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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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임팩트와 인류의 미래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07-04 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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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천체가 하늘에서 질주해 오더니 강렬한 빛을 발하면서 폭발한다. 강한 압력으로 곳곳에서 유리창이 깨지고 건물이 흔들린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2013년 2월 15일 우랄 산맥 남쪽 러시아 첼랴빈스크에 직경 20m가량의 바윗덩어리가 떨어졌다. 약 1만t의 이 소행성은 대기권에 진입하자 강한 마찰력으로 지상 50km 상공에서 부서지기 시작해 폭발 직전 30초간 빛을 발했다. 이때 폭발력은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20~30배에 달했다. 같은 날 저녁 이보다 4배 큰 소행성 2012DA14가 지구를 스쳐 지나갔다. 만약 이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영화 ‘딥 임팩트(Deep Impact)’가 현실이 됐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1908년 6월 30일 시베리아 니즈나야툰구스카 강 근처에서 대폭발이 있었다. 수십 년 뒤 과학자들은 소행성 충돌 가능성을 발표했고, 전 세계 23개국은 6월 30일을 ‘소행성의 날’로 지정해 소행성 충돌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2015년 영국 사우샘프턴대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100년까지 261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수 있고, 충돌 피해 위험도를 계산한 결과 한국은 17번째로 위험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소행성 적인가 친구인가’를 쓴 천문학자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는 소행성 충돌이 가져올 재앙을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행성 충돌이라는 위기가 곧 인류에겐 기회라고 주장한다. 충돌 가능성이 높은 소행성의 궤도를 변경하는 ‘태양 범선’ ‘키네틱 임팩트’ ‘이온엔진’ 같은 신기술이 소행성 충돌을 막을 뿐 아니라 인류의 우주 진출을 돕는 데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자의 상상력은 10만km 넘는 길이의 케이블로 지구와 우주를 연결한 ‘우주 엘리베이터’를 타고 인류가 자유롭게 우주여행을 하는 지점으로까지 우리를 이끈다.

    리사 랜들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의 상상력은 66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상에서 공룡을 멸종시킨 대형 유성체(혜성과 소행성) 충돌 사건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랜들 교수는 2015년 물리학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스터스’에 발표한 ‘주기적 혜성 충돌의 방아쇠로서 암흑 물질’이라는 논문에서, 6600만 년 전 공룡을 멸종시킨 것은 소행성 충돌을 유발한 ‘암흑 물질’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암흑 물질은 은하계 원반면 근처에 이중원반을 형성하고 있으며, 태양계가 약 3200만 년 주기로 이중원반을 지날 때 태양계 끝에 있는 ‘오르트 구름’이 교란돼 소행성이 태양계 안쪽으로 날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우주 전체의 물질 중 85%를 차지한다는 암흑 물질, 암흑 물질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제5의 힘’ 등 생소한 개념으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신비를 벗기는 데 이만큼 도발적인 가설도 없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책이다.





    플랫폼, 시장의 지배자
    류한석 지음/ 코리아닷컴/ 408쪽/ 1만6800원


    구글에서 정보를 검색하고, 페이스북에 일상을 남기고,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가장 싼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구매한다. 우리의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플랫폼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소개하고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구축한 플랫폼의 실체와 본질은 무엇이며 경쟁자를 압도하는 기업 경쟁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살펴본다.  




    현토신역 부안설 대학·중용집주
    성백효 지음/ 한국인문고전연구소/ 512쪽/ 4만8000원


    성리학 교과서로 통하는 ‘대학’과 ‘중용’은 원래 ‘예기(禮記)’라는 책에 포함된 것을 후대에 별도의 책으로 엮고 주자가 주를 달아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四書)가 됐다. 성백효 한국고전번역원 명예교수(해동경사연구소장)가 펴낸 이 책은 ‘집주(集註·여러 사람의 주석을 한데 모음)’와 ‘부안설(附按說)’로 주자 이후 다양한 제가설(諸家說)을 비교하고 저자의 견해를 추가했다.




    글쓰기 동서대전
    한정주 지음/ 김영사/ 688쪽/ 1만9000원

    박지원, 노신, 바쇼, 볼테르처럼 널리 알려진 문장가부터 조선 이용휴·이옥·조희룡, 중국 오경재·장대·서하객, 일본 요시다 겐코·이하라 사이카쿠 등 생소한 이름까지 동서양 문장가 39인의 글쓰기 미학을 정리했다. 저자는 이들의 글쓰기를 동심, 소품, 풍자, 기궤첨신(奇詭尖新·기이하고 참신함), 웅혼, 차이와 다양성, 일상, 자의식, 자득(自得) 9가지로 분류하고, 조선의 영·정조대와 중국 강희제·건륭제 시대를 비교하는 등 새로운 ‘글쓰기 인문학’을 시도했다.




    내게 꼭 맞는 꽃
    이굴기 지음/ 궁리/ 384쪽/ 1만8000원


    저자가 시인(본명 이갑수)이자 출판인, 식물학 전공자라는 사실은 일단 접어두자. 이 책에서는 꽃 앞에 ‘엎드린(굴기·屈己)’ 한 남자일 뿐이다. 앞만 보고 걸었던 저자가 ‘꽃산행’을 다니며 발밑을 훑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육안으로 확인하고 코끝으로 냄새 맡은 꽃 이야기를 들려준다. 복수초부터 난티나무까지 84개 꽃 이름을 부르다 보면 눈으로 보던 자연이 입안으로 확 들어온다.




    인공지능 시대의 삶
    한기호 지음/ 어른의 시간/ 280쪽/ 1만5000원


    한동안 종이책은 사라지고 전자책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측이 대세였지만 결과는 어느 일방의 승리가 아니라 상보적 결합이었다. 스마트기기를 활용하면서 독자는 단순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진화’하고 있다.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편집 능력’을 갖춘 사람은 살아남으며 책을 읽고, 토론하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는 것이 21세기 최고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이 책 부제가 ‘책으로 세상을 건너는 법’이다.




    나는 왜 이슬람 개혁을 말하는가
    아얀 히르시 알리 지음/ 이정민 옮김/ 책담/ 348쪽/ 1만5000원


    꾸란의 신성한 지위와 무함마드의 무오류성, 현세보다 내세를 중시하는 태도, 포괄적 법률체계로 인정받는 샤리아, 선악을 강요하는 관습, 지하드 혹은 성전을 이슬람이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소말리아 출신 여성 무슬림이 쓴 이 책은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보코하람, 알샤바브 등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자행하는 폭력의 원인이 바로 이러한 이슬람 교리에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싸우듯이
    정지돈 지음/ 문학과지성사/ 320쪽/ 1만3000원


    2013년 등단 초기 ‘지식조합형 소설’ 또는 ‘도서관 소설’로 분류됐던 ‘정지돈표 소설’이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이 작품집은 한 세기 이전의 인물과 작품이 모티프로 등장하며, 한 편의 소설이 또 다른 소설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연 이것은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자서전인가. 팩션과 픽션이 조합된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천경자 평전
    최광진 지음/ 미술문화/ 256쪽/ 1만8000원


    1995년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천경자 회고전의 큐레이터로 인연을 맺어 화가의 평전 작업을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하다 최근 화가의 죽음과 다시 불거진 ‘미인도’ 위작 논쟁을 계기로 이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멕시코 프리다 칼로에 비견되는 천경자의 ‘한(恨)’의 미학 등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하고, 위작 논란을 일으킨 ‘미인도’ 사건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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