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5

2016.02.17

책 읽기 만보

1945년과 현대의 탄생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02-16 17: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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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5월 8일 오후 3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공식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독일과의 전쟁은 끝났습니다. (중략) 거의 모든 세계가 악당에 대항해 하나로 뭉쳤고, 이제 이 악당은 우리 앞에 무릎 꿇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샤를 드골 장군도 프랑스인들에게 전승 소식을 알렸다. 5월 8일은 유럽의 공식 종전일, 즉 유럽의 전승기념일이다. 그러나 동부전선의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고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처칠에게 전승일을 하루 미루자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련군은 5월 8일 자정 직전 베를린에서 독일군의 항복을 받아냈고 5월 9일을 전승기념일로 삼았다.
    한국은 일왕이 일본 국민에게 항복 사실을 공표한 8월 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한다. 연합군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영국도 이날을 대일 전승기념일로 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한 9월 2일을, 중국은 일본의 항복 문서를 접수한 9월 3일을 전승절로 기린다. 패전국 일본은 8월 15일을 ‘전몰자를 추도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해방의 환호 뒤에는 응징과 보복, 기아가 이어졌다. 전쟁은 끝났지만 살육은 계속됐다. 1944년 프랑스에서 진행된 ‘광풍의 숙청’ 기간 6000여 명이 독일 협력자나 반역자란 이유로 살해됐다. 그   2배가 넘는 여성이 발가벗겨지거나 머리가 깎이고 온몸에 나치 십자가 모양이 그려진 채 거리를 걸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2000여 명이 살해됐다.
    전쟁 전 폴란드에는 유대인 300만 명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지만 나치 점령기에 대부분 살해됐다. 그중 10%만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살해 위협이었다. 유대인의 집과 재산을 차지한 이웃들은 돌려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편 전쟁터에서 귀환한 독일과 일본 병사들은 패전의 굴욕과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자신들에게 돌려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패자는 살아 돌아왔다는 것 자체로 경멸의 대상이 됐다.
    네덜란드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사상가인 이안 부루마가 쓴 논픽션 다큐멘터리 ‘0년(Year Zero)’은 1945년을 현대의 시작을 알리는 원년으로 삼고 ‘1945년 여파’가 세계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시한 역사서이자 논픽션 다큐멘터리다. 그는 사병과 보통 사람들의 증언, 익명의 전쟁 체험기, 회고록 등 수많은 실증 자료를 통해 그 시기를 복원해낸다. 또한 좌·우파, 승전국·패전국, 제국주의·식민지 등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냉정한 시각과 분석이 이 책의 매력이다. 전후 승전국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좌우 진영 논리에 포박돼 냉전의 희생양이 된 한반도의 비극에 대해서는 이 책 3부 ‘네버 어게인’에서 ‘사대의 수치 : 한반도의 비극 분단’에 자세히 기술해놓았다.



    동네 걷기 동네 계획

    박소현·최이명·서한림 지음/공간서가/224쪽/1만5000원
    서울 북촌과 상계동 주부들은 하루 평균 2.69km (39분)를 걷지만 미국 시애틀 주부들은 400m(6분)를 걷는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걸어서 좋고, 걷기에 좋은 동네는 또 어디일까. 박소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팀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동원해 30, 40대 주부들이 장을 보고, 자녀를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데려다주며, 공원 같은 오픈스페이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동선을 추적해 ‘동네 걷기’ 종합 리포트를 냈다.

    무용지용 병맛심리상담소


    Cherng(라이모) 지음/동아일보사/204쪽/1만2000원
    대만 웹툰작가 양청린이 그린 ‘라이모’는 ‘말레이맥’을 의인화한 것으로, 단순한 선과 모노톤 캐릭터에 유머러스한 멘트를 붙여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은 쓸모없어 보이지만 크게 쓰임을 가리키는 말이고, ‘병맛’은 맥락 없고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 ‘볼일 볼 때 휴지가 떨어졌다면?’과 같이 곤란한 상황에 대한 ‘병맛처방전’이 실려 있다. ‘이런 책을 왜 읽어’라면서도 끝까지 읽게 되는 책.






    명상록을 읽는 시간

    유인창 지음/바다출판사/252쪽/1만5000원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는가라며 불평하지 마라.” 철학자였던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그는 목수의 작업장에 톱밥이 널려 있듯, 삶에서 생기는 고통은 당연하다고 타이른다. ‘문화일보’ 편집기자인 저자가 ‘명상록’의 내용을 순응, 선택, 평온, 관계, 변화를 키워드로 해설했다. 필사노트가 포함돼 있어 자신만의 명상록을 쓸 수 있다.





    예일대 지성사 강의

    프랭크 터너 지음/리처드 로프트하우스 엮음/서상복 옮김/책세상/512쪽/2만2000원
    2010년 작고한 프랭크 터너는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이자 지성사와 문화사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는 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마지막 지성사 강의를 엮은 이 책은 철학, 문학, 신학, 과학, 정치, 경제, 음악, 예술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당대 지성을 이끌어간 주요 사상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독자 스스로 다양한 사상을 폭넓게 이해하면서 해석할 기회를 제공한다.



    명랑 시인의 귀촌 특강

    남이영 지음/세종서적/295쪽/1만4000원
    시골생활을 꿈꾸면서도 선뜻 도시생활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저자가 직접 체험한 귀촌 노하우를 전한다. 시골집을 구하기까지 9개월간의 고생, 정착한 후에도 속 끓이는 집 수리, 이해하기 어려운 시골 정서까지 결코 쉽지 않은 귀촌 과정이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도시의 ‘소비하는 삶’과 시골의 ‘나누는 삶’의 차이를 이해하고 시골생활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귀촌 전도사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르 지음/정장진 옮김/ 열린책들/592쪽/1만4800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오베라는 남자’, 그리고 79세 메르타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5인조 노인 강도단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북유럽 스웨덴을 옆 동네인 양 친근하게 만들어준다. 노인요양소의 형편없는 대우에 분개한 메르타 할머니가 감옥에 가는 게 낫겠다며 친구들과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을 훔치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사건들.

    사이버 스톰


    매튜 매서 지음/공보경 옮김/황금가지/540쪽/1만5000원
    인터넷과 전화가 끊기고 전기와 수도 공급마저 중단된 도시. 바깥에는 눈폭풍이 몰아친다. 모든 기능이 마비된 미국 뉴욕에서 60여 일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작가는 광범위한 인터넷 활용도에 비해 허술한 보안체계가 불러올 사이버테러의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이 소설을 썼다. 제목은 미국이 2006년부터 실시해온 사이버테러 대응 훈련 명칭에서 따왔다.


    뉴턴의 시계


    에드워드 돌닉 지음/노태복 옮김/책과함께/456쪽/2만2000원
    데카르트,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의 공통점은 천재였으며 우주가 완전무결한 수학적 진리에 따라 설계됐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천재의 시대’로 불리던 17세기 유럽, 특히 영국 런던은 전염병과 화재에 시달리며 평균 수명이 30세에 불과한 재앙의 도시였다. 질병이 신의 처벌로 간주되고 천문학과 점성술이 뒤엉켜 있던 그 시대에 우주가 정확한 수학 법칙을 따른다고 확신하며 신의 비밀에 다가간 이들에 의해 과학혁명이 시작됐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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