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5

2016.07.06

특집 | 브렉시트, 나비효과는 시작됐다

글로벌 불평등이 낳은 사생아

유일한 희생자는 선진국 중·하층…이들의 이중 박탈감이 분노의 근원

  • 김창환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입력2016-07-01 1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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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기로 한 영국의 국민투표는 우리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 당초 여론조사 결과는 잔류 의견이 다소 우세한 것으로 나왔고, 전문가들 역시 탈퇴가 가져올 파장이 워낙 막대하므로 영국 국민이 잔류를 택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고 이후 경제적 파장에 대한 전망이 쏟아지는 상황. 브렉시트(Brexit)의 원인에 대한 진단도 봇물 터지듯 기사화되고 있다.

    일부 미국 언론은 브렉시트가 민주주의 의사결정 체제의 약점을 드러냈다고 진단한다. 사실 여러 이슈가 얽힌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사안에 대중의 신중한 판단을 기대하긴 어렵다. 비전문가들은 복잡한 사안에 대해 종합적 판단을 하기보다 언론의 집중적 조명을 받는 자극적 이슈에 의거해 결정을 내리기 십상이다. 모든 사안에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하면 우리는 자신의 직업과 일상생활에 집중할 수 없을 게 뻔하다. 잘 이해할 수도 없는 복잡한 사안에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워낙 크므로 동전을 던지듯 무작위로 한쪽 견해를 따르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사안은 여론이 반반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직접민주주의보다 대의제가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 정치체제인 이유가 여기 있다.



    세계화, 그 뚜렷한 빛과 그림자

    그렇다면 직접민주주의는 과연 나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복잡한 사안에 직접민주주의를 적용한다 해도 해당 사안에 관심을 갖고 여러 정보를 취합한 계층이 한쪽을 지지함으로써 여론 향방을 결정하기 때문에 대부분 수긍할 만한 합리적 의사결정이 나온다. 그렇지만 지역주의 혹은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한다거나 건강 관련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등 사안을 단순화해 선동 대상으로 삼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직접민주주의가 감정에 휩쓸려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취약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되고 다음 날 6월 25일 재투표 청원이 260만 명을 넘어섰다는 뉴스는 영국의 이번 투표가 그러한 취약성을 품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왜 영국 국민은 다수 전문가가 잘못된 결정이라 생각하는 브렉시트를 선택했을까. 경제적 양극화, 이민자에 대한 반감, EU 분담금으로 영국민의 복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 과거 대영제국의 영광에 대한 향수 등 다양한 배경이 언급된다. 브렉시트를 반세계화, 보호주의 무역의 신호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세계화가 소수 엘리트층에게는 막대한 부를 안겨줬지만 대다수 대중의 삶은 어렵게 만들었으므로, 이에 대한 반감으로 영국 대중이 브렉시트를 택했다는 것이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세계화에 불만을 갖는 현상은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남발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선거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브렉시트를 영국 국민이 영국을 되찾는 결정이라고 찬양한 장본인이다. 많은 서구 선진국에서 기존 정치질서를 거부하고 인종주의·국수주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극우 보수세력을 지지하는 계층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뒤에는 세계화로 인한 전 세계 인민의 불평등 변화가 있다. 그런데 이 변화는 단순한 양극화가 아니다. 세계화가 소득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브렉시트를 지켜보며 필자가 떠올린 것은 브랑코 밀라노비치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의 신작 ‘전 세계 불평등(Global Inequality)’이다. 학자 대부분이 국가 내부의 불평등 변화를 보거나 국가간 평균 임금 격차를 연구하지만, 밀라노비치 교수는 이를 세계 전체로 확장해 전 세계 인민의 불평등 변화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그래프에서 가로축은 1988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 인민을 소득 수준에 따라 줄 세웠을 때 백분위 지수다. 세로축은 1988년부터 2008년까지 소득증가율이다(그래프 참조).

    여기에서 우리는 두 그룹의 승자와 두 그룹의 패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승자는 글로벌 엘리트다. 여기에 속한 사람은 대부분 선진국 부유층이다. 그래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이들은 평균 소득이 60% 가까이 증가했다. 세계화의 진전, 기술 발전과 더불어 경제적 기회는 더 확장되고 활동 범위의 제약도 줄었다. 두 번째 승자는 글로벌 중산층이다. 세계화의 확산과 더불어 중국, 인도, 아프리카 인민의 삶이 개선됐다. 간혹 세계화 때문에 아프리카가 이전보다 가난해졌다는 주장을 접하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내전의 수렁에 빠지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성장률은 견고하다. 두 승자 그룹이 전 세계 인민의 65% 정도를 차지한다.



    관건은 선진국 내부 불평등이다

    반면 첫 번째 패배자는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하위 10% 그룹이다. 비록 유엔의 빈곤 퇴치 프로그램은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인민이 하루 1.5달러도 되지 않은 극빈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그룹은 세계화 때문에 희생자가 된 게 아니라 세계화로부터 배제됐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 세계 생산 시스템에 끼지 못한 채 내전과 고립의 길을 걷고 있어 경제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이들의 삶을 개선하려면 먼저 국제사회의 개입을 통해 내전을 멈추고 세계 체제 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국가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결국 세계화의 희생자라고 칭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두 번째 패자 그룹뿐이다. 그래프에서 소득 순위 65~95분위를 차지하는 글로벌 중상층이다. 이 그룹 대부분은 선진국의 소득 중·하층에 해당한다. 비록 자기 나라에서는 중층이나 하층에 속하더라도 세계 전체를 놓고 보면 잘사는 상위 25%에 속한다. 이들은 국내에서는 글로벌 엘리트와 자신들의 거리가 멀어지고, 국제적으로는 글로벌 중산층과 자신들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이중의 상대적 박탈을 경험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득세하는 극우 정치세력은 바로 이 집단의 지지에 기반하고 있다.

    두 개의 승자 그룹과 두 개의 패자 그룹이라는 이러한 구도는 세계화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한눈에 보여준다. 전 세계 인민의 전체 소득 격차가 줄어들고 국가 간 불평등도 감소하지만, 선진국 내에서는 불평등이 증가한 것이다. 세계화의 폐단만 보고 반대를 외치는 것은 그간 개선된 전 세계 65% 인민의 삶을 외면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반면 세계화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일은 세계 인구의 25%에 달하는 선진국 중하층을 외면하는 일이 된다. 선진국 내부의 불평등을 줄여 두 번째 패자 그룹이 함께 세계화의 과실을 영유토록 대책을 세우는 것만이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느덧 선진국에 속한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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