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5

2016.04.27

한창호의 시네+아트

바로크 민담의 시대 풍자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테일 오브 테일즈’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6-04-26 10: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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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테일 오브 테일즈’(2015)는 바로크 시절 민담 세 가지를 엮은 작품이다. 17세기 이탈리아 나폴리 작가 잠바티스타 바실레의 원작을 각색했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소개돼 기괴한 내용과 화려한 이미지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괴물의 심장을 먹어서라도 아들을 갖고 싶어 하는 여왕, 오로지 육체적 쾌락을 즐기는 데 정력을 허비하는 젊은 왕, 그리고 애완용 벼룩을 키우느라 국정을 등한시하는 한심한 왕 등이 주요 인물이다. 말하자면 최고 권력자의 기이한 집착과 이에 따른 허망한 결과가 민담의 주요 내용이다.

    ‘테일 오브 테일즈’의 눈에 띄는 미덕은 보다시피 기발한 내용인데, 특히 그 내용이 현재에도 큰 공명을 불러올 만큼 시의성을 담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다. 욕망의 대상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심장도 뜯어 먹는, 다시 말해 살해행위도 주저하지 않는 여왕, 육체적 쾌락 추구를 국정으로 삼은 왕, 그리고 일은 뒷전에 두고 애완동물에 집착하며 궁전에 칩거하는 왕 등은 지금도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목격되는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자 같다. 조역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현 세태에 대한 예리한 비유로 읽힌다. 특히 ‘쾌락 왕’의 여성들이 보여주는, 피부를 벗겨서라도 다시 젊어지려는 열망은 성형을 통한 변신 집착이라는 현대인의 강박을 비유한 것일 테다.

    가로네는 이런 내용을 보통의 민담처럼 기승전결의 인과율로 전개하지 않는다. 세 이야기는 서로 섞인 채 교차하며 이어진다. 여왕 이야기에 몰입하려는 순간 쾌락 왕의 이야기가 끼어들고, 다시 앞 이야기는 중단한 채 ‘벼룩 왕’의 한심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식이다. 그러면서 세 이야기는 같이 앞으로 굴러간다. 말하자면 가로네는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중단하고 지연시키며 드라마를 끌어가고 있다. 이래선 감정이입이 되기 어렵고, 따라서 인물과의 동일시도 방해받는다. 영화보기의 일반적 태도, 곧 몰입하는 관객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 대신 ‘테일 오브 테일즈’의 관객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연극을 볼 때처럼 스크린과 거리를 두게 된다.

    게다가 화가 출신인 가로네는 회화적 인용을 곳곳에 펼쳐 놓았다. 이를테면 여왕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바로크 시절 스페인 대가인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궁정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 속에 회화가 끼어드는 이런 표현법 역시 몰입보다 성찰을 유도하는 장치다. 이 점이 ‘테일 오브 테일즈’의 미덕이자 단점이다. 쉬울 것 같은 옛날이야기를 낯선 형식으로 구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잇지 않고 파편화하는 것, 그럼으로써 영화와 관객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것은 지금을 성찰하자는 브레히트식 장치다. 이야기가 잠시 중단될 때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2008년 사회비판적 드라마 ‘고모라’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끈 가로네가 이번엔 옛이야기를 끌어와 역시 지금을 되돌아보자고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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