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2016.05.25

커버스토리 | 국민 살릴 法들이 죽어간다!

흥정의 희생물이 된 입법권

정치 공세로 인한 입법 지연은 국민 이익 침해

  •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quick00@daum.net

    입력2016-05-23 10: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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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두 가지 원칙은 대표성과 효율성이다. 문제는 두 원칙의 가치가 상호 모순적이라는 사실이다. 대표성을 강조하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반대로 효율성을 중시하면 자칫 대표성이 위축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관료제를 바탕으로 하는 행정부는 효율성을 우선시한다. 반면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는 대표성을 더 중시한다. 국회는 다수의 의견뿐 아니라 소수의 권리도 중시하는 균형의 원칙에 따라 법을 제정한다.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 가장 큰 권한을 갖는 것이 아니다. 법치국가에서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는 법에 근거해야 한다. 따라서 법률을 제·개정 및 폐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국회가 국가권력의 근본이 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국민에 의해 선출돼 정통성을 인정받지만, 대통령 1인보다 국회의원 300명이 참여하는 국회가 권력의 출발점이 되도록 권력구조가 짜여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행정부도 법안을 제출할 수 있지만 법안 심의는 오로지 국회에서만 이뤄진다는 점에서 국회가 배타적인 입법권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가권력의 근본, 국회

    사실 국회의 입법 효율성을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규범적으로 국회가 성실히 입법 기능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바람직한 입법권 행사가 무엇인지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임기 동안 많은 법안을 생산하는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가 혹은 숙의과정을 통해 법안을 통과시키는 절차적인 것이 바람직한가 등에 선뜻 대답할 수 없다.

    예를 들어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특별법) 제정까지 150일 동안 국회가 공전했을 때 언론은 국회가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것을 비난했다. 한편 2013년 정기국회 마지막 날 법안 113건을 처리했을 때는 졸속처리라며 국회를 나무랐다. 이러한 비판적 평가의 공통점은 법안 심의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국회가 시의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규범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이다.



    효율적인 입법을 저해하는 요인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당의 이념적 양극화다. 정당 사이 이념적 거리가 멀수록 중요 법안의 입법 가능성이 줄어든다. 또한 정당규율이 강할수록 의원들이 타당의 의견에 동조하기보다 당론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입법이 교착 상태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행정부와 의회를 한 정당이 모두 장악한 ‘단점정부’에서는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에서는 다수당인 여당이 제1당을 배제한 채 법안 처리를 강행하면 야당의 강한 저항으로 국회가 파행되고 다른 법안 처리가 미뤄지는 현상이 일상적이다. 여기서 문제는 논쟁적인 법안으로 국회 파행이 장기화하면서 무쟁점 법안들마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쟁점 법안으로 정당 간 갈등이 심해지면 본회의는 물론이고 관련 없는 상임위원회들까지 올스톱된다.

    그동안 입법 활성화를 위한 여러 제도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 사례로 2000년 법안실명제를 통해 발의한 법안에 대한 책임과 기여를 명확히 함으로써 법안 제출 유인을 제공했다. 또한 2003년 법안 발의 정족수를 20인에서 10인으로 줄여 입법 활성화를 도모했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법안 발의수를 증가하게 했다. 그러나 제출된 법안을 제대로 심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법안 통과 비율을 보면 국회가 새로 구성된 첫해에 가장 활발하다. 개원하면서 의원들이 민의를 반영하려는 의지를 다지고 유권자들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려는 태도를 견지하기 때문이다. 반면 대통령선거(대선) 해에는 9% 정도 가결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을 앞두고 경쟁이 심해지고 상대 정당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반영된 결과다. 결국 입법 행위가 정치 논리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필요한 입법이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국회 특성상 정당 간 합의가 기본원칙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입법 지연에 여야가 공히 원인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기에 어느 한 정당이 오롯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상대 정당에게 책임을 돌리는 정치 공세가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권의 행태가 국민 이익에 반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제도보다 중요한 정치문화

    학자들은 입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있다. 첫째, 국회가 법안 심의과정을 지속할 수 있는 회기 일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9월 정기회와 임시회 방식에서 상설국회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섭단체들의 합의에 따라 임시회를 개최할 수 있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여야 합의 없이는 임시회가 열릴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회를 상설 운영하는 것이 법안 심의를 지속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된다.

    둘째, 법률안 처리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법안 심의 지연은 다수당이 법안 처리를 강행하고 소수당이 이에 반발해 국회가 공전하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임위원회는 배정된 법안을 갈등 법안과 무갈등 법안으로 구분해 무갈등 법안을 우선 처리 법안으로 분류하고 국회 본회의 우선 상정과 처리를 명백히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당 간 갈등과 관계없이 정상적인 본회의 개최에 대한 약속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정치문화다. 19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국회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됐다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19대 국회의 낮은 입법 성과가 반드시 국회선진화법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다. 이 법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한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에 과반수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한다면 법안을 만들 때부터 전략을 바꿔야 한다. 법안 내용에 절대다수가 찬성할 수 있는 타협적인 내용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다수당 의원이 제출한 법안이라도 통과되지 못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는 다수제에서 합의제로의 이행이다. 20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 개정이 예상되지만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을 대신해 대표자가 통치를 하는 정치제도다. 국회 입법권이 사회와 국민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국회의 위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가 될 수 있다. 국회가 기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 권한의 확대가 가능하고 정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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