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3

2016.01.27

사회

‘거지 창업’ 울리는 ‘먹튀’ 상혼

초기비용 2000만 원 이하, 무점포 소자본 창업 노리는 악덕 상술 기승…가맹사업법 적용 못 받아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1-25 16: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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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비용 800만 원만 투자하면 꾸준히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달받은 제품은 광고에 나온 상품과 달랐고 유통기한도 허위로 적혀 있었어요. 수익은커녕 초기비용이라도 회수하고 싶었지만 계약상 반환이 전혀 안 돼 몽땅 날렸습니다.”
    전북 군산에 사는 최모(33) 씨는 2015년 4월 A식품업체와 계약했다. 편의점이나 PC방에 즉석식품을 납품하고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였다. A식품업체 본사 관계자는 “TV에서 방영 중인 병영 체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제품”이라며 군대용 식량을 소개했다. 따로 점포가 필요 없고 편의점 50곳을 알선해주면서 월 200만~700만 원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귀띔했다. 최씨는 업체 말만 믿고 제품 60만 원어치를 포함해 총 800만 원을 투자했다.



    민사소송 말고는 해결 방법 없어

    최씨는 “A식품업체는 약속한 것과 다른 제품을 내놨다”고 주장했다. 방송에 나온 제품이 아닌 유사제품이었고 겉포장엔 유통기한이 2016년으로 표기돼 있었지만 속에 든 식재료의 유통기한은 2015년까지였다는 것. 편의점주들은 ‘불량식품’이라며 최씨에게 반품을 요구했고 최씨는 A식품업체에 사정을 얘기했지만 업체 측은 “반품은 불가능하며, 초기비용은 계약상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최씨는 “지금도 A식품업체가 창업주 모집 광고를 하는 것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나 같은 피해자가 더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점포 소자본 창업’ 악덕 상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무점포 소자본 창업은 통상적으로 점포 없이 초기비용 2000만 원 이하로 시작하거나 ‘숍인숍’(가게 안에서 다른 업종의 가게가 영업하는 것) 창업을 말한다. 직접 점포를 운영하지 않고 특정 업체의 상품 판매 영업권을 위탁받아 판매 실적에 따라 수익을 얻는 구조로, 일반 가맹사업에 비해 가맹금 등 초기비용이 적어 은퇴자나 청년들이 선호한다. 생계형 창업을 꾸린다는 뜻에서 ‘거지 창업’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무점포 소자본 창업은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먼저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본사로부터 물건을 받아 상권에 납품하는 방식은 가맹사업과 비슷하지만, 계약상 가맹사업법을 적용하지 않거나 문서 없이 구두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관계자는 “무점포 소자본 창업 피해에 대한 법적 조치는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합법적인 가맹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나 가맹사업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따라서 업주가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고 연락을 끊거나 계약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민사소송을 하는 것 외에는 대처할 방법이 거의 없다. 또한 무점포 소자본 창업자들은 변호사 수임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소송을 하는 일도 드물다. 3년 전 무점포 소자본 창업 사기로 계약금 1700만 원을 잃은 서모(45·여) 씨는 “피해자들과 연합해 공정위와 시민단체에 신고하는 등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지막으로 법을 믿어보려 한다”며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임대비 아끼려다…숍인숍의 눈물

    ‘가게 안 가게’인 숍인숍 창업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할 위험성이 크다. 가장 큰 문제는 임대 조건이나 수익 취득에 대한 계약이 명확히 성립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숍인숍을 운영하려면 건물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 전대(재임대)계약서를 작성하고 숍인숍 창업자가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건물주가 전대계약에 동의하지 않아 사업자등록증이나 계약서 없이 운영하고, 점포 운영자가 숍인숍 창업자에게 “임대비용을 싸게 해줄 테니 계약서 없이 일하자”고 위험한 제안을 하기도 한다.
    미용실에서 6개월 동안 네일숍을 운영한 이모(33·여) 씨는 수익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영업을 그만둬야 했다.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일숍 매출 대금은 고스란히 미용실 매출로 들어갔다. 미용실에서는 네일숍 매출의 70%를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절반만 돌려줬다. 설상가상으로 건물 소유주가 월세를 대폭 올리는 바람에 미용실 측이 임대 재계약을 하지 않고 점포를 이전해버렸다. 이씨는 하루아침에 영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소액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무점포 소자본 창업 피해자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3~4년 전부터 무점포 창업 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사업성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과장, 허위 광고로 창업비를 챙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피해 금액이 1000만 원 내외 소액이며 형사적 처벌이 어려운 점을 이용해 계약 내용을 위반하고 잠적하거나, 업체명을 바꿔 유사한 업종을 계속하는 행태도 벌어진다”고 말했다.
    가맹사업법 전문가는 “무점포 소자본 창업에 쉽게 뛰어들지 마라”고 조언한다. 배선경 법무법인 호율 변호사는 “무점포 창업의 경우 명확한 증거 서류 없이 수익률을 부풀리거나, 창업 초기비용이 싸다는 이유로 서민의 창업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만약 계약금을 현금으로 전달한 경우 상대방이 ‘안 받았다’고 발뺌해도 현금 지급 증거를 못 찾아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현실성 없는 수익률을 믿지 마라”며 “무점포 창업을 하기 전 계약 내용을 냉정하게 따져보고, 기존에 영업해본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 일단 피해를 입으면 법적으로 구제받기 어렵기 때문에 낭패 볼 일은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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