국 자신에게 훨씬 이익이라는 큰 틀의 그림은 ‘트럼프 돌풍’ 한 방으로 저만치 날아가버린다. 신자유주의가 일궈낸 부(富)가 공평하게 배분되지 못했던 그간의 누적된 한계는 중·하층 유권자의 분노로 이어졌고, 각 나라 정치인은 이들을 설득할 만한 신뢰를 상실한 지 오래다. 그 결과가 2016년 세계 곳곳에서 발호하는 고립주의와 민족주의다.



    흐름이 명확한 만큼 앞으로의 세상도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경제에서 시작된 급물살은 이내 안보와 국제정치로 번져나간다. EU 위기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위기로 이어지고, 흔들리는 미국 중심의 안보질서는 동맹보다 자주국방에 이끌리는 정책 선택으로 연결된다.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믿음 아래 하나의 공동체를 향하던 유엔 등 국제기구는 급속도로 힘을 잃었다. 이제부터는 모두가 모두의 적,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세상이다.

    뿌옇기 짝이 없는 파도 위에서 한국의 처지는 한층 더 곤혹스럽다. 이와 더불어 북한 핵 개발이라는 눈앞의 변수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사이 국제정치학계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지역 핵국가(Regional Nuclear State)’ 관련 논문들은 두 가지 난제를 동시에 맞닥뜨린 한국과 동북아가 장차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를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북한 같은 나라가 핵을 가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주변 국가들은 이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점치는 해외 전문가들의 논의다. 그리고 그 미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우리 곁에 와 있다.



    워싱턴이 급하지 않은 이유

    먼저 살펴볼 것은 2009년 마이클 호로위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다. 핵무기 확산과 국제분쟁의 상관관계를 계량적으로 분석한 이 연구의 결론을 한 줄로 요약하면 ‘막 핵무기를 가진 국가는 이를 과시하려 무력을 활용한 협박을 주저하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 경험이 쌓이면 그러한 경향이 사라진다’는 것. 북한에 적용해보면 한층 간단해진다. 김정은 체제의 등장 이후 급속도로 거칠어진 평양의 행동 방식과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도발적 행동의 뿌리에는 ‘핵을 가졌다’는 자신감이 투영돼 있다는 이야기다.

    핵무기를 막 완성한 국가는 이를 체제 생존의 문제로 인식한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내려 애쓰고, 이를 잘 활용하면 어떤 정치적 목표도 이룰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넘친다. 물론 북한의 경우도 언젠가는 그러한 확신에 착각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겠지만,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일 따름이다. 반면 핵 보유 이후 70년을 넘긴 미국은 상황이 정반대다. 핵무기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라고, 국제정치에서 활용할 다양한 카드 가운데 하나라고 믿을 따름이다. 아무리 상대가 위협적으로 행동한다 해도 섣불리 핵을 꺼내 들어 자제시키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북한을 수백 번 초토화하고도 남을 전력을 가진 미국이 평양의 핵개발 행보에 아무런 강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다. 오히려 약소국이 상황을 주도하는 듯한 형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과 미국은 북핵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2012년 비핀 나랑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논문이 이 문제를 뿌리까지 파고든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특정 국가의 핵무기 보유 자체에는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이를 실제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휘명령체계와 운용교리를 완성하기 전까지는 큰 의미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북측은 핵·미사일을 전담하는 전략군 창설 같은 시도를 통해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완성됐다’고 을러대지만, 워싱턴의 눈으로 보자면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2013년 매슈 크로이닉 조지타운대 교수의 연구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핵을 기반으로 두 나라가 대립할 경우 핵무기 수가 더 많은 쪽이 언제나 우위를 점하게 돼 있다는 게 골자다. 제아무리 북한이 갖은 역량을 다해 핵을 ‘찍어낸다’ 해도 미국을 넘어설 수 없고, 결국 실제로 위기가 불거졌을 때 판을 주도하는 것은 자신들이라는 게 워싱턴의 잠재적 사고방식이라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당장 북한의 핵 보유를 막거나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래 봐야 진짜 전쟁 위기가 닥치면 김정은 체제 역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으리라는 근본적 자신감이다.

    상황을 여기까지 정리해놓고 보면 이야기는 자못 명확해진다.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막을 방법이 없다. 온 힘을 다해 핵 보유를 막아설 이유도 딱히 없다. 그러나 한쪽은 핵을 가졌으나 다른 한쪽은 갖지 못한 비대칭 상황이라면 그림은 완전히 달라진다. 바로 북한과 남한의 경우다. 이제 막 핵을 보유한 국가는 특히 비핵국가를 상대로 힘을 과시하는 일에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반복되는 평양의 군사적 도발에 한국은 대응할 카드가 없다. 상대적으로 느긋한 미국은 ‘동맹을 믿으라’고 하지만, 불안감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가장 비관적인 현실주의의 세상

    다시 서두의 정치·경제 교과서로 돌아가보자. ‘핵 문제는 우리가 비교우위를 갖고 있으니 당신들은 신경 쓰지 말라. 그 대신 당신들은 비교우위를 가진 질 좋은 노동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경제체제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이바지해달라.’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워싱턴이 한국과 일본을 향해 강조해온 동맹의 핵심 메시지였다. 언뜻 불안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게 당신들에게도 이익이니 핵 보유 따위는 꿈꿀 필요조차 없다는 충고 혹은 경고였다.

    그러나 비교우위를 믿지 못하는 21세기 유권자들은 이 같은 지난 시대의 가르침 역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북한 핵이 고도화할수록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욕구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필립 블릭 미국 몬테레이국제관계연구소 교수의 2014년 글은, 이러한 시나리오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재래식 전력에서 우위를 점했던 한국은 북한의 핵 개발 이후 열세로 떨어졌고, 강대국의 핵우산에 불신을 품게 된다는 것. 거꾸로 미국 역시 북한의 본토 핵 공격을 우려할 상황이 오면 핵우산의 부담은 비약적으로 커진다. 여기에 앞서 설명한 고립주의의 발호와 동맹 등 국제정치제도에 대한 불신이 결합한다면? 결국 모두가 각자 핵을 가져야만 안전해질 수 있다는 가장 비관적인 현실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브렉시트와 핵무장론이 고스란히 겹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이 처한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독자 핵무장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설명은 대중의 귀에 닿지 않는다. EU 탈퇴가 자국 경제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칠지 소리 높였던 영국 경제학자들의 설명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한 것과 판박이다. 당장 EU에 내야 하는 분담금과 폭증하는 이민자로 줄어든 일자리가 훨씬 커 보였듯, 북한의 난폭하기 짝이 없는 행보에 무기력하게 서 있어야 하는 현실이 한층 절박해 보일 따름이다.

    이렇게 해서, 다시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비교우위를 믿는가, 아니면 강대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놓은 거대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20세기 한국의 눈부신 발전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앵글로색슨 스탠더드(Anglo-Saxon Standard)’를 누구보다 열심히, 빠르게 체화한 덕분이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그 믿음이 바로 그 미국과 영국에서조차 무너져내리는 격랑의 시대. 넉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선거와 그 1년 뒤 치를 한국 대통령선거는 어쩌면 바로 이 믿음에 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 향방이 다음 100년 한반도 미래를 결정지으리라는 사실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운명이, 그렇게 우리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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