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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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모르쇠 회계법인부터 손봐라!

안진, 삼일, 삼정 빅4 중 3곳 부실감사 연루…파산 수준으로 처벌 규정 강화해야

  •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 ok@ccej.or.kr

    입력2016-06-17 17: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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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업계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 대규모 감원과 투자자 손실이 불가피하고, 추가적으로 막대한 혈세가 투입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원회(금융위)가 기업 부실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구실을 못 한 회계법인을 상대로 칼을 뽑아들었다. 6월 12일 회계법인이 부실감사를 하면 대표이사 직무를 정지하고 공인회계사 자격을 박탈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부감사법) 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당초 이 개정안은 3월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로부터 과잉규제라는 이유로 철회 권고를 받아 폐기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선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분식회계와 부실감사가 잇따라 적발되자 금융위가 일부 내용을 수정해 다시 심사를 요청했고, 규개위의 승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기업-회계법인 유착 고리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는 회계법인 부실감사 실태는 믿기 힘들 정도다. 대우조선해양 감사를 담당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경우 해당 기업이 2013년 4099억 원, 2014년에는 4711억 원 흑자를 냈다고 발표했다. 당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대규모 적자를 공시한 상태였다. 이에 분식회계 의혹이 일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담당 회계법인은 올해 3월,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영업손실 5조5000억 원 중 상당액을 2013〜2014 회계연도 손실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3년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손익은 7784억 원 적자로, 2014년 역시 7492억 원 적자로 각각 정정됐다. 2015년에는 2조9372억 원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과 얼마 전까지 수천억 원대 흑자를 내는 것으로 알려진 기업이 순식간에 ‘깡통기업’으로 확인되자 각계에서 회계법인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STX조선해양 감사를 맡았던 삼정회계법인은 부실감사 혐의로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로부터 손해배상공동기금 30% 추가 적립과 12개월간 STX조선해양 감사업무 제한 등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STX조선해양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매출과 자산을 부풀리는 등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해 2조 원대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외부감사를 맡은 삼정회계법인이 이를 가려내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분식회계 책임은 일차적으로 기업과 경영진에 있다. 하지만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해 문제가 없는지 판단해야 할 회계법인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STX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회계법인이 실사 작업만 면밀히 했어도 구조조정이 지연되지 않았을 수 있고,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한 지금 같은 방식 대신 다른 방안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주채권단인 국책은행과 관리·감독을 맡은 금융당국의 책임 또한 크다. 이들이 기업과 회계법인의 부실보고를 꼼꼼하게 감독하지 않은 결과가 추가 공적자금 투입으로 이어졌다. 어느 한 곳에서라도 자기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지금과 같이 부실 규모를 키우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으로서는 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진, 회계법인, 채권단, 금융당국 등의 유착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주식 거래에 삼일회계법인이 연루됐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태다.

    회계법인 부실감사를 불러오고 유착관계를 가능케 하는 회계제도 및 감사 시스템의 문제도 심각하다. 4월 대법원은 회계법인이 재무상태가 부실한 기업에 대한 감사를 소홀히 해 회계보고서에 ‘적정’ 의견을 냄으로써 해당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가 손실을 봤다면, 해당 회계법인도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 외부감사를 맡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과 전 임원을 상대로 소액주주들이 총 24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의 부실감사 방지대책은 아쉬운 면이 있다. 외부감사법 개정안에는 감사 실패 시 회계법인 대표이사 제재, 감사 품질관리 강화, 감사인 선임 권한을 기업 내 감사위원회로 이관, 분식회계 과징금 부과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분식회계 책임은 우선적으로 기업에 있고, 관리·감독당국 또한 책임이 있으므로 이를 고려한 종합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부실감사를 근절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을 둘러싼 유착관계 고리를 끊는 시스템부터 마련해야 한다.



    회계 및 감사 적절성 세계 꼴찌 수준

    첫째로 필요한 것이 회계법인의 주기적인 교체다. 현행 외부감사법은 회계법인이 한 기업을 연속으로 감사할 수 있도록 하고, 담당 공인회계사만 6개 사업연도(주권상장법인 회사는 4개 사업연도) 연속 감사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이 과정에서 회계법인과 기업의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회계법인을 일정 주기마다 의무적으로 교체하게 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

    둘째, 증선위의 외부감사인 지정 대상 기업을 확대해야 한다. 회계감사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과 감사인의 갑을관계로 발생하는 부실감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2015년 기준 외부감사 대상 기업
    2만4951개사 중 422개사(1.7%)만 증선위로부터 외부감사인 지정을 받은 상태다.

    셋째,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제도화해야 한다. 현재 기업들은 감사제도 보완책으로 감사위원회를 운영하지만, 감사위원은 전원 사외이사 중에서 선출한다. 회계법인과 기업 경영진 및 지배주주의 유착관계를 견제하고, 투명경영을 확립하려면 상법을 개정해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게 해야 한다.

    넷째, 처벌 수준 강화가 요구된다. 2002년 미국 엔론사 회계 조작 사건의 경우 해당 회계법인이 파산했다. 우리나라도 외부감사법에 부실감사에 대한 징벌적 과징금 부과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방안이 근본 해결책은 안 될지라도 부실감사를 줄이는 방편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업과 회계법인 스스로 준법 및 윤리의식을 갖는 것이다. 금융당국 또한 책임 회피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관리·감독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부패를 근절할 투명한 회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6월 3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제경쟁력 평가 보고서 중 회계 및 감사의 적절성 항목에서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61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지표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구조조정이 기업 부실을 야기하는 유착관계를 절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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