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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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브렉시트, 나비효과는 시작됐다

20조 추경 무력화할 뇌관 펑?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로 세계경제 위축 우려…한국은 단기부양 카드만 ‘만지작’

  • 홍수용 동아일보 논설위원 legman@donga.com

    입력2016-07-01 15: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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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테니스 스타 앤디 머리가 2013년 영국 윔블던테니스대회에서 세르비아의 노바크 조코비치를 꺾고 우승한 장면은 3년 뒤 영국의 변화를 암시하는 일종의 징조였다. 영국은 자국에서 세계 최고 테니스대회를 열면서도 1936년부터 2012년까지 한 번도 자국 선수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대회는 늘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영국이 잔칫상을 차리고 음식은 외국인이 즐기지만, 잔치를 보러 온 외국인들 덕에 영국이 경제적으로 번성하는 ‘윔블던 효과’라는 말이 생겼다. 특히 런던은 외국 금융회사들의 놀이터가 됐으나, 그 때문에 런던은 일자리 창출과 세수 확대라는 실익을 챙길 수 있었다.  

    머리의 윔블던 우승으로 영국인이 자기 잔치의 주인공이 된 것은 미담이었다. 반면 영국이 6월 24일(이하 현지시각)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하며 전 세계를 향해 “내 나라는 내 것”이라고 외친 것은 글로벌 재앙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탈퇴 51.9%, 잔류 48.1%. 1993년 ‘하나의 유럽’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EU에서 칙사 대접을 받던 영국의 이탈은 큰 균열이다. 73년 유럽공동체(EC) 가입 이후 43년 만의 분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이어져온 유럽통합의 흐름을 감안하면 70년 만에 EU는 격변기를 맞게 된 것이다.

    세계 5위 경제대국인 영국의 EU 탈퇴는 영국이나 EU만의 이슈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저임금·저고용으로 상징되는 3저 시대가 이어지면서 EU와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무역주의와 이를 통한 경제성장의 연결고리가 깨지고 있다는 의미다. 브렉시트 투표 전날까지만 해도 영국이 EU에 잔류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영국이 EU의 울타리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EU에 남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전문가 집단의 조언이 먹혔다. 게다가 영국 노동당 조 콕스 하원의원이 투표 일주일 전 피살되면서 브렉시트 반대로 표심이 돌아섰다는 분석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영국 극우파들은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다. 투표율이 72%에 이르면서 잔류파인 청년층, 고소득층의 집중 투표로 브렉시트가 부결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개표 결과는 반대였다. 유럽에서 건너오는 이민자를 통제하면서 영국인으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의견이 잔류 의견을 앞질렀다. 이를 두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양극화가 도화선이 된 ‘현대판 농민 봉기’로 해석했다. 극심한 빈부격차 때문에 14세기 영국 농민들이 곡괭이를 들고 일어서 왕정을 심판했다면, 이번엔 대중이 표로 자기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영국 경제가 성장률 감소, 파운드화 평가절하, 대외무역 부진, 경상수지 적자 확대, 외국인 투자 감소, 금융 중심지 위상 추락, 근로자 수 감소 등 온갖 악재에 노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지금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뿐이라는 지적이 빈말이 아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영국은 조속한 시일 내 EU 탈퇴를 위한 협상을 시작하라”고 말한 것도 불확실성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평소에는 영어로 연설하던 융커 위원장이 이번에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사용한 것도 영국의 결정에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소로스의 “무질서한 분열” 현실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탈퇴 일정을 명확하게 밝히라면서 영국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메르켈 총리는 브렉시트 결정 초반 “영국을 너무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며 온건한 뉘앙스를 내비쳤지만, 최근에는 “영국에만 이득이 되는 원칙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태도로 선회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영국 국민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브렉시트 투표 직후 첫 주말 영국 내 구글 1, 2위 검색어는 ‘EU가 무엇인가’ ‘EU를 떠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였다. 기본 내용도 모른 채 감정적으로 국민투표에 나선 영국 국민의 무모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국 정부는 EU에 미련을 두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새 총리가 리스본조약 제50조 발효 시점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책임을 다음 정권으로 넘겼다. EU와의 탈퇴 협상을 후임 총리가 결정되는 10월까지 미뤄두겠다는 의미다. 리스본조약 제50조는 EU 탈퇴를 희망하는 회원국(영국)이 EU 이사회에 나가겠다는 의사를 통보한 뒤 2년 동안 해당 회원국과 EU가 새로운 무역관계 협정을 맺도록 하고 있다. 협상이 성사되지 않아도 2년이 지나면 자동 탈퇴 처리된다.

    함정은 영국이 탈퇴 의사를 EU 이사회에 통보하지 않으면 리스본조약 제50조가 유명무실해진다는 점이다. 국민투표가 법적 강제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회가 잔류를 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국민 과반이 선택한 결정을 뒤엎는 정치적 모험이다. 정치 생명을 걸고 이런 결정을 감행할 정치인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브렉시트는 유럽 내에서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의 극우세력에 영향을 미치면서 EU 추가 탈퇴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선거 전략으로 이용하고 있는 이민자에 대한 증오심과 보호주의 경향이 더 강화될 공산이 커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민자를 둘러싼 내부 갈등과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이라는 이슈가 극도의 고립주의, 보호주의로 이어지면서 세계경제가 오그라드는 어두운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이미 트럼프는 6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모네센에서 가진 유세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미국을 강간하고 있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TPP는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한 축으로,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12개 국가가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TPP를 핵심 정책으로 밀어붙여왔다. 이런 상태에서 트럼프가 “집권하면 아직 비준되지 않은 TPP에서 탈퇴하고, 미국 노동자를 위해 싸울 가장 강력하고 현명한 무역 협상가를 임명할 것”이라고 했으니,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경우 자유무역과 블록경제의 미래는 암울한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될 것이다.

    천부적인 감각으로 돈 냄새를 맡는 자본가 조지 소로스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를 통해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비슷한 강도로 유럽 실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유럽은 EU가 생기기 전보다 더 좋지 않은 상태로 추락할 수 있는 무질서한 분열로 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의 추락은 곧 세계경제의 구매력 위축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대형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3%를 밑돌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런 충격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모건스탠리는 2017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3.4%로 회복될 것으로 보면서도 브렉시트 충격 정도에 따라 0.3~0.7%p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렇듯 브렉시트의 충격은 정확한 성장 전망을 어렵게 만들 정도로 불확실한 변수다.  

    모든 게 불투명한데 한국 정부의 대응은 너무 단순하고 확실해 오히려 불안하다. 정부는 영국과 한국이 무역, 금융으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지 않은 만큼 직접적 영향은 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브렉시트의 영향이 영국과 유럽 경제에 주로 집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는 점을 토대로 한 전망이다.



    한국에 몰아치는 反세계화 쓰나미

    하지만 한국 경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국제기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통상마찰로 한국에 불똥이 튈 수도 있다. 한국산 제품은 중국 제품과 경쟁관계이기도 하지만, 한국이 납품하는 중간재를 활용해 중국이 완제품을 생산해내는 방식으로 깊이 연관돼 있다. 중국이 통상압박을 받으면 한국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다. 대내외에 잠재된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 추가경정예산 10조 원을 포함한 20조 원의 재정보강책이 별 효과를 내지 못한 채 공중분해될지도 모른다.

    이렇듯 각종 부정적인 변수를 감안하면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은 2%대 중반도 달성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 성장률 2.8%, 취업자 수 30만 명 증가 같은 장밋빛 경제전망을 내놓고 있다. 목표를 높게 잡고 매진하는 것과 현실을 부풀려 포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부는 최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높은 긴장감을 갖고 24시간 경제 및 금융 상황을 점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런 다짐만으로 브렉시트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외적으로는 FTA를 최대한 늘리는 게 중요하다. 현재 한국은 영국과 FTA 체결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은 브렉시트 결정 이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한영 FTA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하며 현명하게 대처했다”면서 “이는 아시아 내에서 한국의 교역 리더십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동시에 미국 등 다른 나라들에게는 모범”이라고 평가했다.

    대내적으로는 양극화의 문제점을 분야별로 짚어 맞춤형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기존 양극화 대책은 모든 문제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결구도로만 보는 이분법인 까닭에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지배구조 개선과 대기업 정책이 혼용되다 보니 타락한 재벌 일가에 대한 반감이 대기업을 향한 분노로 증폭되고, 중소기업 보호는 중소기업의 피터팬증후군만 키웠을 뿐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못했다. 여야정이 난제인 양극화 원인을 분야별로 면밀히 분석한 뒤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과세가 이뤄지도록 제도를 원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잘나가는 쪽의 발목을 잡아 하향 평준화하면 격차가 해소되기는커녕 전체 파이만 쪼그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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