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3

2016.01.27

한창호의 시네+아트

예술가에게 ‘청춘’을 묻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유스’

  • 한창호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6-01-26 14: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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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드(마이클 케인 분)는 유명 작곡가이자 지휘자다. 조국인 영국을 거쳐 미국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오랜 기간 지휘자로 지냈다. 이제 나이도 여든이 다 됐고,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 영국 왕실의 적극적인 공연 요청이 있지만 더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의 오랜 친구인 믹(하비 카이틀 분)은 영화감독이다. 믹은 프레드와 달리 지금도 차기작을 완성하려 애쓰고 있다. 시나리오는 거의 다 됐고, 왕년의 스타 브렌다(제인 폰다 분)만 출연하면 투자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두 남자는 여름을 맞아 스위스 다보스에서 함께 휴가를 보낸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유스’는 죽음을 앞둔 두 노장 예술가의 이 휴가를 다룬다. 소렌티노의 영화는 스토리 중심의 일반적인 영화와 매우 다르다. 소위 ‘에세이 필름’인데, 마치 필름으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과 1/2’(1963)을 떠올리면 되겠다. 이야기보다 주관적인 생각이 더 강조돼 있다. 이런 형식의 영화로 대중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 할리우드 스타 숀 펜을 캐스팅한 소렌티노의 전작 ‘아버지를 위한 노래’(2011)도 큰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특히 한국에서 그랬다). 그런데 여전히 자기 스타일을 고수한 ‘그레이트 뷰티’(2013)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소렌티노는 자기만의 형식을 가진 ‘아티스트’로 수용됐다. 그는 수상을 계기로 자기 스타일을 더 밀어붙일 발판을 마련했고, 영화 ‘유스’는 그 결과물이다.


    ‘유스’의 주인공은 매일 아침 ‘소변 잘 봤나’를 걱정하는 두 노인이다. 그런데 제목은 청춘을 의미하는 ‘유스’다. 영화 배경이 세계적인 고급 휴양지 다보스(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곳)라 젊은 사람을 보기도 쉽지 않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대부분 부자 노인이다. 화면 중앙에 자주 등장하는 노인들의 육체는 쇠잔하고 병들었으며 지쳐 보인다. 프레드와 믹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다. 마치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서처럼 이곳 사람들은 죽음의 운명 앞에 순응한 존재처럼 보인다(‘마의 산’의 배경도 다보스다). 화면에 멜랑콜리가 넘치는 이유다.
    ‘청춘’의 의미는 역설에 있다. 육체적 노화와 정신적 청춘은 별 관계없다는 강조법이다. ‘유스’에 따르면, ‘두려움에의 도전’이 가장 찬양받는 청춘의 미덕이다. 이것은 극 중 할리우드 스타 역을 맡은 폴 다노의 대사를 통해 강조됐다. 프레드가 은퇴를 결심한 이유도 세상의 기대에 더는 부응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 때문일 테다. 프레드는 새장 속에 안전하게 보호된 새를 자주 바라본다. 그 새는 안전할지 몰라도, 날지 않는다면 이미 새가 아닐 것이다.
    ‘유스’의 마지막 장면은 프레드가 그런 두려움을 뚫고 관객 앞에 다시 서는 순간이다. 프레드의 대표곡 ‘심플 송(Simple Song)’이 소프라노 조수미의 목소리에 의해 새처럼 멀리 날아갈 때 극장 안 모든 사람은 ‘청춘’에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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