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2

2016.04.06

특집 | ‘와해적 혁신’과 생존 기업

혁신 뒤 과제는 지속가능성

우버의 성공이 오히려 예외적, 대부분 혁신 기업 실패 직면…노동자의 비정규직화 가속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입력2016-04-04 11:4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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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발전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와해적 혁신도 마찬가지다. 택시를 잡거나 대리운전기사를 섭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하던 소비자는 높은 편익을 얻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이로 인해 직업을 잃기도 한다. 갖은 성공 사례가 투자자를 부추기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 성공이 지속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 우버의 기업가치는 2013년만 해도 5조7000억 원 수준이었다.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로 보면 40위 후반으로, 한화생명이나 CJ 정도의 규모. 그러나 3년 후인 2016년에는 기업가치가 78조 원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코스피 시가총액 2위인 한국전력공사(약 38조 원)의 갑절이다. 우버의 성공은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계의 우버’라는 표현과 함께 수많은 유사 스타트업을 양산했다.



    우버의 성공은 예외적

    우리나라에서는 카카오의 O2O(online to offline) 행보에 대해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카카오드라이버가 카카오택시의 성공을 어렵잖게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 관련 업계의 관측. 정주환 카카오 O2O·커머스사업부문 총괄부사장은 3월 23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주차장과 미용실 관련 O2O 사업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부 국내 애널리스트는 카카오의 O2O 사업 가능성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비슷해 보인다고 모든 사업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상 내로라하는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과 인재들이 각축을 벌이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우버는 예외적 사례로 남고 있는 듯하다. 파하드 만주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는 3월 23일 자신의 기명 칼럼에서 ‘우버를 제외한 많은 온디맨드(on-demand) 기업이 역경을 겪고 있다. 가격은 올라가고 서비스 질은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해 고객이 필요할 때 바로 오프라인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디맨드 서비스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의구심을 표한 것이다. ‘우버의 성공은 여러 측면에서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우버를 포함한 혁신 기업들이 지금 보여주는 화려한 성과도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통신장비회사인 시스코시스템스(Cisco Systems)의 경우 시가총액이 1990년대 초반에는 월마트의 1%밖에 되지 못했다. 그러다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대에는 시가총액이 월마트의 230%까지 치솟았다 닷컴 버블이 꺼진 이후 현재는 64%가량을 유지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우버의 급성장을 바라보면서 일부 전문가는 지금의 현상이 2000년대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게다가 기술발전에도 ‘와해적 혁신’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산업 부문은 분명히 존재한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식음료, 담배, 생활소비품, 부동산, 통신, 운송 부문은 기술발전에 의한 리스크에 가장 덜 노출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와해적 혁신은 단순히 기업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에게도 기업이 받는 것 못지않은 영향을 끼친다. 어떠한 직업은 새로 생겨나기도 하지만, 그보다 많은 직업이 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 노동자가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 자체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이는 특히 우버 같은 서비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해외에서 우버 서비스를 사용해본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우버 운전기사들은 생계가 급박한 사람보다 은퇴 후 또는 투잡으로 여유시간을 활용하는, 상대적으로 고급 인력이 많다는 것. 우버가 국내에서 택시기사가 아닌 자가용 운전자도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우버엑스’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실시했을 때도 이용자들이 후기에 비슷한 언급을 많이 했다.

    이는 실증적 연구 결과와도 상통한다. 조너선 홀 우버 정책연구담당과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2015년 1월 발표한 미국 우버 기사의 노동시장에 대한 분석 논문에 따르면 일반 택시기사 가운데 단 18%만이 학사 이상 학위를 가진 반면, 우버 기사는 48%가 학사 이상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우버 서비스는 그리 복잡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첨단문물에 대해 평균 이상의 이해도를 지녀야 그 시스템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혁신의 보상도 빈익빈 부익부

    “긍정적 측면에서 이는 노동자로 하여금 시간을 더욱 신축적으로 쓸 수 있게 한다. 기사는 전업으로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고, 택시 대기장에서 손님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기사들은 새로 얻은 여가시간을 대학 공부를 하거나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일 등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일러 코웬 미국 조지메이슨대 경제학 교수가 2015년 6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 말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발전은 자신의 여가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의사가 있고 또한 그럴 수 있는 노동자에게 득이 될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며 역할을 재빠르게 바꾸는 데 능숙한 사람일 것이다. (중략) 많은 사람이 그럴 수 있겠지만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 최근 혁신 기업들의 번창으로 생기는 효익을 얻는 쪽은 대부분 어느 정도 지적·경제적 자본을 가진 중산층이 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에어비앤비(Airbnb)가 클린턴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 자문을 역임한 바 있는 경제학자 진 스털링에게 의뢰해 2015년 6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에어비앤비 플랫폼을 통한 홈셰어링이 (중산층) 가구들이 지난 15년간 소득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 정도의 추가적인 소득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 수준이 높지 않고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절실한 저소득층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무엇을 의미할까.

    카카오드라이버가 대리운전시장을 ‘접수’하면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카카오택시의 성공으로 콜택시업계에서는 많은 전화상담원이 직업을 잃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전화상담원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대리운전기사로 등록해 활동할 수 있다. 낮에는 학업을 계속 하고 밤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대학생이나 일이 심야에 끝나는 직장인도 업계에 발을 들일 수 있다. 대담한 결정을 한 적이 없는 카카오의 특성상 요금이나 수수료 제도는 모든 기사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테지만, 만일 요금도 기사들이 각기 다르게 제시한다면 업계에 미칠 파급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택시를 잡기 어려운 심야시간에 퇴근하는 직장인이 마침 근처에서 회식을 끝마쳤는데 자기 집 인근에 사는 사람의 대리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대리기사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가격에도 (심지어 무료로도) 대리운전을 할 의사가 있을 것이다.

    “(우버 등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해질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미 많은 소비자가 이들을 좋아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또한 적어도 일부 노동자는 이러한 변화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교육 수준이 좀 더 낮은 노동자가 어떠한 영향을 받을지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코웬 교수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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