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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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혼자든 둘이든 여럿이든 즐겁게

가족 관객용 영화부터 지적 쾌감 주는 명작까지 스크린 노크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6-02-01 17: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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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이다. 민족 명절이자 한국인에겐 왠지 이제 진짜 ‘새해’라는 느낌을 주는 때다. 어김없는 영화 성수기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설날 전 주말이 2016년 영화계의 첫 성수기가 될 법하다. 화제작 ‘국제시장’ 이후 꽤나 보수화된 관객의 영화 관람 태도도 이번 설 연휴 영화계에 영향을 미칠 듯하다. 온 가족이 함께 봐도 무방한 영화, 어르신들이 추억을 나누며 아름다운 시절을 돌아보기 좋은 회고 영화의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극장가 다른 한편에는 사회의 부도덕함 혹은 정의의 부재를 환상적으로 일갈하는 현실 지향적 판타지의 몫도 있을 듯하다. ‘베테랑’이나 ‘내부자들’ 같은 유형이다. 이에 따라 이번 설 명절에는 젊은 관객의 선택과 중·장년 및 가족단위 관객의 선택이 나뉠 것으로 보인다.



    온 가족이 함께 보는 휴머니즘&오락

    설 연휴 극장가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작품은 상처로 얼룩졌던 6·25전쟁 시기를 휴머니즘적 시선으로 재해석한 ‘오빠생각’(이한 감독)이다. 과거를 돌이켜본다는 점과 동요에 바탕을 둔 보편 감정에 호소한다는 점 그리고 고아, 즉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을 감동의 핵심 요소로 삼았다는 점 등에서 이 영화는 여러모로 최근 한국 영화 주류의 경향에 잘 들어맞는다. ‘국제시장’ ‘히말라야’의 흐름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오빠생각’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팍팍한 현실에 온기와 꿈을 심어줬던 전쟁고아 합창단의 실화를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 ‘변호인’과 tvN 드라마 ‘미생’ 등을 통해 연약하지만 공감을 자아내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임시완이 이번엔 상처를 가진 주인공 ‘한 소위’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고향의 봄’ ‘오빠생각’ 같은 동요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부르는 아역들 연기도 명절 연휴 가족 영화답다. 어렵고, 못살고, 힘들었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전형적인 휴머니즘 영화다.
    실종된 딸 유주를 찾는 데 인생을 모두 쏟아붓는 아버지 앞에 나타난 로봇 이야기를 다룬 영화 ‘로봇, 소리’(이호재 감독)도 부성애와 휴머니즘을 통해 관객에게 눈물과 감동을 선사하려는 작품이다. 아무런 증거도, 단서도 없이 사라진 딸을 찾고자 10년을 헤맨 주인공 앞에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이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소리를 작은 단서 삼아 세상과 맞서 싸우는 배우 이성민의 절절한 부성애 연기가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된 애니메이션 ‘쿵푸팬더3’(여인영, 알레산드로 카를로니 감독)는 아이와 함께 가서 어른이 더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와 일가친척을 찾은 주인공 포가 우주의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진정한 드래건 용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 다른 애니메이션 ‘앨빈과 슈퍼밴드 : 악동 어드벤처’(월트 베커 감독)도 명절을 맞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작품. 귀여운 설치류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가 웃음과 힐링을 전달해준다. 이 밖에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인기를 모은 ‘최강전사 미니특공대 : 영웅의 탄생’(이영준 감독) 역시 아이들이 집중해 볼 수 있는, 그래서 어른도 잠시 영화관에서 쉴 수 있는 가족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뜻 맞는 사람끼리 볼만한 장르영화

    설 연휴 가장 기대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는 황정민과 강동원이 출연하는 ‘검사외전’(이일형 감독)이다. 최근 ‘국제시장’부터 ‘베테랑’ ‘히말라야’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흥행에 성공한 황정민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 보수적인 관객에겐 믿음을 줄 만하고 ‘검은 사제들’로 새삼 연기력을 인정받은 강동원이 꽃미남 사기꾼으로 출연한다는 점은 이미 여심을 흔들고 있다. 이번엔 한판 구성지게 놀아보는 복수극이다.
    검찰, 정치깡패, 선거, 정치 같은 조금은 뻔한 설정이 바탕에 놓여 있지만, 영화는 발걸음이 가볍고 날렵한 잽이 많은 리드미컬한 호흡을 선사한다. 지나치게 남성적이어서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던 ‘내부자들’과 같은 문제를 다루지만 어떤 점에서는 훨씬 현실적이고 개연성 있다. 특히 얼굴만 믿고 사는 사기꾼으로 열연한 배우 강동원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손예진이 짙은 스모키 화장을 하고 출연한 영화 ‘나쁜놈은 죽는다’(손호 감독)도 눈길을 끈다. 중국배우 진백림까지 출연하는 기획영화로 배우들이 진지하게 코믹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다. 명절 코미디영화의 얼굴 격인 신현준도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한다.
    기차 여행 중 이뤄지는 인연을 섹시하게 그린 영화 ‘그날의 분위기’(조규장 감독)는 설 연휴 기간 개봉작 중 유일한 로맨스로 관객을 노린다. 배우 유연석과 문채원의 풋풋한 ‘케미’가 가족 스토리와 감동이 넘쳐나는 한국 영화계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지적 충전을 위한 스크린 탐독

    올 설 연휴는 예술성 짙은 미국 영화를 접할 기회이기도 하다. 2016년 제73회 골든글로브를 수상했거나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된 작품들이 때맞춰 개봉했기 때문이다. 슈퍼 히어로가 대거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대신 문학적이며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완미한 영화적 스타일을 보여주며, 배우의 초인적 연기력까지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다수 개봉한다. 문화적 휴식이자 지적 충전이 될 만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오스카상을 탈 수 있을까 두고 보게 만드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이 영화에서 디캐프리오는 300km가 넘는 설원을 맨몸으로 횡단한 사내의 실화를 연기하며 거의 원시 인류와 같은 생존 투쟁을 보여준다.
    고인이 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새롭게 해석한 영화 ‘스티브 잡스’(대니 보일 감독),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원흉이 된 미국발(發) 모기지론 사태를 새로운 관점에서 본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빅쇼트’(애덤 매케이 감독)도 흥미롭다. 빅쇼트는 경제용어로, 가치가 떨어질 것이 뻔한 상품을 거꾸로 매득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경제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대량으로 방출하면서, 한편으론 경제학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던 대만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자객 섭은낭’은 예술이 된 무협영화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서기, 장첸, 쓰마부키 사토시 등 아시아 대표 배우들이 출연한다. 일생일대 선택을 통해 달라지는 삶을 그린 무협영화 특유의 비장미가 탁월하다.
    토드 헤인스 감독의 ‘캐롤’ 역시 놓치기 아깝다. 동성애가 죄처럼 여겨지던 시기 같은 성의 사람에게 이끌린, 완전히 다른 사회적 계급에 속한 두 여인의 이야기다.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자전적 소설로 잘 알려진 이 작품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의 연기를 통해 새로운 명품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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