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6

2016.02.24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지금, 이곳의 현실은 누가 노래할까

그래미 시상식과 ‘프로듀스 101’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02-23 10:34:36

  • 글자크기 설정 닫기
    2월 16일 열린 미국 그래미 시상식(그래미)의 최대 화제는 테일러 스위프트나 브루노 마스 같은 주요 부문 수상자가 아니었다. 힙합 부문 5개상을 휩쓴 켄드릭 라마였다. ‘뉴욕타임스’ ‘피치포크’ ‘롤링스톤’ ‘가디언’ 등 서구 주요 매체가 일제히 2015년 최고 앨범으로 뽑은 그의 세 번째 앨범 ‘To Pimp a Butterfly’가 ‘올해의 앨범’상을 받지 못한 게 첫째 이유다.
    각종 매체의 평점을 취합, 평균 점수를 내는 인터넷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이 앨범은 최근 10년간 최고 평점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 앨범에 담긴 ‘How Much A Dollar Cost’를 2015년 최고 노래로 꼽았다. 그래미에서도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노래를 포함해 총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팝 역사를 통틀어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다음이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그래미는 이 앨범 대신 스위프트의 ‘1989’에 올해의 앨범 트로피를 안겼다. 전 세계 음악팬들의 냉소가 쏟아졌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시상식 중간에 열린 그의 공연이었다. 죄수복에 수갑을 묶고 등장한 그는 창살 안에 갇힌 연주자들, 사슬에 묶인 백댄서들과 ‘The Blacker The Berry’를 불렀다. 흑인 엔터테이너를 착취하는 백인 중심의 시스템을 비난하는 노래다. 그 후 무대에 거대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마치 아프리카 원주민의 축제를 연상케 하는 군무가 펼쳐졌다. 이 불꽃 앞에서 라마는 (흑인 기준에서의) 공허한 아메리칸드림을 신랄하게 묘사하는 ‘Alright’를 쏟아냈다. 그래미 역사상 가장 날 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이 공연은, 힙합의 형식을 빌린 맬컴 엑스의 연설이자, 랩의 옷을 입은 저항시 낭송회와 다를 바 없었다. 음악 취향을 떠나,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저토록 강렬한 음악이 상업적 성과를 얻고 나아가 저렇게 보수적인 시상식 무대에서 세계를 향해 펼쳐지는 미국 음악시장의 건강함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튿날, 한국에서는 엠넷(Mnet) ‘프로듀스 101’(사진) 출연자들의 계약서 내용이 보도됐다. 아이돌 연습생 101명 가운데 11명을 뽑아 걸그룹으로 데뷔시키는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출연료는 한 푼도 지급되지 않는다. 출연자는 엠넷에 대해 ‘편집 등 기타 이유를 들어 명예훼손 등 어떠한 사유로도 본인 및 제3자가 ‘갑’에게 이의나 민형사상 법적 청구를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도 있다. 쉽게 말해 ‘노예계약’이다. 라마가 대변하는, 백인이 지배하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서의 흑인음악가와 다르지 않다. 아니, 사실 더하다. 미국에선 어쨌든 음악적 자유와 막대한 성공이 보장되니까.


    한국에서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소년이나 소녀가 신분 상승을 하려면 2개 길밖에 없다. 스포츠 스타가 되거나 아이돌이 되거나. 안정이 사라지고, 계급은 고착화했으며,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회의 마지막 탈출구다. 여전히 남성 중심인 사회에선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세상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돌이 되고자 몰린다. 101명이라는 엄청난 출연진을 꾸릴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기인한다.
    그렇게 데뷔한다 치자. 매년 50팀 안팎의 걸그룹이 데뷔하는 이 붉디붉은 바다에서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얼마 전 걸그룹 AOA가 데뷔 3년 만에 첫 정산을 받았다. 이례적으로 빠른 경우라고 한다. 몇 년을 활동해도 통장에 땡전 한 푼 안 찍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방증이다. ‘열정페이’도 이런 열정페이가 없다.
    그 와중에 쏟아지는 스폰서 제의, 수많은 ‘갑질’을 견뎌내면서 바늘구멍보다 좁은 터널의 끝을 향해 몸을 드러내야 하고 만천하에 체중도 공개해야 한다. 아이돌 시스템이라는 컨베이어벨트 안에서 구르고 구른다.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산업, 그리고 남성의 성적 대상화 안에서 소모된다. 누가 이런 상황을 노래할 것인가. 아니, 그 노래를 누가 세상의 스포트라이트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