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9

2016.03.16

경제

메가 FTA 시대, 기로에 선 한국

TPP로 美·日 등 12개국 FTA체제 곧 출범…가입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hjkim@lgeri.com

    입력2016-03-11 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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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일본 등 태평양 주변 12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TPP) 서명식이 2월 4일 뉴질랜드에서 열렸다. 힘겹게 협상을 마무리한 지 4개월 만이다. 이제  각국의 국내 비준 절차를 거쳐 빠르면 2년 내 미국, 일본을 비롯한 태평양 주변 12개국의 경제통합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2년 안에 비준을 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12개국 국내총생산(GDP) 총액의 85%를 차지하는 6개국 이상이 비준 절차를 마치면 해당 국가들 내에서는 효력을 갖는다(표 참조).
    통상 질서는 일부 전문가가 주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제환경 변화로 무역 현장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갈등 요인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런 맥락에서 TPP 타결은 세계경제 통합 움직임의 지각 변동을 보여준다. 자유무역협정(FTA)이 두 나라 사이에서 이뤄지는 방식으로 진행되다 여러 나라가 한꺼번에 FTA를 맺는 메가 FTA 위주로 변화하는 것. 어떤 변화들이 TPP를 만들어냈을까.



    양자에서 다자로

    가장 대표적인 요인은 글로벌 생산 분업의 확대라 할 수 있다. 각국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여러 나라가 함께 참여하는 ‘국가 간 생산 분업’이 늘어나면서 하나의 재화를 생산하는 데도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와 같은 생산 분업 단계의 세분화는 양자 간 FTA의 실효성을 떨어뜨렸다. FTA의 관세 유예 혜택을 받으려면 해당 상품의 전체 부가가치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을 FTA 참여 국가 내에서 만든다는 ‘원산지 규정’을 충족해야 하는데, 글로벌 생산 분업 단계가 여러 나라로 확대될수록 개별 국가의 기여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다음으로 중국 제조업의 부상이다.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던 TPP가 타결된 것은 동아시아 지역 생산 네트워크의 무게중심이 중국 쪽으로 쏠리면서 지정학적, 지경학적(geo-economic) 경쟁자인 미국과 일본의 위기의식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미국을 포함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일본, 중국, 한국 등의 산업별 수입 수요 기여도를 부가가치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 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서 NAFTA와 일본의 기여도는 계속 줄어든 반면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중국의 기여도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2000년부터 2011년까지 NAFTA의 수입 수요 가운데 역내에서 조달된 기여도는 6.5% 줄어든 반면, 중국으로부터 조달된 기여도는 3.5% 늘어났다. 전자 및 화학산업에서도 마찬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경쟁 환경이 불공정하게 작용해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TPP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TPP가 미국 노동자와 기업들을 위해 운동장 높이를 고르게, 즉 경쟁 환경을 공정하게 만든다’는 구호가 등장한다. 특정 국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노동 착취, 환경 파괴, 정부 지원 등의 불공정한 행위를 통해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국가들이 적잖으며,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해 원칙을 지키면서 정당하게 일하는 노동자와 기업들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미국은 TPP가 이런 불공정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고, 관세 자유화 일정뿐 아니라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협정문에 포함시켰다.



    TPP 가입은 피할 수 없는 대세

    이와 같은 탄생 배경을 고려할 때 TPP 경제통합체가 출범하면 우리 기업들의 사업 환경에도 상당한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 먼저, 대외적으로는 무역블록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새로운 선택의 고민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TPP 타결을 계기로 다자간 메가 FTA로의 진화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질 텐데, 메가 FTA마다 강조하는 부분이 각기 다르다. TPP에 적합한 산업과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아세안 국가와 한국, 중국, 일본 등이 참여하는 다자간 FTA)에 적합한 산업이 다르다는 의미다. 각국의 경쟁 우위나 주력 산업 특성에 맞게 관세 장벽 제거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비관세 장벽을 강조할 것인지, 또는 전통 제조업과 미래형 제조업 가운데 어느 산업에 유리한지 등을 FTA에 참여하는 회원국들이 다양하게 결정해야 한다.
    기업들의 대(對)중국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중국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다양해지는 추세고 TPP에 대한 중국 측 태도가 아직 확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중국 활용 전략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게 가져가야 할 필요성이 크다. 특히 전기자동차, 우주항공 등 미래 혁신 산업 분야에서는 TPP 내 선진국들과 중국 간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어서 우리 기업들로서는 심사숙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대내적 변화도 적잖다. TPP는 기존 무역협정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으며,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 해소를 위해 다양한 부문에서 자유화를 강조하고 있다. TPP의 이러한 특징이 반영돼 공정경쟁 환경 조성, 각종 규제 완화 및 철폐 등이 TPP 협정 문에 중요한 항목으로 추가됐다. 또한 TPP는 여러 항목에서 ‘일반원칙 준수’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배타적으로 보호하거나 규제하고자 마련한 정책의 상당수가 효력을 잃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기업의 자율과 책임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와 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TPP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가 TPP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일본과 베트남을 비롯한 TPP 회원국들에게 미국 시장을 잠식당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한미 FTA를 통해 누려온 상대적 우위를 더는 향유할 수 없고, TPP 회원국들이 서로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글로벌 생산 분업 체제를 강화하는 것도 우리 기업들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우리의 TPP 참여는 이익 극대화보다 손실 최소화 관점에서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둘째, 제도 변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TPP가 요구하는 제도적 환경과 우리 사회의 규제 수준 사이에는 아직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한 예로, 사전적 규제 중심인 우리의 제도 환경을 사후적 규제 중심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위해서는 사후적 규제 환경이 유리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자리 잡아온 시스템인 만큼 실제 발생할 손실과 편익 규모, 우리 국민과 기업들이 감당할 만한 변화 수준 등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셋째, 미래형 혁신 기업과의 협력 및 융합에 대한 관심을 키워야 한다. TPP를 통해 국가 간 제도 및 경쟁 환경의 격차가 해소되고 기술 유출의 우려가 사라지면 미국 실리콘밸리나 뉴욕의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벤처업체들이 후발국으로의 사업 이전을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다. 따라서 이 신흥 기업들이 열어갈 미래, 현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분야가 어떤 구조로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 등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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