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5

2016.07.06

안병민의 일상 경영

“낮 11시 30분 동네 입구에서 만나요”

김 할아버지의 소통법

  •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facebook.com/minoppa

    입력2016-07-04 16: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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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개봉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란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강풀의 만화를 영화화한 것이지요. 이 영화에서 놀라웠던 점은 4명의 주인공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 배우였다는 것입니다. 이순재,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의 평균나이는 70세. 연기 경력만 40~50년씩 되는, 말 그대로 국민배우들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 영화는 제작비 10억 원으로 100만 명 넘는 관객몰이를 했습니다. ‘노인들의 사랑’이라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도 참신한 주제와 그 주제를 탄탄하게 뒷받침한 노배우들의 호연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한 장면이 눈에 딱 들어왔습니다. 깐깐하고 성질 괴팍한 김만석 할아버지(이순재 분)는 동네의 송이뿐 할머니(윤소정 분)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쑥스러워서 말로는 못 하고 편지로 데이트 신청을 하지요.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글을 몰라 편지를 읽을 수 없던 송 할머니는 본의 아니게 약속을 펑크 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김 할아버지의 두 번째 데이트 신청 편지. 이번에는 글로 쓴 편지가 아니라 그림 편지였습니다. 11시 30분을 가리키는 시계, 그리고 동네 입구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지요. 이 편지는 송 할머니에게 바치는 “낮 11시 30분 동네 입구에서 만나요”라는 김 할아버지의 절절한 데이트 신청이었습니다. 편지를 받아든 송 할머니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날의 행복한 데이트!

    ‘소통의 시대’입니다. 경영과 정치 분야를 비롯해 조직과 리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뜨거운 화두가 소통입니다. 심지어 과학 분야에서도 소통은 새로운 과제입니다. 과학자들이 연구만 잘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연구 결과를 대중 눈높이에 맞춰 공유하는 것도 과학자의 능력이자 책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덕에 대중을 위한 유쾌한 과학 프레젠테이션 행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리더가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며 소통의 제스처를 취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혼자만 떠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양방향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 훈시이자 설교인 것이지요. 직원들의 입과 귀, 그리고 마음은 그럴수록 더욱 굳게 닫힙니다. 소통의 노력 때문에 오히려 소통이 안 되는 소통의 역설입니다.

    소통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게 아닙니다. 왔다 갔다 하며 주고받는 게 소통입니다. 높이가 같아야 물이 유유히 흐르듯 진정한 소통 또한 눈높이를 맞출 때 이뤄집니다. 리더라면 자신이 아닌, 그들의 생각과 말에 주파수를 맞춰야 합니다. 전혀 들리지 않던 그들의 진짜 소리, 전혀 보이지 않던 그들의 진짜 모습이 그제야 들리고 보입니다.



    혹시 직원들에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야단친 적이 있나요? 김 할아버지의 그림 편지는 리더의 소통과 언어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잘못은 자신의 눈높이만 고집하며 상대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은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 눈을 맞추며 진심을 전할 때 비로소 상대의 마음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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