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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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여론조사를 어찌할꼬

판세 분석에 웃고 표심에 울고

‘지지율=득표율’ 공식 무너져…불리한 줄 알았다면 선거운동 달라졌을 수도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4-25 15: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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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조사 결과가 차이가 나 더불어민주당 허영 후보와의 막판 접전은 예상하지 못했다. 춘천시민의 표심이 무서웠고 개표되는 동안 떨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20대 총선 강원 춘천에서 재선에 성공한 새누리당 김진태 당선인이 4월 19일 강원CBS 프로그램 ‘시사포커스 박윤경입니다’에 출연해 총선과 관련해 언급한 대목이다. 김 당선인은 이번 총선에서 50.5% 득표율로 45.9%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허영 후보를 4.6%p 차로 앞서 당선했다. 그러나 춘천KBS, 춘천MBC, G1강원민방, 강원일보 등 강원도의 주요 언론들이 4월 3일과 4일 이틀간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김진태 후보가 50.4% 지지율로 28.1%에 그친 허영 후보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여론조사에 나타난 큰 지지율 격차로 강원도 정가에서는 ‘이변’ 가능성을 높지 않게 봤다. 그러나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표심은 크게 출렁였고, 김 당선인이 개표 내내 마음을 졸이고 지켜봐야 했을 만큼 격차는 크게 줄었다.

    간발의 차로 낙선한 허영 후보는 “여론조사 격차에 실망한 분들이 ‘초박빙 상황이니 마지막까지 힘을 모아달라’는 내 얘기를 믿으려 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며 “4월 12일 밤 12시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시각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해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허 후보는 “지지율 차이가 큰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아 ‘한 표 찍어준다고 결과가 바뀌겠느냐’는 사표 심리가 적잖았다”며 “선거운동 마지막 날까지 패배감을 극복하고 사표 심리를 없애는 데 주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민심과 동떨어진 여론조사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발표된 총선 여론조사에서 김진태 후보 50.5%, 허영 후보 45.9%로 실제 총선 득표율과 유사한 오차범위 내 박빙의 결과가 공표됐다면 실제 총선 결과는 어땠을까.



    서울 은평을의 경우는 선거일 직전 마지막으로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가 오차범위를 벗어나 크게 달랐다. MBN, 매일경제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4월 5일과 6일 실시한 서울 은평을 여론조사에서는 무소속 이재오 후보가 27.5% 지지율로 1위를 달렸고, 국민의당 고연호 후보가 18.7%로 2위, 더민주당 강병원 후보는 18.2%로 3위에 그쳤다. 그러나 막상 투표함 뚜껑을 열어본 결과 강병원 후보가 36.7%로 당선했다. 이재오 후보가 29.5%로 2위, 고연호 후보는 27.5%로 3위였다. 총선 직전 마지막으로 공표된 여론조사에서 3위에 그친 후보가 1위에 오른 것이다. 강병원 당선인은 “서울 은평을 선거는 시종일관 유권자가 대안을 찾는 과정이었다”며 “그런데 여론조사는 그런 민심을 정확히 담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 당선인과 일문일답.

    ▼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가 크게 달랐다.

    “서울 은평을 선거는 이 지역에서 5선을 기록한 이재오 후보를 한 번 더 밀어줄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선거였다. 지역 여론 가운데 절반 이상, 많게는 70% 가까이가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다시 말해 은평을 선거는 유권자의 70%가 대안을 찾는 과정이었다.”

    ▼ 선거일 직전 마지막으로 공표된 여론조사에서 3위에 머물렀는데.

    “여론조사는 선거 공보물이 집집마다 배달되기 전 실시된 것이다. 그런데 지역 내 여론은 선고 공보물이 배달된 이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병원과 고연호 두 후보 가운데 누구를 대안으로 선택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유권자의 표심이 여론조사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여론조사 방식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

    ▼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건가.

    “선거 여론조사는 대부분 유선전화로 실시됐다. 평일 낮에 집전화로 실시한 조사로는 전체 유권자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최소한 유무선을 병행하든, 아니면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활용해 조사를 실시해야 정확한 여론을 반영할 수 있다.”

    선거 직전 실시된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에서 당락이 뒤바뀐 지역은 서울 은평을 외에도 여럿 있다. 특히 서울 종로는 20여 회 가까운 여론조사에서 줄곧 앞선 결과가 나왔던 새누리당 오세훈 후보가 오차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12.9% 표차로 낙선함으로써 대표적인 여론조사 참사 지역으로 꼽힌다. 서울 종로는 20대 총선 전국 253개 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여론조사가 실시된 곳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12월 이후 선거일 직전까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중앙여심위)에 등록된 조사 건수만 20건에 이른다.



    ‘지지율=득표율’로 착각하면 낭패

    중앙여심위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20차례의 서울 종로 총선 여론조사 가운데 더민주당 정세균 후보가 오세훈 후보를 앞선 결과는 단 두 차례뿐이었다. 코리아리서치센터가 4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조사에서 정세균 후보가 40.4%로 오세훈 후보(40.0%)를 근소한 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고, 엠브레인이 4월 5일과 6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정세균 후보 44.8%, 오세훈 후보 42.2%였다. 두 조사를 제외한 나머지 조사에서는 오 후보가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대부분 앞선 결과가 나왔다. 일부 조사에서는 오차범위를 넘어 오 후보가 10%p 이상 앞선 결과도 있었다. 오 후보가 앞설 것이란 서울 종로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여론조사 결과는 오 후보 측의 방심과 오판을 불러왔다. 오 후보는 자신이 총선에 출마한 후보 신분임에도 새누리당 후보가 고전하고 있는 서울 마포 등 다른 지역 지원유세를 활발히 다녔다. 그에 비해 정 후보 측은 “여론조사는 참고자료일 뿐 체감하는 민심은 다르다”며 선거운동에 더 집중했다. 그 결과는 정세균 후보 52.6%, 오세훈 후보 39.7%로 나타났다.

    만약 서울 종로 여론조사에서 오 후보가 정 후보에게 10%p 이상 뒤지고 있다는 결과가 일찌감치 나왔다면 선거 양상이 어떻게 전개됐을까. 여론조사에서 불리한 결과를 받아든 오 후보가 서울 다른 지역 지원유세를 다녔을까. 오 후보의 패배 원인 가운데 하나가 여론조사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선거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지지율=득표율’로 착각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는 유권자 전체 모집단에서 일부를 표본으로 추출하고 그 가운데 응답한 사람들의 의견일 뿐이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에는 적게는 몇%에서 많게는 수십%까지 존재하는 ‘무응답/ 기권층’이 포함된다. 그러나 총선 투표함에서 ‘무투표층’은 당락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실제 선거에서는 신분증을 들고 투표장에 가서 투표용지에 기표한 뒤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집어넣은 유권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은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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