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6

2016.02.24

책 읽기 만보

충동과 진정성이란 질병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02-22 17: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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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폰의 디지털 보조장치 ‘시리’는 ‘적응형 지능’을 갖추고 문자메시지 전송부터 호텔 검색까지 알아서 척척 수행한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아니 누워서) 명령만 내리면 된다! 기계에 대고 말을 한다는 어색함도 잠시, 똘똘한 기계가 내 말을 알아듣고 그대로 수행했을 때 묘한 쾌감이 밀려온다. 애플사는 ‘시리’가 더 짧은 시간 내 더 많이 일하도록 효율성을 높여주는 ‘생산성 애플리케이션(앱)’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근시사회’의 저자 폴 로버츠는 이렇게 꼬집는다. “애플뿐 아니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개인용 첨단 장비를 제공하는 업체 대부분이 실제로 파는 것은 일종의 생산성이다. 즉 최소한의 노력으로 순간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능력 말이다.”
    이것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효용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절감하며 생존 능력을 높이는 진짜 ‘생산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제품을 사는 데 충동적으로 돈을 쓴다. 마치 몸은 비루한 현실 세계에 있지만 영혼은 슈퍼 영웅이 돼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판에 있는 것과 같다. ‘근시사회’는 순간적 만족의 쳇바퀴를 굴리는 현대인의 삶을 파헤친 논픽션이다. 원제는 ‘충동사회(Impulse Society)’.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인류의 미래’라는 한국어판 부제가 준엄한 경고판처럼 달려 있다. 소비를 절제하지 못해 카드 돌려 막기로 연명하는 개인,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대신 구조조정부터 하는 기업, 선거철만 되면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이 모두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폴 로버츠가 인류에게 번지고 있는 ‘충동’이란 전염병을 다뤘다면, 캐나다 철학자 앤드류 포터가 발견한 질병은 ‘진정성(authenticity)’이다. 진짜 유기농 빵집, 샤넬 ‘진퉁’, 진정성 없는 사회, 진정성 없는 음악, 진정한 나, 진정한 삶 등과 같이 때로는 ‘진짜’로, 때로는 ‘진심’으로, 때로는 ‘본래성’으로 쓰이는 ‘진정성’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포터에 따르면 가장 널리 받아들이는 견해가 “싸구려 대량생산 소비제품으로는 진정성 있는 개인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 없으며, 지구를 아끼고 최소한의 발자취만 남기는 것이 진정한 삶의 본질적 부분이라는 생각”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자기 삶을 경쟁적으로 노출하면서 진정성을 과시한다. ‘나는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에코백을 들며, 유기농 화장품을 사용하거든요. 그래서 남들과 다르죠’라는 메시지를 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고지순한 가치로 여기는 진정성조차 이미 돈 있고 안목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일종의 상품이 됐다고 포터는 지적한다. 한 가지 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본 뒤 복고 향수병에 걸린 사람도 정신 차려라. 대책 없이 순진한 낭만주의도 ‘진정성’이라는 질병의 주된 증세 가운데 하나다.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조너선 실버타운 지음/ 노승영 옮김/ 서해문집/ 256쪽/ 1만3500원
    불노불사는 인류의 꿈인데 왜 진화는 늙음과 죽음을 허용했을까. 자연선택의 궁극적 관심사는 ‘번식의 성공’이기에 노화와 죽음이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진화적’이라는 게 진화생물학자인 저자의 시각이다. 이 책은 ‘21세기 불로초’라는 과학의 이름을 빌려 노화의 비밀에 접근했다. 유전자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력은 25~35%에 불과하며, 차라리 소식(小食) 같은 생활습관이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이 흥미롭다.




    글쓰는 여자의 공간
    타니아 슐리 지음/ 남기철 옮김/ 이봄/ 288쪽/ 1만4500원
    “서재는 울프의 낙원이었다. 글을 쓰고 혼자 독백하는 시간만큼은 온갖 근심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글쓰기가 그녀의 삶을 지탱해준 것이다.” 영국 남부 해안에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집필실 ‘몽크스하우스’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는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도러시 파커, 프랑수아즈 사강, 애거사 크리스티 등 여성 작가 35명이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글을 썼는지 소개했다. 다양한 사진 자료 자체가 읽을거리다.






    한국의 제3섹터
    박태규 외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332쪽/ 1만6000원
    정부(제1섹터), 시장(제2섹터) 사이에서 정부와 기업이 담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대안적 영역을 제3섹터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제3섹터는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으로 분화해가며 점점 더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다. 박태규, 정구현, 김인춘, 황창순 등 저자 4명이 한국 비영리조직의 역사적 특징부터 한국 제3섹터의 내일을 위한 5가지 과제까지 제시했다.




    축구자본주의
    스테판 지만스키 지음/ 이창섭 옮김/ 처음북스/
    408쪽/ 1만6000원
    선수 평균연봉의 4배를 쓰면 우승하고, 2.5배를 쓰면 2위, 1.5배를 쓰면 4위에 그친다. 연봉 총액이 프리미어리그 순위를 결정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프로축구에서는 자본이 곧 실력이다. 경제학자인 저자는 ‘소수의 지배와 다수의 재정적 핍박’이라는 축구판의 현실을 선수, 경기장, 수입, 빚, 구단 소유권, 성공 전략, 지급 불능, 미국, 규제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지음/ 박채연 옮김/ 부키/ 336쪽/ 1만5000원
    젊은 시절 무장투쟁을 벌이다 체포돼 14년간 수감생활을 했고 2010년 선거를 통해 우루과이 제40대 대통령이 된 호세 무히카는 재임 시 농가주택에 살면서 30년 된 차를 직접 몰고 출퇴근하는 등 숱한 화제를 뿌리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국민소득을 늘리고 빈곤율과 실업률을 크게 감소시키는 등 큰 업적을 남겼다. 퇴임 당시 지지율 65%였던 한 지도자의 ‘조용한 혁명’을 소개했다.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팀 매킨토시-스미스 지음/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544쪽/ 2만2000원
    700년 전 모로코인 이븐 바투타는 중국 항저우까지 3개 대륙에 걸쳐 12만km를 여행하고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이 여행기를 들고 그의 여정을 따라간 영국인 성공회 신자가 있다. ‘이븐 바투타와 함께한 이슬람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여행기 첫 권으로, 모로코 최북단 탕헤르에서 콘스탄티노플(터키 이스탄불)까지 이르는 여정을 담았다.




    뜨는 동네의 딜레마 젠트리피케이션
    DW 깁슨 지음/ 김하현 옮김/ 눌와/ 408쪽/ 1만8000원
    20여 년 전만 해도 저소득층 유색인종과 이민자의 주거지였던 미국 맨해튼 일부 지역과 브루클린은 이제 성공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쿨한’ 동네로 바뀌었고,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올라 원주민은 더는 살 수 없는 동네가 됐다. 동네 토박이와 개발업자, 세입자들이 말하는 뉴욕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하이라인 프로젝트(낡은 고가철도의 공원화)’조차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국운 풍수
    김두규 지음/ 해냄/ 376쪽/ 1만9800원
    풍수의 정의는 ‘대지 위에 터를 잡고(卜地), 건물을 짓고(營之), 그곳에 거주하기(居之)까지 일련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마지막으로 그렇게 길흉을 점치는 행위(占之)’다. 저자는 각국 국토관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달라지고 대지관에 따라 개인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국운 풍수’를 썼다. ‘21세기 실천 풍수가’로 불리는 저자가 풍수철학을 바탕으로 운명을 바꾸려 한 리더들의 노력을 들려준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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