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2016.05.25

국제

뇌물 의혹으로 얼룩지는 2020 도쿄올림픽

페이퍼컴퍼니로 전달된 거액 자금…합법적 컨설팅 vs 불법적 뇌물

  • 장원재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입력2016-05-23 09: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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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단은 5월 11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 기사였다. 프랑스 검찰이 스포츠계 거물인 라민 디악(83) 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회장의 비리를 수사하다 도쿄올림픽유치위원회가 그의 싱가포르 비밀계좌로 거액을 송금한 사실을 밝혀냈다는 내용. 보도 당일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전혀 모르는 내용이다. 올림픽 유치는 깨끗하게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조사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생각은 없다”고 부인해 여지를 남겼다.

    일본 정부의 반응과 달리 사태는 급박하게 전개됐다. 가디언은 기사에서 돈을 받은 계좌는 디악 전 회장의 아들이자 IAAF 마케팅 컨설턴트였던 파파 마사타의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이 계좌가 수십 년간 이어진 디악 전 회장 관련 IAAF 비리의 핵심이라고 지목했다. 세네갈에서 태어난 디악 전 회장은 프랑스 멀리뛰기 선수 출신으로 16년간 IAAF 수장을 지낸 체육계 거물이다. 1999〜2013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냈는데 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도 이때다. 2014년 명예위원이 됐다 러시아 육상선수들의 도핑 테스트 결과를 눈감아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5년 11월 사임했다. 당시 뇌물을 받은 계좌가 이번에 논란이 된 계좌와 같은 싱가포르 계좌라는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 싱가포르 비밀계좌

    일본 언론은 추가 취재를 통해 계좌 소유주인 블랙 타이딩스가 2014년 7월 이미 문을 닫은 회사라고 보도했다. 소재지를 찾아가 보니 싱가포르 교외에 있는 오래된 공영주택으로 드러났고 회사 간판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디악 전 회장 측이 뇌물을 받으려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어 ‘교토통신’은 이번 스캔들의 ‘키맨’(주요 인물)으로 꼽히는 디악 전 회장의 아들 파파 마사타를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인터뷰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블랙 타이딩스의 대표 이언 탄 통 한에 대해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라고 밝혔다.

    싱가포르인인 이언 탄 통 한은 IAAF 스폰서 계약 관련 전권을 지닌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와도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캔들이 디악 전 회장-이언 탄 통 한-덴쓰-올림픽유치위원회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졌을 개연성이 크다는 관측이 이어졌다. 덴쓰는 디악 전 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IAAF와 스폰서십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도 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파 마사타는 아버지의 영향력을 업고 IAAF 컨설턴트를 지냈지만, 러시아 선수 도핑 은폐에 관여한 혐의로 1월 영구 제명됐다. 현재 비리 등 혐의로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에 국제 수배된 상태. 다만 그는 인터뷰에서 도쿄올림픽유치위원회와 이언 탄 통 한의 계약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회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태도를 바꿨다. 이어 도쿄올림픽유치위원회 이사장이던 다케다 쓰네카즈 일본올림픽위원회(JOC) 회장이 국회에 출석해 2013년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총 2억3000만 엔(약 24억8000만 원)을 송금한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다만 그는 “정식 컨설팅 계약에 의한 것”이라며 “국제적으로 컨설팅 회사 없이는 유치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합법적인 로비활동과 정보 분석을 위한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해명이었다.

    다케다 회장은 계약 경위에 대해 “덴쓰에 확인해 아시아·중동에서 큰 실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약 내용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어떻게 돈이 사용됐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며 침묵으로 일관해 의혹은 더 커졌다. 파파 마사타와 블랙 타이딩스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부인했다.

    집권여당인 자민당에서 대회 유치를 추진했던 하세 히로시 문부과학상은 좀 더 자세히 당시 상황을 밝혔다. 스페인 마드리드, 터키 이스탄불과 경쟁을 벌이던 도쿄는 개최지 선정 발표를 두 달여 남긴 2013년 7월까지 경쟁지에 뒤지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해 8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IOC 위원 30여 명이 모이는 만큼 ‘여기서 전세를 뒤집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컨설팅사를 고용,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 그는 “실체가 없는 회사가 아니다. IOC 위원들과 매우 가까운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가진 회사여서 정보 수집이 손쉬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요미우리신문’은 도쿄올림픽유치위원회의 송금액 중 상당수가 프랑스 파리에서 고급 시계 구매에 사용됐다고 전했다. 정보 수집 등 합법적 로비를 벗어난 뇌물 공여가 이뤄졌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도약 계기 마련’ 물거품 되나

    IOC의 뇌물 스캔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9년에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가 2002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거액의 뇌물과 혜택을 준 사실이 드러나 위원 10명이 사임하거나 제명됐다. 이번 스캔들이 확산할 경우 IOC는 다시 강한 쇄신 압력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1998 나가노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위원들의 가족과 친구까지 초청해 과도한 접대를 한 사실이 문제가 됐다. 당시 교토 여행을 포함해 총 5억 엔가량이 들었다고 한다. 이번에 지급한 컨설팅 비용이 뇌물로 드러날 경우 ‘돈으로 올림픽 개최권을 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1964 도쿄올림픽으로 전후 부흥을 세계에 알린 일본은 56년 만에 열리는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지긋지긋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아베 내각도 2020년을 일본이 새롭게 도약하는 해로 만들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각종 잡음에 시달리고 있어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7월 선정된 도쿄올림픽 공식 엠블럼은 표절 시비 끝에 40여 일 만에 폐기됐다. 올림픽 엠블럼이 표절로 폐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생전에 설계한 주경기장은 건설비가 당초 1300억 엔(약 1조4000억 원) 규모였으나 2520억 엔(약 2조7000억 원)으로 늘면서 백지화됐다. 재공모를 거쳐 다시 선정했지만, 당시 하디드가 “내 설계안과 비슷하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새 경기장에 성화대 설계가 빠진 사실이 드러나 진통을 겪고 있다. 뇌물 스캔들까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도쿄올림픽은 ‘상처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 일본 스포츠계는 수사를 진행 중인 프랑스 검찰의 움직임을 긴장 속에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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