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5

2016.04.27

法으로 본 세상

상식이 승리하는 그날을 기다리며

가습기 살균제 검찰 수사 만시지탄

  • 남성원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nswwh@lawcm.com

    입력2016-04-25 15: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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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오래 걸렸다. 우리 기억에서 멀어졌던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검찰 수사로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피해자가 새롭게 발생한 것도 아닌데 검찰은 특별수사팀까지 꾸리며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했고 살균제 판매업체인 롯데마트는 미리 대비했다는 듯 피해자 보상을 선언하고 나섰다. 롯데마트가 ‘배상’이 아니라 굳이 ‘보상’이라는 표현을 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법적으로 ‘배상’은 손해를 끼친 원인행위가 불법일 때 쓰는 용어이고 ‘보상’은 적법한 행위로 끼친 손해를 갚는 행위를 가리킨다. 롯데마트는 말로만 사과했을 뿐 자신의 죄를 인정한 적이 없다.    

    2000년대 초부터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는 2011년 4월에서야 그로 인한 사망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살균제가 섞인 습기를 마신 영·유아, 아동, 노인 등이 ‘폐손상증후군’으로 사망한 사실이 연이어 드러났고 의료기관의 신고로 역학조사가 실시됐다. 그해 8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폐 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11월에는 가습기 살균제의 인체 독성을 공식 확인하면서 판매 중단과 회수 권고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피해 확인과 진상 규명은 더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파악된 사망자만 140명, 공식 피해 의심 사례 신고는 750건을 넘어섰다. 그동안 중증피해자들은 폐 이식 수술비 등 천문학적인 치료비를 스스로 부담했다. 피해자들과 시민단체의 끈질긴 투쟁 끝에 검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만시지탄과 부끄러움이 앞선다. 수백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엄청난 참사임에도 우리는 너무 무심했고 검찰 수사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수사가 늦은 만큼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습기 살균제는 제조생산업체→유통업체→제조납품업체→판매업체 등의 전달과정을 거쳐 판매됐으며 문제의 살균제 가운데 70%는 영국 다국적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의 제품이다. 책임 대상이 되는 업체는 모두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다. 이들의 법적 책임은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으로 나눌 수 있다. 형사책임으로는 과실치사죄(위험성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면 살인죄에도 해당한다), 민사책임으로는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책임이 적용될 수 있다. 민형사책임을 판단할 때 모두 관련 업체들의 위험성 인지 여부와 과실 유무, 살균제 사용과 사망의 인과관계가 쟁점이 된다. 검찰 수사로 밝혀진 형사적 진실은 민사책임 판단에도 유효하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회사들이 인체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 대학 교수들이 돈을 받고 책임을 부인하는 보고서를 써줬다는 의혹, 진상 규명이 지연되는 동안 일부 대기업이 책임을 면탈하고자 유한회사로 형태를 바꾸고 증거를 인멸했다는 보도는 우리를 절망케 한다. 관련 대기업들은 앞으로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 사망의 인과관계 판명에 온갖 전문적 지식을 덧입혀 빠져나가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살균제 판매가 중단되자 동일한 증세의 환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굴지 대기업들이 자신이 만들고 팔았던 제품의 위험성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상식선에서도 판단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잘못을 하면 시인을 하지 않는다. 시인을 하기보다 수많은 거짓말을 그 위에 입힌다. 그 모든 거짓말에 대해 해명을 하라고 요구한다. 사건이 터지면 호들갑을 떤다. 대중이 잊을 때까지 기다린다. 피해자들이 지칠 때까지 시간을 기다린다. 돈다발을 흔들며 일부와 몰래 합의를 한다. 이간질을 하며 피해자들을 작은 단위로 쪼갠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두고 어느 사람이 쓴 글이다.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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