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3

2016.01.27

사회

육아예능 “보면서도 속상해요”

‘집’은 기획된 ‘상품전시장’…광고주를 위한, 광고주에 의한, 광고주의 방송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유설희 인턴기자·고려대 철학과 졸업

    입력2016-01-25 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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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들이 돈 쓸 준비를 하고 보는 방송.”
    요즘 지상파 방송의 육아예능프로그램(육아예능)을 두고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가 한 말이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오! 마이 베이비’ 같은 육아예능은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고 또 자녀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할 준비가 된 엄마들에게 인기가 높다. ‘맘스홀릭베이비’ 등 육아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는 ‘삼둥이가 쓰는 유아용 카시트 어디 건가요’ ‘오마베 주안이 영어 공부 어떻게 하는 거죠’ 같은 게시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들 프로그램이 일반 시청자들에게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상류층의 소비 트렌드를 따라갈 여력이 없는 서민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아이 아빠인 김모(32) 씨는 “육아예능에 나오는 연예인의 삶은 상위 1%”라면서 “초고가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관광지 등 매일 좋은 곳만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볼 때마다 빈부격차를 확연히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아이들 보기 미안해서”

    실제로 육아예능에 나오는 연예인의 집은 대부분 165㎡(약 50평)가 훌쩍 넘는 서울권 아파트다. 인테리어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화려하다. 주부 박모(31) 씨는 “나는 아이 한 명 키우는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아이 두세 명을 키우는 연예인들의 집은 너무 깔끔하다”면서 “분명히 집안일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있을 텐데 TV에는 안 나오니 주부들에게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고 토로했다.
    김씨의 아내 이모(29) 씨는 육아예능을 보면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고 했다. 방송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고가 브랜드의 옷을 입히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 이씨는 “그럴 여력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박선웅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육아예능에 대한 중산층과 서민들의 반응이 갈리는 현상은 당연하다”고 분석한다. “자신도 비교대상처럼 될 수 있다고 믿을 경우 상향비교(자신을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는 것)는 영감을 주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지만, 비교대상처럼 될 수 없다고 믿을 경우 자신의 부족한 처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만들어낸다”는 것.
    더 심각한 문제는 대다수 시청자에게 박탈감을 주는 그들의 삶이 실제 일상이 아니라 PPL(Product Placement)이라 부르는 간접광고로 연출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A육아예능의 경우 디지털전화기, 기저귀, 홍삼제품 같은 상품들이 간접광고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간접광고는 육아예능 전체에서 보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간접광고는 공식적인 방식과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나뉜다. 공식 PPL은 방송사와 기업, 또는 방송사와 광고대행사가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는 방식을 가리킨다. 비공식 PPL은 쉽게 말해 ‘연예인 협찬’ 개념이다. 연예인이 간접광고비 대신 상품을 현물로 제공받고 그것을 육아예능에서 쓰는 방식이다. 코디네이터가 연예인과 기업 사이에 다리를 놓고 화장품, 옷, 가방 등을 협찬받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B광고대행사 이모 대표는 “관찰예능프로그램에서 상품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연예인에게 상품 협찬을 중계해주는 대행사도 존재한다”고 귀띔했다.  
    일부 연예인은 자신이 광고모델을 하고 있는 상품을 육아예능에서 사용하는 조건으로 협찬받기도 한다. B광고대행사 대표에 따르면, 육아예능에 출연하는 C연예인은 특정 브랜드 광고를 찍고 1000만 원 상당의 제품을 제공받았다는 것. 이 제품을 육아예능에서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조건이었다. D연예인은 자신이 하는 사업 마케팅을 위해 비공식 PPL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친척이 운영하는 업체의 제품을 방송에서 쓰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비공식 PPL은 말 그대로 비공식적이다 보니 제작진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렇게 육아예능에 등장하는 물건 상당수가 비공식적으로 협찬받은 것임에도 시청자들은 연예인이 자발적으로 구매한 것이라 믿고 그 물건들을 따라 산다. 김헌식 평론가는 이를 두고 “팬심을 이용한 마케팅”이라고 비판했다.



    해외여행에 사교육까지 철저히 기획된 이벤트

    육아예능을 보면 유명인 손님이 출연자의 집을 방문하거나 해외여행을 하는 등 이벤트가 많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연출진이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광고주가 이벤트를 기획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장난감을 간접광고하려는 광고주가 장난감이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도록 유명인이 출연진의 집을 방문하는 이벤트를 기획해 제작진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출연진의 집을 방문하는 이벤트 자체가 기획된 것이다 보니 육아예능 출연자와 실제로 친하지도 않은 유명인이 친한 사이처럼 나오는 경우도 생긴다. 광고주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유명인을 섭외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육아예능에서 해외관광지, 키즈카페, 놀이공원 등을 방문하는 이벤트도 제작진이 아닌 광고주 또는 광고대행사가 기획하는 경우도 있다. 놀이공원 측이 방송사와 간접광고 계약을 맺고 놀이공원을 방문하는 이벤트를 기획해 제작진에게 공급하는 식이다. 광고대행사 비트인비젼의 이성준 대표는 “육아예능에서 연예인이 해외여행을 가는 이벤트 중 다수가 PPL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육아예능에 등장하는 여러 교육 관련 이벤트도 알고 보면 PPL일 공산이 크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최현주 연구원이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지난해 48회분을 분석한 결과 35회(전체 73%)가 유아전용 영어학원 등 사교육 프로그램이 나오는 방송이었다.
    물론 연예인이 자발적으로 산 물건인데 PPL로 오해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 육아예능에 출연 중인 연예인 E씨의 매니저는 “대중이 E씨 자녀들의 옷이 전부 협찬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아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 E씨가 직접 아이 옷을 사서 입힌다”고 항변했다.
    육아예능에 나오는 연예인의 삶이 실제 삶이 아니라 상품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것임에도 여전히 대중은 육아예능에 나오는 상품들을 구매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라모 씨는 “육아예능에서 명품 제품을 본 뒤 구매했다”고 말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박모(31) 씨는 “연예인이 쓰는 물건이라면 일단 믿고 구매하게 된다”고 말한다.
    김헌식 평론가는 “육아예능의 본래 취지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서 “광고주에 의해 철저히 기획되는 육아예능은 주객이 전도된 것일 뿐 아니라 시청자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 평론가는 “육아예능이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간접광고가 나올 때마다 반드시 협찬 고지를 하는 등 간접광고를 좀 더 투명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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