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1

2016.06.01

사회

‘관피아’ 하청구조가 앗아간 열아홉 청년의 꿈

서울 구의역 사망사고 원인은 ‘메피아’ 갑질 월급 140만 원에 정비공들 사지로 몰아넣어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6-03 1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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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일 오후, 서울메트로 2호선 구의역 사무실 옆엔 5월 28일 이 역의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김모(19) 군의 추모공간이 따로 마련됐다. 시민들의 추모 글귀가 담긴 포스트잇과 헌화 사이로 컵라면을 비롯한 각종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 김군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 때문이었다. 밥 먹을 시간도, 돈도 없었던 김군을 안타까워하며 먹을거리를 가져다 놓은 것이다.  

    사고현장인 지하철 승강장에서도 추모 물결은 이어졌다. 김군이 사망한 스크린도어에는 포스트잇뿐 아니라 각종 종이에 적은 시민들의 추모 글귀가 가득 붙어 있었다. 스크린도어 앞에는 지나가는 시민도 추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포스트잇과 필기구를 올려놓은 작은 탁자가 있었다. 이날 저녁 그곳에 탁자를 놓은 시민 측과 역사 직원 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역사 직원이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탁자를 치워달라”고 요구하자 시민 측은 “탁자 때문에 무슨 안전문제가 생기느냐”고 맞선 것. 계속된 역사 직원의 “안전통행 방해” 운운에  시민들은 “안전을 위해 치워달라니, 염치가 없는 것 아닌가”라고 화를 냈다. 하지만 구의역 측은 결국 탁자를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50명이 7700여 개 수리 담당

    정비공이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사고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2013년 1월 서울메트로 2호선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정비공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스크린도어를 정비할 때는 반드시 2인1조로 작업해야 한다는 안전지침이 만들어졌지만 2015년 8월 2호선 강남역에서 같은 사고가 또 발생했다. 역시 정비업체 직원이 혼자 수리하다 지하철에 치여 사망한 것. 구의역에서 사망한 김군 역시 혼자 수리하다 사고를 당했다. 실제로 2인1조 작업 규정을 지키며 보수공사에 참여한다는 서울도시철도공사 5~8호선은 2012년 이후 스크린도어 수리로 인한 인명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2인1조 작업’이라는 지침을 지키기엔 하청업체 정비인력 수에 비해 스크린도어 수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시간 내 도착해 수리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는 규정은 날림 정비를 부추겼다. 김군이 소속돼 있던 은성PSD는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수리 외주업체로, 1~4호선 97개 역(스크린도어 7700여 개)을 관리한다. 고장 신고는 하루에 보통 4~5건, 많게는 10건 정도 접수된다. 고장이 신고되면 한 시간 내 출동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범칙금이 부여되고 차후 계약에 불이익이 따른다. 이 규정 때문에 김군은 혼자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쳐야 했다. 같이 출동했던 직원이 2호선 을지로4가역에서 또 다른 고장 신고를 받아 신고처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은성PSD의 전체 직원은 143명. 이 중 관련 수리 자격증을 보유한 정비인력은 전체의 약 30%인 41명에 불과하다. 김군처럼 자격증이 없는 비정규직을 포함해도 정비인력은 50명 남짓이다. 게다가 동료 직원에 따르면 김군은 위급 상황을 알리는 무전기도 받지 못한 채 작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메트로의 정비 안전 관리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메트로의 안전매뉴얼에 따르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기 전 정비공이 역무원에게 수리 사실을 알리면 서울메트로는 전자운영실에 열차 운영 중단을 요청하게 돼 있다. 그러나 서울메트로가 자체 확인한 결과 열차 운영 중단 요청은 없었던 것으로 최종 밝혀졌다. 서울메트로는 뒤늦게 잘못을 시인했다.  

    은성PSD는 ‘도시철도 안전관리 및 운영의 충원 용역’을 사업목적으로 2011년 설립됐다. 설립되자마자 은성PSD는 큰 계약을 따냈다. 서울메트로와 5년간 350억 원짜리 스크린도어 정비·관리 용역계약을 체결한 것. 신생업체인 은성PSD가 단번에 이토록 큰 계약을 따낸 것은 이 회사가 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이 만든 ‘관피아’(관료+마피아) 기업이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실제 은성PSD의 직원 143명 가운데 약 40%에 해당하는 58명이 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이다. 이와 관련해 은성PSD의 해명을 들으려 했지만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는 폐쇄됐고, 전화번호는 삭제돼 있었다. 



    “자회사 설립, 안전대책 아니다”

    용역계약에 따라 은성PSD가 서울메트로로부터 지난 1년간 받은 돈은 70억~80억 원에 달한다. 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 유지 및 관리에 필요한 인력을 125명으로 추산하고 은성PSD에 매달 5억8000만 원가량을 지급했다. 그러나 김군이 은성PSD에서 받은 월급은 140만 원에 불과했다. 정규직 정비공의 월급도 평균 200만 원 정도에 그쳤다. 정비인력이 50명 남짓이니 전체 정비공의 임금을 합쳐도 월 1억 원이 안 된다. 나머지 4억8000만 원 가운데 상당 부분은 기술직이 아닌 서울메트로 출신 직원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평균 350만~400만 원 월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메트로 측은 “김군의 사망은 모두 자사의 관리 부족과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라고 시인했다. 정수영 서울메트로 사장 직무대행은 5월 31일 오후 ‘이 사고와 관련해 김군의 과실은 0.1%도 없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내고 6월 1일 구의역에서 공개 사과했다. 유가족 측은 ‘김군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서울메트로 측의 시인에 “억울함은 풀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군의 이모는 “우리 애(김군)가 잘못이 없다는 것이 밝혀져 억울함은 풀었다”면서도 “하지만 서울메트로가 사고 직후 사과하지 않고 우리 애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던 행위는 아직까지도 답답하다. 여론이 아니었다면 서울메트로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 같다”며 서울메트로의 사과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서울메트로는 공식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3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스크린도어 정비 시 서울메트로 직원이 동행해 2인1조 작업 요건 충족 △8월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 설립 △올해 말까지 스크린도어가 열려 있으면 열차가 역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하는 관제 시스템 마련 등이다.

    그러나 인원 충원이나 자회사 설립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은성PSD노동조합에 따르면 서울메트로는 2015년 강남역 사고 당시에도 “28명의 안전관리 직원을 충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보수 유지에 충원된 인원은 10명이었다. 서울메트로는 “바로 몇 명을 충원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은성PSD노동조합의 의견을 들어 충원을 충분히 하겠다”고 밝혔다. 자회사를 설립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찬배 민주노총 여성연맹 위원장은 “자회사는 위탁계약이기 때문에 또 다른 용역에 불과하다. 자회사 설립은 안전대책이라 볼 수 없다.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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