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4

2016.06.29

국제

친일 노선 본격화 차이잉원 대만 총통

아베 일본 총리와 협력해 중국 견제, 배후는 리덩후이 전 총통

  • 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06-27 11: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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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덩후이(93) 전 대만 총통은 대만에서 대표적 친일파로 꼽힌다. 재임(1988〜2000) 시절 ‘양국론’(兩國論·대만과 중국은 특수한 국가와 국가 간 관계)을 주장했던 대만 독립론자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이 대만을 식민지배(1895~1945)했을 때 일본 교토대 농림경제학과에 다니다 일본군에 자원입대해 포병 소위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다. 그의 형 리덩친 역시 당시 일본군에 입대해 1944년 필리핀 전선에서 사망했고, 그 위패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

    리 전 총통은 2007년 6월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해 형의 위패를 참배한 일로 상당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대만과 일본은 의심할 바 없이 같은 나라였다”고 밝히는 등 친일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이 대만을 통치하면서 사법과 행정 분립을 이뤘고 근대화에 도움을 줬다”는 등 일본의 대만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발언도 남겼다.



    객가(客家)의 후예이자 코넬대 동문

    더욱이 리 전 총통은 중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에 대해서도 “센카쿠 열도는 일본 영토”라면서 일본 편을 들어왔다. 일어가 유창한 그는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 도지사, 스즈키 젠코 전 총리 등 정치인을 비롯해 일본에 지인이 많다. 지금까지 일본을 아홉 차례 방문한 그는 아베 신조 총리와도 수차례 만나는 등 상당한 친분이 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추진해온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을 지지하는가 하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두둔하기도 했다. 그의 지론은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이잉원 신임 대만 총통이 자신의 독립 노선에 반발하는 중국 측 군사·경제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카드로 일본과의 관계 강화에 적극 나서면서, 리 전 총통의 영향력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차이 총통의 정치적 멘토가 바로 리 전 총통이기 때문. 대만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석사,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생활을 하던 차이 총통을 과감하게 공직에 발탁한 사람이 바로 리 전 총통이다. 차이 총통은 리 전 총통 재임 시절 경제부 국제경제국 수석 법률고문, 행정원 대륙위원회(우리나라 통일부) 자문위원 등을 거쳐 국가안전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이 과정에서 차이 총통은 리 전 총통의 양국론 작성 작업에 깊숙이 관여한 바 있다.



    차이 총통과 리 전 총통은 객가(客家)의 후예이자 코넬대 동문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객가는 중원에 살던 한족(漢族) 중 각종 전란을 피해 광둥성과 푸젠성 등으로 이주한 민족을 말한다. 당시 중국 남부에서 살던 토착민인 주가(主家)와 구별하고자 이렇게 불렀다. 이후 객가 중 일부는 청나라 시절 대만으로 이주했다. 차이 총통의 부친은 객가 출신이고 할머니는 산악지대에 거주하던 원주민 파이완(排灣)족 출신이다. 리 전 총통은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리 전 총통의 정치적 후원이 없었다면 차이 총통은 현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친밀하다.

    차이 총통은 그동안 리 전 총통의 소개로 일본 주요 정치인과 교분을 쌓아왔다. 2015년 10월 야당인 민진당의 주석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비밀리에 아베 총리와 만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차이 주석의 방일은 아베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중의원 겸 일본·대만 경제문화교류촉진청년위원회 주석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아베 총리도 야당 시절인 2011년 9월 대만을 방문해 차이 민진당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올해 1월 차이 총통이 대만 총통 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측근인 후루야 게이지 중의원 의원을 특사로 보내 자민당 총재 명의의 친서를 전달했다.  

    차이 총통의 친일 노선은 5월 20일 취임한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일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 대표로 셰창팅 전 행정원장(우리나라 총리)을 임명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전직 총리를 일본 주재 대표로 선임한 것은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전임 마잉주 총통이 직업 외교관을 대표로 보냈던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삼각 안보동맹, 높아지는 파고

    심지어 차이 총통은 셰 대표를 ‘대사’라는  타이틀로 불렀다. 역시 교토대 대학원에서 유학한 친일파인 셰 대표는 “대만과 일본의 관계를 운명공동체로 격상하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셰 대표는 2008년 총통 선거에서 마 전 총통에 패배한 인물로 리 전 총통의 측근. 이와 함께 차이 총통은 배타적경제수역(EEZ) 설정을 놓고 일본과 갈등을 빚어온 오키노토리에 파견했던 해양경찰 순시선을 철수시켰다. 마 전 총통은 오키노토리를 ‘암초’라고 규정하고 일본이 설정한 EEZ를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은 이곳을 섬이라 주장하면서 방파제와 헬기장을 건설하는 등 일종의 영토로 만들어왔다.   

    차이 총통 취임 이후 일본과의 밀월관계를 과시하는 문화행사도 성대하게 거행됐다. 일본 NHK교향악단이 6월 3월 타이베이 국립콘서트홀에서 공연했다. NHK교향악단이 대만에서 공연한 것은 1971년 2월 이후 45년 만의 일로, 72년 9월 일본과 대만이 단교한 이후 처음이다. 명목은 5년 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대만 국민이 보내준 성금에 감사를 표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일본과 대만의 ‘새로운 관계의 서곡’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 놀라웠던 장면은 차이 총통이 아베 총리의 어머니 요코(88) 여사와 나란히 객석에 앉아 관람했다는 사실. NHK교향악단의 공연은 마 전 총통 재임 시절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차이 총통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포함해 대만과 일본의 경제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일본이 대만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아베 총리 역시 “대만은 일본과 오랜 친구”라면서 대만과의 협력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 중국을 견제하려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연결 지점에 있는 대만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최근 리 전 총통을 통해 차이 총통에게 또다시 친서를 보냈다. 리 전 총통은 친서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미국, 일본, 대만이 집단자위권 구축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일본, 대만의 삼각 안보동맹까지 거론한 것이다. 차이 총통의 친일 노선이 향후 동북아 국제질서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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