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2

2016.04.06

와인 for you

우아하고 섬세한 그 맛, 멜바를 닮았네

호주 야라밸리 와인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6-04-04 14: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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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화폐 가운데 가장 높은 단위인 100달러 지폐에는 ‘넬리 멜바(Nellie Melba)’라는 여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멜바는 100여 년 전 시대를 풍미하던 호주 출신 오페라 가수다. 원래 성은 미첼(Mitchell)이지만 고향 멜버른(Melbourne)을 줄인 멜바를 예명으로 쓸 정도로 고향 사랑이 각별했다. 노년에 접어든 그가 유럽과 미국에서 누린 엄청난 인기를 뒤로하고 돌아온 곳은 고향 호주였다. 멜버른에서 북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야라밸리(Yarra Valley)에서 여생을 보냈다.

    야라밸리는 빅토리아 주에 위치한 와인 산지다. 우리나라에는 주로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남호주) 주에서 생산한 시라즈(Shiraz) 와인이 수입되고 있다. 우리가 호주 와인의 맛을 진하고 묵직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반면 같은 호주지만 야라밸리에서 생산한 와인은 우아하고 섬세하다. 뜨겁고 건조한 남호주와 달리 야라밸리는 남극에 더 가까워 기후가 훨씬 서늘하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으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보다 기온이 낮고 피노 누아르(Pinot Noir)로 유명한 프랑스 부르고뉴보다 따뜻해 모든 품종이 고루 잘 자라는 천혜의 와인 산지다.

    야라밸리를 특히 유명하게 만든 것은 피노 누아르와 샤르도네(Chardonnay)다. 이곳 피노 누아르 와인은 딸기와 체리 같은 과일향, 바이올렛과 장미를 연상케 하는 꽃향, 버섯향을 품고 있다. 신대륙 피노 누아르 와인에서 찾아보기 힘든 복합적인 맛을 낸다. 고운 파우더 같은 타닌은 탄탄한 구조감을 선사하는데, 마치 가냘픈 몸매 속에 다부진 골격을 숨긴 것 같은 맛이다.

    야라밸리 샤르도네 또한 남다르다. 호주 샤르도네는 과숙한 과일향과 진한 오크향으로 한때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았지만, 이곳 샤르도네는 레몬과 복숭아처럼 신선한 과일향에 아카시아를 닮은 꽃향과 부싯돌 냄새 같은 미네랄향이 섞여 우아한 맛이 난다.

    이렇게 맛있는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르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 또한 야라밸리의 숨겨진 보석이다. 가볍고 상큼한 것부터 풍부하고 묵직한 것까지 스타일이 다양해 분위기나 음식에 따라 폭넓은 선택이 가능하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시라즈 와인도 독특하다. 묵직하기로 유명한 품종들이 야라밸리의 선선한 기후와 만나 중간 정도 보디감을 내는 우아한 와인으로 변신했다. 과일과 꽃이 뒤섞인 향은 화사하고, 촘촘한 타닌은 부드럽게 입안을 채운다. 진하고 무거운 레드 와인이 지겨워졌다면 야라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과 시라즈를 추천한다. 세련된 레드 와인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멜바가 누리던 인기는 요즘으로 치면 팝스타 마돈나를 능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대스타가 야라밸리에서 노년을 보낸 것을 보면 고향의 와인이 무척이나 그리웠나 보다. 멜바의 집은 이제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쿰브 팜(Coombe Farm) 와이너리를 설립해 와인도 생산하고 있다. 섬세함과 화려함 속에서도 힘이 느껴지는 멜바의 목소리는 야라밸리 와인과 참 많이 닮았다. 100여 년 전 한 녹음이라 음질은 좋지 않지만 멜바가 부르는 오페라 라보엠(La bohe`me)의 아리아 ‘미미의 작별 인사’를 들으며 지는 벚꽃을 보고 싶다. 야라밸리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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