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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탐낸 에게해의 진주

그리스의 기적 ‘빈산토’

세계가 탐낸 에게해의 진주

세계가 탐낸 에게해의 진주

바구니처럼 동그랗게 자라는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포도나무. 사진 제공 · 김상미

빈산토(Vinsanto)는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스위트 와인이다. 하지만 이 와인의 원조가 그리스 산토리니 섬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오히려 이탈리아산 디저트 와인으로 더 잘 알려졌다. 산토리니의 빈산토 와인이 어떻게 이탈리아까지 전해진 걸까. 그 유래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게해 한가운데 위치한 산토리니 섬은 고대부터 그리스, 터키, 로마, 이집트를 잇는 교역의 중심지였다. 그렇다 보니 산토리니는 모두가 탐내는 섬이었고, 지배국도 계속 바뀌었다. 기원전 3000년 무렵 크레타를 시작으로 기원전 1300년부터는 페니키아, 도리아가 점령했으며 이후 그리스를 거쳐 기원전 146년 로마에 귀속됐다. 산토리니라는 지명은 베네치아(Venezia)가 이 섬을 지배하던 1204년 지어졌다. 배를 정박하던 곳에 산타이리니(Santa Irini)라는 교회가 있었는데, 이 교회 이름을 따서 이 섬을 산타이리니라 부른 것이 훗날 산토리니가 된 것이다.

기원전 1600년대 발생한 거대한 화산 폭발은 산토리니를 화산재와 용암으로 뒤덮었다. 그래서 이곳 땅은 화산암과 석회암이 주를 이룬다. 곡식을 기르기엔 너무 척박하지만 다행히 포도를 기르기엔 최적지다. 산토리니는 청동기시대부터 다양한 와인을 생산했고, 그중에서도 빈산토 와인이 특히 유명하다. 빈산토는 포도를 말려 만든 와인이라 당도와 알코올 도수가 좋고, 긴 항해에도 쉽게 상하지 않았다. 베네치아는 이 와인을 산토리니에서 만든 와인이라는 뜻에서 비노 산토(Vino Santo)로 불렀고, 이 이름이 나중에 빈산토가 됐다. 베네치아는 빈산토를 유럽 전역으로 수출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1579년부터 산토리니를 지배한 오스만제국도 회교국이었지만 빈산토 생산을 허락했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산토리니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 포도나무는 동그란 바구니처럼 땅에 바짝 붙어 있다. 가지는 위로 자랄 때마다 조금씩 구부러져 동그란 바구니 형태를 만들고 포도는 그 안에서 자란다. 바구니 윗부분은 잎들이 자라 덮는다. 포도 바구니는 이른 아침 바다에서 밀려오는 축축한 안개를 가둬 내부 습도를 유지하고, 윗부분의 포도 잎은 강한 햇볕으로부터 포도를 보호한다. 뜨겁고 건조한 환경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기발한 방법이지만, 포도나무가 워낙 땅에 가깝게 자라다 보니 산토리니 사람들에게 포도 재배는 허리가 부러질 듯한 중노동이다.





세계가 탐낸 에게해의 진주

각각 4년, 12년, 20년간 숙성된 빈산토 와인(오른쪽부터).

빈산토 와인은 이곳 토착 품종인 아시르티코(Assyrtiko)에 아이다니(Aidani)와 아티리(Athiri)라는 포도를 조금 섞어 만든다. 수확한 포도는 햇볕에서 약 2주간 말린 뒤 발효에 들어간다. 발효가 끝난 빈산토는 오크통에서 최소 2년간 숙성되는데, 와이너리에 따라서는 20년간 숙성하는 곳도 있다. 숙성이 짧은 빈산토는 밝은 주황색에 말린 살구와 오렌지향이 좋아 과일 케이크나 치즈 케이크와 잘 어울린다. 긴 숙성을 거친 빈산토는 진한 밤색을 띠고 캐러멜, 커피, 건포도, 코코아 같은 향이 진해 초콜릿이나 짭짤한 치즈와 즐기면 환상의 궁합을 맛볼 수 있다.

‘하느님은 문 하나를 닫으시면 창문 하나를 열어 놓으신다.’ 고된 환경 속에서도 분명 살아갈 길이 있다는 희망을 담은 그리스 속담이다. 산토리니는 아름답지만 척박한 땅이다. 산토리니에게 포도는 하느님이 열어놓은 창문일지도 모르겠다. 빈산토는 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콤한 희망의 바람이다.





주간동아 2016.04.13 1033호 (p76~76)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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