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8

2016.03.09

김광화의 밥꽃, 목숨꽃 사랑

겨울을 견딘 그대, 이름을 부르고 새겨라

먹는 봄꽃에 대한 예의

  • 농부작가 flowingsky@hanmail.net

    입력2016-03-04 16: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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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봄을 맞지만 해마다 다른 것 같다. 하루하루는 그저 그런 거 같은데 말이다. 소한, 대한 지나 입춘, 우수면 봄 냄새가 부쩍 난다. 꽃샘추위에도 언 땅이 슬근슬근 녹으면 정말 하루가 다르다. 겨울을 난 풀들은 신이 난다.
    마음 급한 이들은 꽃을 찾아 저 멀리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간다. 급기야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까지. 이렇게 멀리까지 가서 꽃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사는 이곳에서 허리를 굽혀 땅을 찬찬히 살펴보자. 생각지도 못한 이른 봄꽃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그 꽃을 먹을 수 있다면 더 말해 무엇 하랴,
    필자가 사는 지역은 산악지대라 아직 춥다. 엊그제도 하루 종일 눈발이 날리고 새벽에는 곧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곤 한다. 얼핏 보면 한겨울과 다름없다. 하지만 들로 나서면 곳곳에서 봄의 합창이 시작됐다. 산개구리는 물가에서 ‘호르르 호르르’ 새처럼 짝을 찾아 울고, 청딱따구리와 멧비둘기 역시 짝을 찾아 운다. 겨울잠을 자던 무당벌레는 깨어나 끝없이 고물고물 어디론가 기어간다. 허리 숙여 무당벌레처럼 땅바닥을 기다 보면 짝을 찾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허리 숙여야 만나는 꽃들

    광대나물은 양지바르고 땅심이 좋은 밭이나 길가에 자라는 한·두해살이풀이다. 보통 식물도감에는 4월이나 5월 꽃이 핀다고 나와 있지만, 지난가을에 싹이 나 겨울을 난 개체 중에는 겨우내 날만 따스하면 언제라도 꽃을 피우려 꽃봉오리 상태인 녀석들이 있다. 영하 20도 추위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다 땅이 녹자마자 하나 둘 꽃을 피운다. 비록 작지만 빛깔이 자줏빛이라 눈에 잘 띈다. 언뜻 광대나물은 시금치와 비슷해 보인다. 한겨울이라도 눈 없고 햇살 좋은 날이면 뜯어서 먹을 수 있다.
    다음은 냉이. 냉이 역시 한·두해살이풀이다. 가을에 싹이 튼 냉이는 겨우내 로제트 상태로 추위를 이긴다. 동그랗게 돌려 난 잎은 흙빛을 띠고 땅을 파고들 듯한 모양새로 겨울을 난다. 이렇게 함으로써 추운 바람을 덜 맞고, 제 뿌리한테는 이불 노릇을 한다. 땅이 녹으면 숨죽였던 뿌리들이 힘차게 뻗어간다.  
    하지만 이른 봄 자연에서 냉이를 찾으려면 보물 찾듯이 해야 한다. 흙색과 비슷해 언뜻 봐서는 눈에 잘 안 띈다. 캐는 것 역시 정성이 필요하다. 호미로 캐면 뿌리가 끊기니 삽으로 푹 떠 흙을 조심스레 턴다. 다듬고 씻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뿌리와 잎 사이 검불이 엉켜 있어 여러 번 씻어야 한다. 도 닦듯이 씻어야 한다.


    그렇다고 맛이 좋은 것도 아니다. 부드러운 맛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한다. 억세고 질기다. 그렇다면 향은 어떨까. 이건 말로 감당이 안 된다. 깨어 있는 냉이가 겨울잠을 자는 여러 생명을 깨우는 듯한 향기다. 그래서 냉이는 향으로 먹는다. 냉이꽃은 자디잔 데다 꽃잎이 흰빛이라 이른 봄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냉이를 캐다 보면 한두 포기 이르게 꽃을 피운 녀석을 발견하게 된다. 가끔은 영하 7도 눈 덮인 곳에서도 눈보다 더 하얀 꽃을 피운다.
    서양민들레 역시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여기저기 노란 꽃을 홀연히 피우고는 사라진다. 민들레꽃은 차로 우려 마신다. 꽃도 보기 좋고, 맛도 순한 건 제비꽃이다. 하양꽃, 노랑꽃, 보라꽃 등 종류가 아주 많지만 모두 먹을 수 있다. 개체가 작아 꽃잎 몇 장 따다 차나 음식에 넣어 분위기를 살릴 뿐이다.





    이름을 부르고 새기며

    봄꽃이라면 아무래도 나무들이 돋보인다. 잎이 돋기 전 이런저런 나무들이 먼저 꽃을 피운다. 겨울 나고 가장 이르게 꽃을 피우는 나무는 아마도 생강나무일 것이다. 노란 꽃이 줄기에서 터질 듯 뭉글뭉글 피어난다. 생강나무보다 한 걸음 늦게 꽃이 피는 건 노란 산수유나무꽃. 멀리서 얼핏 봐서는 이 둘의 구별이 쉽지 않다 그리고 뒤이어 매화와 목련꽃이 핀다. 이런 꽃들은 물을 끓인 다음 찻잔에 띄우면 향기가 좋다. 차 한 잔으로 봄을 느낄 수 있다.
    꽃잎 가운데 혀를 자극해 맛다운 맛을 내는 건 진달래꽃. 우리 조상들이 진달래꽃을 먹어온 지는 제법 오래다. 분홍빛 꽃잎은 화전으로 부쳐 먹고, 날로 먹어도 그 나름 상큼하니 좋다. 주먹밥을 뭉쳐 꽃잎을 붙이면 보기도 탐스럽다.
    아까시나무꽃처럼 막 따서 먹을 수 있는 꽃이 있으니 골담초라는 나무에서 나는 꽃이다. 이 나무는 가시가 있고 키가 작아 집 둘레 울타리로 적합한데, 꽃에는 벌이 엄청 많이 날아올 정도로 꿀이 많고 식감도 아삭해 사람이 먹기에 좋다. 그냥도 먹지만 반찬 둘레에 몇 송이 두기만 해도 노란 꽃이 음식을 화려하게 치장해준다.
    이렇게 꽃을 먹다 보면 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생각하게 된다. 이름이라도 불러주자는 거다. 제비꽃을 먹을 때는 ‘제비꽃!’ 매화꽃잎차를 마실 때는 ‘매화!’라고. 제 몸을 내어준 그 이름을 부르고 또 새긴다. 

    먹어서는 안 되는 꽃들진달래꽃과 비슷한 철쭉꽃은 독이 있다. 진달래꽃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철쭉꽃은 보통 진달래꽃이 진 뒤 피며, 잎이 먼저 나고 뒤이어 꽃이 핀다. 노란 애기똥풀 역시 아름답지만 독이 있다. 논두렁에서 피는 할미꽃도 그렇다. 천남성은 꽃보다 열매가 더 유혹적이지만 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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