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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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중국 은행 대북거래 불허 현지 기업들 전전긍긍

지난해 12월 시작된 ‘선제적 조치’…얼어붙은 단둥

  • 구자룡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 bonhong@donga.com

    입력2016-02-29 12: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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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핵실험(1월 6일)과 장거리 로켓 발사(2월 7일) 등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더욱 강도 높은 제재안을 준비 중이던 2월 18~20일, 기자가 찾은 북한과 중국의 접경 도시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은 ‘태풍 전야의 긴장’이 감돌았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철교 하나만 건너면 북한 신의주인 단둥은 북·중 무역의 70% 이상이 이뤄지는 대표적인 접경 도시다. 대북제재가 강화되면 가장 먼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보니 북·중 관계의 체온계 같은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그간 중국이 대북제재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많았지만, 의외로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던 소식은 중국 최대은행인 공상(工商)은행의 랴오닝성 단둥분행이 북한인 명의 계좌에 대해 입금과 계좌이체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은행 한 직원은 2월 18일과 19일 두 차례 기자와 통화에서 “북한인 명의 계좌에 대한 중국인의 입금과 계좌이체 서비스를 중단했다”며 “현재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 등 모든 화폐의 입금과 계좌이체를 불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지난해 12월 말 이런 조치가 내려졌는데, 이유에 대해서는 본점에서 들은 바 없지만 조·중(북·중) 관계가 긴장된 것과 관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근로자 고용한 기업주 판로 우려

    기자가 “다른 동료 사업가들이 공상은행을 통해 북한의 사업파트너에게 돈을 보낼 수 없다고 해서 확인하려 한다. 나도 급히 돈을 송금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자 이 은행 직원은 “당분간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거래가 중지된 계좌는 특정 계좌가 아니라 은행 내 모든 북한인 계좌라고 밝혔다. 입금 대상 역시 광물을 판 대금인지 다른 제품을 판 돈인지를 막론하고 ‘모든 외화’를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 직원은 “지난해 12월 시작된 이러한 조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도발에 나서기도 전 중국 은행들이 이처럼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대북 전문가는 “지난해 12월 12일 모란봉악단이 베이징에서의 첫 해외공연을 앞두고 공연 당일 북한으로 돌아간 뒤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며 “중국 정부가 평양을 압박하고자 일부 조치를 시작했다 올해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 도발 사태가 이어지면서 제재 범위와 강도를 더욱 확대 강화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일부 동참했던 중국이 제재 범위를 넓힌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했다. 2월 23일 일본 ‘닛케이신문’도 공상은행 단둥분행이 북한인 명의의 계좌 개설도 거절하고 있다며 3차 핵실험 이후 제재가 확대된 조치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랴오닝성 선양(瀋陽)의 한 중국인 사업가는 최근 “북한 광산 몇 곳에 투자해 중국으로 광물을 들여오면서 그동안 은행을 통해 대금을 지불해왔는데, 최근 갑자기 거래하던 중국계 은행으로부터 북한인 계좌로는 입금이나 계좌이체를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북측 사업파트너가 “빨리 돈을 보내라”고 재촉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어렵다”는 은행 측 말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마련할 대북제재에 광물자원의 교역 금지가 포함될 수 있다는 징후도 포착됐다. 2월 23일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단둥의 한 중국인 무역업자의 말을 인용해 “3월 1일부터 북한과의 석탄 무역이 중단된다”며 “원인은 북한 위성 발사에 대한 금융제재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북·중 간 무역의 50%가량이 이미 중단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북한의 대(對)중 수출 가운데 석탄은 10억4579만 달러(약 1조3000억 원)로 북·중 무역에서 비중이 42.3%에 이른다.
    아직까진 제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지 않지만, 단둥 현장에서 확인한 또 다른 부분은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들의 고민이었다. 단둥 북쪽 외곽 전안(振安)구 전주(珍珠)로는 단둥 남부 항구도시 둥강(東港)의 다둥강구산(大東港孤山) 개발구와 함께 단둥의 대표적인 공장 밀집지역이다. 많은 북한 근로자가 일하는 곳이기도 하다.



    무너지는 교민사회

    2월 20일 오전 11시쯤 찾아간 ‘단둥신타이(欣泰)집단’ 공장 담 너머로는 북한 근로자 기숙사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압기를 만드는 이 공장에는 적어도 100명 이상의 북한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가전 및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인근 ‘단둥화르(華日)집단’에도 100명 이상의 북한 근로자가 파견돼 일하고 있다.
    중국 기업인은 그동안 저임금의 북한 노동자들 덕에 재미를 봤다. 특히 2010년 한국의 5·24 대북조치로 한국 기업이 북한 공장에 발주해서 받아가던 생산 물량이 없어지면서, 여기서 일하던 북한 근로자가 대거 중국 기업체로 몰려들었다. 한 중국인 사업가는 “중국 근로자에게는 월 500달러가량을 줘야 하지만 북한 근로자는 월 200달러도 안 받고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인들은 향후 국제사회가 북한의 외화 획득 차단에 나서면 북한 근로자들을 고용해 생산한 제품의 판로가 막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한 기업인은 “단둥에서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생산한 제품 상당수는 수출용이고 대상 지역은 한국,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가 많다”며 “이들 나라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노동자들의 임금 수입을 줄이기 위해 금수(禁輸) 조치를 내릴 수도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울상이기는 단둥에 진출한 한국 교민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12년째 소규모 사업을 하고 있는 한 교민은 “고객의 30%는 중국인, 30%는 한국 교민, 40%는 북한에서 오는 사람이었다”면서 “하지만 5·24 대북조치 이후 북한 고객이 거의 끊기고 이젠 한국 교민도 크게 줄어 중국의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야 할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곳 한국 기업인들은 5·24 대북조치 이후에도 북한에 뚫어놓은 거래처를 버릴 수 없어 중국인 명의를 빌려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것마저 어려워져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가 많아지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사업을 하며 ‘통일일꾼’이라 자부하던 것도 옛말이 됐다는 것. 또 다른 교민은 “한때 3000명이 넘던 단둥 지역 교민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그나마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도 많아 이제는 수백 명에 불과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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