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8

2016.03.09

단독

S.M. Entertainment 저작권 허위등록 국제적 망신

뮤지컬 OST 수록곡, 원작곡가 두고 자사 작곡가로 등록…한국 기업들 저작인격권 개념 無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입력2016-03-04 15: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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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이나 행사 동영상 등에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곡은 대부분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권을 얻어 쓰는 것들이다. 합법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했다 해도 원작곡자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이 곡을 다른 사람이 작곡한 것으로 등록하고 그 음반을 팔면 어떻게 될까.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그런데 인터넷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서 일어난 저작권 분쟁 과정에서 SM엔터테인먼트(SM)가 바로 그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SM 뮤지컬이 오히려 저작권 위반

    싱가포르 사진작가 아람 판(Aram Pan)은 취미로 북한을 자주 여행하면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운영하는 ‘DPRK 360’ 페이지는 북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판 씨가 올린 북한 영상들을 국내 방송사에서도 많이 가져다 쓸 정도다.
    판 씨는 2월 초 이상한 저작권 분쟁에 휘말렸다. 자신이 유튜브에 올린 북한 헬리콥터 관광 동영상에 대해 SM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 동영상에 삽입된 배경음악이 SM이 저작권을 갖고 있는 음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판 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배경음악은 자신이 ‘디지털 주스(Digital Juice, Inc.)’라는 회사에 사용료를 내고 쓴 것이기 때문이었다. 디지털 주스는 미국에 소재한 기업으로 일정액을 내면 이 업체가 보유한 각종 음향, 영상, 사진 관련 라이브러리를 따로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 쓸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정 사용료를 지불하면 자신의 콘텐츠에 자료사진으로 쓸 수 있는 ‘스톡 사진’과 같은 ‘스톡 음악’인 셈이다.
    판 씨는 “SM 측은 내 동영상에 사용된 배경음악이 뮤지컬 ‘스쿨오즈’ OST에 수록된 ‘Prologue’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스쿨오즈’는 SM이 올해 초 선보인 홀로그램 뮤지컬로 동방신기, 샤이니, EXO, 레드벨벳 등 SM 소속 유명 케이팝(K-pop) 그룹 멤버들이 출연한다. 3월 2일 현재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위치한 SM타운 시어터에서 상연 중이다.
    판 씨는 자신이 음원을 구매한 디지털 주스에 저작권을 문의했다. 디지털 주스 측은 “해당 곡의 저작권은 온전히 자사에 귀속돼 있다”고 답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우리 음원의 일부를 자기네 제작물에 넣고서는 유튜브에 자신이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듯하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SM엔터테인먼트는 저작권을 갖고 있지 않으며 저작권을 주장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 (중략) 이 곡 ‘Clarion Conspiracy’는 알렉산더 마이클 데이비스(Alexander Michael Davis)가 오직 디지털 주스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기자가 두 곡을 모두 들어보니 ‘스쿨오즈’ OST에 수록된 ‘Prologue’는 ‘Clarion Conspiracy’에 약간의 음향 효과만 덧입힌 것이었다. 그러나 음반에는 해당 곡의 작곡가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작곡가인 유모 씨로 돼 있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도 해당 곡의 저작자가 유씨로 표기돼 있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법적 문제가 따른다. 첫째, 음원을 제공한 디지털 주스가 이를 음반으로 판매하는 것을 허용했느냐의 문제다. 김유나 변호사(법률사무소 아트로)는 이에 대해 “저작권자가 음원 제공업체(예를들면 디지털 주스)에 저작재산권을 양도하고 SM엔터테인먼트는 이 사이트에서 음원을 구매해 사용했을 것이다. 이를 사용해 음반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권한까지 저작권자가 음원 제공업체 측에 양도했는지, 그리고 SM엔터테인먼트 또한 그 권한을 양수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음원 판매 등으로 얻은 수익을 손해로 추정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M “실수로 빚어진 일…즉각 조치”

    보통 이러한 스톡 음악들은 방송 또는 행사 오프닝 영상이나 프레젠테이션 영상 등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된다. 스톡 음악을 ‘음반’으로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SM 측이 이 음원을 구매했을 때 맺은 최종사용자라이선스협정(EULA)에 관련 내용이 어떻게 규정돼 있는지가 관건이다. SM 측은 이에 대한 ‘주간동아’의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으나 판 씨가 갖고 있는 자신의 최종사용자라이선스협정에는 ‘사용자의 시청각(audio-visual) 작품의 일부로 공연·배포하는 것 외 목적으로는 공연·배포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최종사용자라이선스협정이 계약자에 따라 크게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뮤지컬’이 아닌 ‘음반’으로 판매한 경우 SM 측이 협정을 위반한 것이 될 수 있다.
    둘째, 저작인격권 침해 문제다. 이는 위 경우와 달리 그 침해 여부가 명백하다. 저작권법상 저작자에게 인정되는 권리는 크게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으로 나뉘는데, 저작인격권이란 저작자가 저작물을 통해 갖고 있는 인격적인 이익을 보호하는 권리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저작물은 내가 만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저작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산상의 권리인 저작재산권은 양도가 가능하지만 저작인격권은 그렇지 않다.
    김유나 변호사는 “해당 곡의 원작곡가(알렉산더 마이클 데이비스)가 SM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말한다. “저작인격권 가운데 동일성유지권 위반을 이유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위자료)를 할 수 있고, 저작권을 등록할 때와 음반 발매 시 SM 소속 작곡가 유씨를 저작권자로 표시한 것과 관련해 저작인격권 가운데 성명표시권 위반으로 위자료 청구가 가능하다.”
    SM 측은 이 문제에 대한 ‘주간동아’의 질의에 “실수로 빚어진 일”이라고 해명함과 동시에 “이를 즉각 시정했다”고 답했다.
    “(해당 곡에 대한)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록 과정에서 SM 퍼블리싱부(SM 음악출판사업부)가 위와 같은 제반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고 등록함으로써 최종사용자라이선스협정을 어기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SM 퍼블리싱부는 디지털 주스사와의 협의를 통해 해당 곡에 대한 저작권자 등록을 신속히 바로잡고, 이와 더불어 저작권자의 오(誤)등록으로 인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로부터 현재까지 잘못 지급된 저작권료를 신속히 반환함으로써 추가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아니할 것임을 확인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작인격권은 디지털 주스가 아닌 창작자만이 주장 또는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 저작인격권 침해를 다툴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기자는 디지털 주스 측에 해당 사안에 대한 의견과 원저작자의 연락처를 요청했으나 “이에 대해서 현재 더 말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국내 업계, 저작인격권 무시가 관행

    그렇다면 판 씨의 유튜브 영상에 제기된 저작권 침해 신고는 어떻게 된 일일까. SM 측 해명에 따르면 유튜브 시스템에 들어 있는 저작권 침해 자동 필터링 기능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유튜브 측은 유튜브 내에 등록되는 영상물에 대해 내부 정책적으로 복수 저작물 간 저작권 침해에 대한 충돌 등을 자동 필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 및 운영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시스템의 필터링 결과 아람 판의 영상물 배경음악과 당사 ‘스쿨오즈’ OST 트랙 2번 ‘Prologue’ 간 충돌 결과를 확인했으며, 유튜브는 SM엔터테인먼트 및 아람 판 모두에게 이와 같은 결과를 통보했고, (중략) 충돌 문제를 해결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현재는 아람 판의 영상물에 대한 유튜브상 서비스에 하등의 문제가 없는 상태입니다.”
    판 씨는 유튜브의 저작권 침해 방지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튜브 시스템은 저작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에게 무조건 저작권이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를 악용하는 회사들은 다른 사람의 영상으로 돈을 벌고 다른 사람의 수익을 빼앗아갈 수 있다.”
    이 사건이 저작인격권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견해도 있다.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오민애·위원회) 측은 “실제로 음악뿐 아니라 디자인, 출판산업에서도 저작자의 저작인격권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고, 많은 창작자가 자신의 손으로 창작물을 내고도 창작물이라고 주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 측은 지난해 논란이 됐던 로이 엔터테인먼트의 ‘유령 작곡가’ 사건이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로이 엔터테인먼트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배경음악 전문 음악 제작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속 작곡가들이 “회사가 자신들의 동의 없이 곡을 수집·사용했고

    저작물 수익을 확실히 밝히지 않는 등 일상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해왔다”고 주장한 것. 저작권료는 물론이고 ‘작곡자’라는 크레디트까지 실제로는 작곡에 참여하지 않는 경영진들이 가져간다는 사실이 폭로돼 논란이 있었다.
    “국내 관행으로 미뤄봤을 때 SM엔터테인먼트는 큰 고민 없이 해당 곡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진행했을 개연성이 높다. SM엔터테인먼트가 잘못을 바로 인정한 이유도 저작권자가 저작권 문제에 민감한 해외 업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인업계에서도 저작인격권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계약을 위해 디자이너에게 요청한 시안을 클라이언트가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직원의 디자인을 대표의 창작물로 소개하는 식이다.
    그러나 실제로 저작인격권 침해가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지 실태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위원회는 “문제를 제기하다 직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실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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