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8

2016.03.09

특집 | 오존의 역습

“공기 살균? 가습기 살균제와 뭐가 다른가”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3-07 12: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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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환(62·사진)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대중에게 친숙한 과학자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비롯해 수십 권의 과학 및 교양 분야 서적을 번역·집필했고, 여러 언론에 과학을 주제로 한 칼럼을 기고했으며,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연구윤리 위반 사건 등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각종 과학 분야 이슈에 앞장서 목소리를 내왔다. 서울대와 미국 코넬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정통 과학자이면서, 서강대에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을 만들어 주임교수를 맡은 것도 과학과 사회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안전한 살균제?

    그동안 MSG(글루탐산나트륨) 등 식품 첨가물의 위해성 논란, 백수오 사건으로 불거진 건강 기능성식품 논란 등에 참여해 과학적 기준을 제시해온 이 교수가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그는 “환경부가 확인한 피해자만 530명에 이르고 그중 14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가습기 살균제가 출시된 1994년부터 문제가 불거진 2012년까지 발생한 잠재적 피해자는 184만 명에 이른다는 추정치도 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보상을 요구하자 환경부 장관이 ‘가습기 살균제 개발 당시에는 흡입독성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에 붙어 있는 세균을 죽이는 제품이죠. 식기세척제가 식기를 세척하는 데 쓰는 물질인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렇다면 해당 물질의 독성을 검사할 때 뭘 하겠습니까. 사람 피부에 닿으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만에 하나 먹을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검사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요.”
    이 교수의 말이다. 가습기 살균제 개발 당시 해당 물질의 흡입독성에 대한 자료가 없었던 이유는 호흡을 통해 살균제를 흡수하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그동안 세계 어느 나라 기업도 이런 ‘상상력’을 발휘한 적이 없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이 그것을 했다. 사용안내문을 통해서다.
    “가습기 물통에 세정제를 넣은 상태에서 물을 붓고 가습기를 작동시키라고 했죠. 그러자면 이 제품에 애초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라 ‘공기 살균제’라는 이름을 붙였어야 합니다. 허가 내용과 사용 방법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문제는 우리나라 규제기관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용법을 미리 확인하지 못하고 이후 18년이나 방치했다는 거죠.”
    이 교수는 이 제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세균을 죽이는 물질이 인체에도 피해를 준다는 건 어떻게 보면 상식인데,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 전체에 살균제를 뿌리면서 문제가 되는지조차 몰랐다”는 이유에서다. “과학기술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자신과 가족의 건강, 안전을 위해 기초적인 상식은 갖춰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그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기업, 정부, 시민의 집단적 ‘비상식’의 결과로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참사’가 벌어졌음에도 여전히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듯 보인다는 점이다. 그는 “최근 대기오염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실내 공기 중 세균과 바이러스를 모조리 없애준다는 공기청정기 제품들이 팔리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실내 공기를 ‘살균’하려면 ‘살균제’를 뿌려야 하지 않겠나. 살균물질이 유해균과 우리 세포 내 미생물을 구별할 수 없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고 말을 꺼냈다.
    “제가 화학자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인체에 무해한 살균제는 없다는 거예요. 다만 우리는 100조 개에 가까운 세포로 구성된 덕분에 세균보다 화학물질에 대해 좀 더 큰 저항성을 갖고 있을 뿐이죠.”



    음이온은 신비의 물질?

    그렇다면 ‘살균’을 강조하는 제품은 다 위험한가. 또 이를 내세우지 않는 공기청정기는 안전한 걸까. 이 교수에 따르면 공기청정기의 핵심 기능은 실내 공기 중에 떠 있는 먼지와 유해가스 등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하려면 먼저 실내 공기를 빨아들여야 하는데, 제품 대부분이 이 과정에 전기를 발생시킨다. 정전기 생긴 옷에 먼지가 달라붙는 원리를 이용해 먼지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후 기기 내에 장착한 필터로 걸러 오염물질을 제거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기방전(스파크)에 의해 공기 중 산소 분자가 깨지면서 오존(O3)이 만들어진다는 점. 오존은 일정 농도를 넘어설 경우 인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물질이다(28쪽 기사 참조). 따라서 ‘전기집진식’ 공기청정기는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음이온’ 발생을 내세우는 공기청정기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음이온 발생기’는 대부분 음이온을 만들기 위해 코로나 방전을 이용하는데, 이때 역시 오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음이온이 마치 신비의 물질처럼 알려져 있어서 TV, 운동기구, 에어컨 중에도 음이온이 나오는 제품이 있다. 과연 그것들이 인체에 유익한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우선 종류에 무관하게 모든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주장부터 성립할 수 없다. 그는 “많은 사람이 세상의 모든 원자는 양전하를 가진 ‘원자핵’과 음전하를 가진 ‘전자’로 이뤄지고, 대부분 전기적으로 중성을 유지하며, 가끔 전자 수가 많거나 적어지면 이를 ‘이온’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배웠을 것”이라며 “전자가 많아 음전하를 띠면 ‘음이온’, 전자가 부족해 양전하를 띠면 ‘양이온’이다. 여기에 신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설령 건강에 유익한 음이온을 방출하는 제품이 있다 해도 그와 동시에 오존을 뿜어낸다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높은 살균력으로 인기를 끌었던 ‘은나노 세탁기’의 경우 미국 수출을 추진하다 제동이 걸린 적이 있다. 환경보호국(EPA)에서 해당 제품에 ‘살충제·살균제·쥐약법(Federal Insecticide, Fungicide, and Rodenticide Act·FIFRA)’을 적용해 인체와 환경에 대한 독성자료를 요구한 것”이라며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강한 살균력을 이렇게 엄중하게 다룬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오존 발생을 중심 기능으로 하는 ‘오존발생기’까지 공기청정기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어요. 그런 기기가 일반 가정에서 무방비로 사용되는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교수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일정 수준의 살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세균을 죽이는 일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상식적인 눈으로 제품을 바라보고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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