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5

2016.07.06

사회

뜨는 ‘아트유학’, 실속은 뚝 ↓

유학비 3억~4억 기본, 20% 중도 포기…돌아와도 취업 난항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7-04 16: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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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일대에 ‘아트유학’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순수예술을 비롯해 그래픽아트, 패션디자인 등 상업미술에도 관심을 갖는 청소년이 크게 늘면서 미술·디자인 유학 수속을 전문으로 하는 ‘아트유학원’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 아트유학원 한 관계자는 “처음 아트유학원이 생긴 곳이 압구정동이다 보니 어느 순간 압구정역 일대가 아트유학의 메카가 됐다. 3년 전쯤부터 아트유학원이 눈에 띄게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아트유학 증가세를 통계적으로 확인하긴 어렵지만 대중의 관심도가 상당 부분 커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김기동 한국유학협회 사무국장은 “최근 유학박람회에 참여하는 유학원 가운데 아트유학을 전문으로 하는 곳의 참여도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3월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해외 유학·어학연수 박람회에 참여한 업체 100여 개 곳 가운데 13곳이 아트유학원이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2배 정도 늘어난 수치”라고 밝혔다.

    교육부가 제공한 2015년 국외 유학 주요 국가별 현황에 따르면 전년과 비교해 유일하게 유학생 수가 늘어난 나라는 영국이다. 2015년 기준 영국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수는 1만3002명으로 2014년 7062명보다 5940명(84%) 증가했다. 여기에는 아트유학 증가도 한몫했다. 김 사무국장은 “현재 국내에서 아트유학으로 가장 많이 나가는 곳이 영국이고, 한국인 기준 영국 유학생의 30%가 아트유학생”이라고 말했다. 영국 외 미국과 캐나다도 대표적인 아트유학지로 꼽힌다.



    성적 ‘바닥’이어도 가능하다?

    아트유학이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 영역이 회화, 조소 등 순수미술(파인아트)부터 디자인, 일러스트 등 응용미술까지 두루 아우르는 데다 유학 조건이 그다지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패션디자인과 아트경영에 지원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아트유학원 한 관계자는 “패션디자인 서바이벌 프로그램 등 방송에서 패션 관련 종사자들이 자주 소개되면서 의상디자인뿐 아니라 이를 상업적으로 연결하는 패션마케팅을 공부하려는 사람이 많다. 그 밖에도 스크린 기반의 인터페이스디자인 UI/UX, 무대디자인 전공자도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아트유학은 실기 실력이 중요한 만큼 최근에는 유학원 자체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지도·관리하는 미술학원(아트아카데미)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아트아카데미에서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정도 유학 준비를 위한 포트폴리오 작업을 진행한다.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의 실기 평가 성향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게끔 돕는다는 게 아트아카데미 측 설명. 또한 현지 입학처에서 학생 선발을 위해 한국 유학원을 직접 방문해 포트폴리오 심사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A유학원 관계자는 “현지 교수가 방문하는 시기는 보통 1~3월이다. 그 자리에서 포트폴리오 심사와 면접, 합격 여부까지 한꺼번에 나오는 학교도 있다. 아트유학은 일반 전공에 비해 성적 비중이 적은 학교가 많다. 포트폴리오와 에세이만 있으면 학업 성적이 ‘바닥’이어도 입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인터넷에 나와 있는 아트유학원 홍보 글을 보면 ‘포트폴리오도 필요 없다’는 문구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아트 분야 대표 유학지로 영국이 꼽히는 이유는 ‘파운데이션 과정(foundation course)’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지 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기 전 어학이나 실기 실력 향상을 위해 밟는 코스로, 영국은 우리나라와 학제가 달라 영국 대학교로 유학을 가려면 학사 진학 과정인 파운데이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각 유학원 측이 “미술에 딱히 소질이 없어도 눈높이만 낮추면 다 합격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학교 랭킹과 상관없이 유학을 가고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아트유학이 가능하다 보니 자기 적성과 유학 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다 당초 계획을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부 유학원의 경우 대학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유학 수속을 진행하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 아트유학을 준비했다는 한 학생은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에선 기본적인 드로잉 포트폴리오와 함께 특별 과제가 주어지는데, 그 사실을 입학 지원 시기가 닥쳐서야 알았다. 유학원에서 운영하는 미술학원이어서 철석같이 믿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동안 내가 주로 준비한 포트폴리오는 학원 원장이 나온 학교에 맞춘 것이었다. 1년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컸다”고 말했다. 

    영국 현지에서 15년 넘게 한국인 대상 유학원을 운영했다는 유모 씨는 아트유학 후 제대로 진로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유씨는 “보통 유학을 떠날 때는 현지 취업을 목표로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트유학은 다른 학업에 비해 20~30% 학비가 더 들 뿐 아니라 영국의 경우 현지 체류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비싸다. 파운데이션 과정까지 합쳐 4년을 영국에서 지낸다고 했을 때 드는 비용은 적어도 3억~4억 원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아트유학을 계획 중이라면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 취업 난항, 국내도 마찬가지

    지난해 영국 비자 발급 조건이 변경되면서 유학 후 현지에서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줄어들었다. 아트유학이 진행되는 공립 칼리지 재학생에게는 대부분 ‘Tier4’ 비자가 발급되는데, 비자 조건 변경 후 이 비자를 소유한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게 됐다. 유학원 관계자는 “이전에는 대학 졸업 후 3년간 현지에 머물면서 인턴십 등 취업과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이번 브렉시트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이민자에게 일자리 개방을 축소하면서 워킹비자 없이는 인턴십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학업을 마치자마자 바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그 밖에 경제적 어려움이나 학업 능력 미달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학원 관계자는 “한국 유학생 5명 중 1명은 중도에 돌아온다고 볼 수 있다. 아트스쿨은 입학은 쉬워도 졸업이 매우 어렵다. 파운데이션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계획대로 학교에 입학했더라도 수업과 과제 수행이 벅차 포기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에 돌아와도 취업 문이 그리 넓지 않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미술·디자인 관련 산업이 협소하다 보니 아트유학파의 진로가 한정돼 있다. 유학원 관계자는 “얼마 있지 않은 자리는 명문대 출신에게 돌아가고 대부분 이렇다 할 직장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특별히 취업을 생각지 않고, 나머지는 아동 미술심리치료사로 활동하거나 유학원에서 운영하는 미술학원에 강사로 취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유학을 떠나기 전 진로에 대한 정확한 로드맵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싼 돈 들여 키워온 예술적 감각을 취업이란 분야에 국한하지 말고 미술이나 디자인과 관련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등 유학파 아티스트의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도록 개인별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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